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기초과학, 꿈 접는 젊은 연구자 결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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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국가연구개발 중장기투자전략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국가재정운용계획제1차 국가연구개발 중장기투자전략중소기업상용화기술개발(R&D) 예산 정부안 삭감액

정부가 제시한 내년도 연구개발(R&D) 예산안은 25조9152억원으로 전년 대비 16.6% 삭감된 수준이다. 지난 8월말 이 같은 내용으로 전례 없던 규모 축소의 R&D 예산안이 발표되면서 연구 현장은 현재까지도 거센 반발과 함께 당장 내년부터 불어닥칠 혼란을 우려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정부의 이러한 삭감 기조가 내년 이후에도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이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9월 내놓은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보면 2027년까지 향후 5년간 R&D 예산 투자 규모는 145조7000억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윤석열 정부가 앞서 지난 3월 발표했던 제1차 국가 R&D 중장기 투자전략과 상당한 격차를 보인다. 중장기 투자전략은 국가 R&D 예산의 투자 전략성 확보를 위해 윤 정부 최초로 법제화된 투자전략이다.

중장기 투자전략 상 2027년까지 투입되는 R&D 예산 규모는 170조원이었다. 연도별로는 내년 32조원을 시작으로 2025년 33조6000억원, 2026년 35조7000억원, 2027년 38조1000억원으로 늘어나는 추이다.

반면 R&D 예산 삭감 사태가 발생한 지난 8월 이후 발표된 기재부의 국가재정운용계획은 내년 25조9000억원에 이어 2025년 27조6000억원, 2026년 29조5000억원, 2027년 31조6000억원으로 대거 삭감했다.

국가재정운용계획 상 R&D 예산 또한 해를 거듭하며 회복세를 보이는 것으로도 볼 수 있지만, 과학기술계는 최초 법정계획이었던 중장기 투자전략과 이를 비교했을 때 차이에 주목한다. 즉, 전략적 투자 방향성을 공언했던 윤 정부 기조와 달리 실제 정부의 재정 운용 기본방향은 해마다 약 6조원 수준의 R&D 예산이 감축을 반복하는 것으로, 내년에 이어 앞으로 5년간 R&D 예산 삭감으로 인한 타격이 지속될 것이란 분석이다.

과학기술계는 이에 따라 국가 미래 성장 단초인 기초연구에 대한 안정적 투자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꼽는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공개된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이사회 회의록에 따르면, 당초 R&D 예산 삭감 전에는 내년부터 NST 산하 각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이 차세대 미래 연구를 위해 총 1168억원 규모 신규 과제 50개를 추진할 예정이었다.

이들 신규과제는 국가 R&D 중장기 투자전략 등 방향에 부합된다는 판단 아래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에서도 신규사업으로 반영한 것들이었다.

△가속팽창하는 우주 원리에 관한 연구(한국천문연구원·11억4000억원) △미래 모빌리티를 위한 EARTH 기술개발(한국건설기술연구원·20억원) △과학기술정보 서비스를 위한 거대 초지능 기술연구(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14억원) 등 의미가 큰 것이었는데 예산 삭감으로 추진이 불투명해졌다.

내년도 R&D 예산안에는 25개 출연연 총예산을 13.2% 삭감, 이 가운데 이들 신규과제 추진 등을 위한 주요사업비 25.2% 또한 삭감됐다.

한 출연연 관계자는 “과학기술은 긴 호흡으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선제 대응이 중요하다”며 “출연금을 활용해 미래를 준비하는 출연연별 신규과제는 정부가 줄곧 강조해왔던 R&D 도전성과도 부합하는 만큼 관련 예산 복구에 대한 관심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과기계는 기초연구 생태계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는 젊은 연구자 위기에 대해서도 크게 우려한다.

지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산하 25개 출연연 소속 학생연구원, 박사후연구원 등 인력은 7141명이다. 이는 전체 연구 인력 2만3370명 가운데 30%를 차지한다. 출연연 외 연구중심대학인 4대 과학기술원에도 학생연구원은 1만여명, 박사후연구원 900여명이 소속돼 있다.

이들은 비정규직 인력으로 매년 계약직 형태로 계약을 연장하며, 출연연 또는 과기원별 주요 연구과제에 참여한다. 출연연의 경우 이와 관련된 외부인건비는 연평균 3000억원 수준으로 실제 지난해 기준 출연연 총 외부인건비는 3193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내년도 R&D 예산안 감축으로 이들에 대한 인건비 확보 또한 불투명한 상태다. 특히 이들 인건비는 연구과제 내 포함된 인건비 명목으로 해결되기 때문에 출연연별 신규과제 규모가 축소되면 학생연구원 감축 등 영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과기계는 설명한다.

과기정통부는 기관별로 보유한 자체 재원인 연구개발적립금을 인건비로 충당하는 해결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연구개발적립금은 연구기관이 경상비를 집행하지 않고 이월하면 적립되는 예산으로 사용 용도는 연구 성과확산을 위한 기술창업 등으로 정해져 있다. 이를 학생연구원 고용 유지 등 인건비로 활용한 전례는 없다.

연구 현장은 이를 임시방편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경상비는 연구기관이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전기료, 세금 등 항목 지출을 위한 예산이다. 이를 학생연구원 등 인건비 충당을 위한 연구개발적립금으로 이월하려면 연구기관 핵심기능을 축소해야 하는 구조다.

과기계는 매년 R&D 예산 감축 반복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 같은 땜질식 대책은 더 큰 후폭풍을 몰고 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동헌 한국과학기술원(KAIST) 대학원 총학생회장은 “지금은 하나의 기술이 100만명 이상을 먹여 살리는 시대”라며 “이런 기술과 인재를 키워내는 것이 핵심으로, 우수 이공계 인재 이탈을 막을 수 있는 환경 조성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인희 기자 leeih@etnews.com, 김영준 기자 kyj85@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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