[ET시선]'좋은'을 넘어선 '다른'을 기대하며

내년 1월 9일 세계 전자·ICT인들의 이목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집중한다. 이날 개막하는 CES 2024에서 신기술·신제품으로 무장한 글로벌 기업의 정면 대결이 펼쳐진다. 우리나라 기업도 이곳에서 글로벌 소비둔화를 깨는 '킬러 아이템'을 선보이길 바란다. 다른 한편으로 물량 공세를 펼치는 중국 기업들의 변화에도 관심이 간다.

중국 제로 코로나 정책이 종료된 지 1년여. 글로벌 시장 곳곳에서 중국 기업의 활동이 증가하고 있다. 덩치를 앞세운 그들의 공세에 힘 없는 플레이어들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간다. 전 세계가 제로 코로나 종료로 중국 시장 리오프닝 효과를 기대했지만, 지금은 역으로 중국 기업의 자국 시장 잠식을 걱정하고 있다.

올해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선 화웨이, 샤오미, 오포, 비보, 리얼미 등 중국 스마트폰 기업이 총출동하며 주인공 역할을 했다.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렸던 가전 전시회 IFA 역시 건물마다 하이센스, 하이얼, 메이디, TCL 등 중국 업체들이 위상을 과시했다. CES 2024에서는 이미 1069개의 중국업체가 등록을 한 상태다. 현지 미국 기업(1048개)보다 많은 수다. 아직 미중 갈등이 해소되지 않았지만, 북미 시장 공략의 달콤함에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국내 시장에서도 중국 기업의 활동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최근 온라인 마켓 시장에서 불고 있는 해외 직구 열풍도 알리익스프레스 등 중국 기업이 불을 지폈다. 이른바 '짝퉁' '가품' 논란이 제기되지만, 그 인기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가전 업계에선 지난달 TCL이 국내에 법인을 설립했다. TCL은 중국 TV 대표 기업으로 출하량 기준으로는 세계 2위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중국 기업이 진입하기 힘든 시장이었다. 중국 제품이 품질에서 국내 소비자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품질이라는 장벽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시장에서는 '월등히 좋은 제품'보다는 '쓸만한 가성비 제품'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업계는 품질만으로 중국과의 격차를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같은 재료와 부품을 사용하고 유사한 디자인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스펙 경쟁은 한계가 있고 쉽게 따라잡힌다.

우리 제품은 중국에 정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중국 제품이 국내 시장을 하나둘 잠식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될 수 있다. 삼성전자만 해도 중국 매출이 2021년 60조원대에서 2022년 55조원대로 줄었다. 올해는 3분기까지 29조원을 기록해 하락 추이를 이어갈 전망이다. 긴장하지 않는다면 중국에 내줘버린 태양광 시장과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

우리 기업은 소프트웨어(SW) 경쟁력으로 해법을 마련하는 모습이다. 기존 제품에서 SW를 활용한 상상력을 더해 새로운 가치를 소비자들에게 제안한다. TV를 통해 게임과 동영상 스트리밍 등 엔터테인먼트 서비스를 제공하고, 인공지능(AI)으로 기기를 효율적으로 관리한다. 모빌리티 분야도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에 역량을 쏟고 있다. 핵심은 영역을 넘어선 새로운 기능과 서비스 제공이다.

CES 2024는 국내 기업이 더 이상 스펙이 아닌 SW파워로 초격차를 벌리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기존보다 더 '좋은'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전과는 '다른' 것을 제시할 때 시장을 이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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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형 전자모빌리티부 기자

조정형 기자 jeni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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