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미래다] 〈97〉삼성반도체통신, 64K D램 자체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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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1983년 12월 12일 열린 64K D램 자축연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 홍보실 제공

“삼성반도체통신이 64K D램을 자체 개발하는데 성공했습니다.” 1983년 12월 1일. 강진구 삼성반도체통신(전 삼성전자 회장) 사장이 이날 오전 삼성 기자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기자 회견장에는 상공부와 과학기술처 출입 기자들로 만원이었다. “중대발표라는데 내용이 뭐야. 혹시 64K D램 개발은 아니겠지” “설마 6개월 만에 개발이 가능할까.” 사진기자들의 플래시 속에 가운데 다소 긴장한 모습의 강진구 사장은 준비해 온 발표문을 꺼내 차분하게 읽기 시작했다. “삼성반도체통신은 64K D램의 생산과 조립, 검사까지 완전히 자체 개발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미국과 일본에 비해 10년 이상 뒤떨어졌던 한국 반도체 기술 수준을 3~4년으로 줄일 수 있게 됐습니다.”

64K D램 개발은 국내 최초이고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였다.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도코선언'을 통해 VLSI(초고밀도집적회로) 개발에 착수겠다고 선언한 지 8개월 만의 쾌거였다. 64K D램은 새끼 손가락 손톱(2.5×5.7㎜)만한 크기의 칩에 머리카락 50분의 1정도인 가는 선 800만개를 집적한 초정밀 제품으로 15만개의 소자를 넣어 8000자를 기억할 수 있는 당시 최첨단 반도체였다.

삼성반도체통신의 64K D램 개발은 한국의 첨단과학 기술력을 세계에 과시한 경사였다. 국내 산업계는 두 손을 들어 환호했다. 국내 언론은 삼성반도체통신의 제품 개발 소식을 '진정한 기술 한국의 숭리'라며 크게 보도했다. 반면 미국과 일본 등 해외 반도체 기업들은 경악했다. “아니 어떻게, 개발 착수 6개월 만에 64K D램을 개발하다니…”

당시만 해도 64K D램을 생산하던 기업은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와 모토로라, 인텔 등 4개사, 일본 히타치와 후지쯔, NEC를 포함한 6개사에 불과했다. 이들 업체가 그동안 세계 반도체 수요를 독점해 왔다. 한 수 아래로 내려다 보며 무시하던 삼성반도체통신이 반도체 개발과정(4K, 16K, 32K)을 세 단계나 건너뛰자 이들 선두업체가 마치 불에 데인듯 깜짝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가장 놀란 나라는 일본이었다. 당시 일본 반도체 전문가들은 “삼성이 64K D램 생산에 성공하려면 1년 6개월은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삼성은 이 기간을 3분의 1로 대폭 줄였다.

강진구 당시 사장의 회고록 증언. “각 신문과 TV가 이 개발 소식을 톱기사로 보도했다. D램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도 우리 기술 수준이 미국과 일본에 바짝 가까워졌다는 소식에 박수갈채를 보냈다. 이 소식은 해외에도 전해져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우리가 64K D램 개발에 착수했다는 소식을 다룰때만 해도 외국언론의 보도는 앞으로 상당한 기간이 걸리지 않겠느냐는 투였다.” (삼성전자 신화와 그 비결)

삼성반도체는 그해 5월 미국 현지법인 이상준 박사와 이종길 박사, 그리고 국내에서는 이승규 부장과 연구진 등 20명으로 64K D램 개발팀을 구성했다. 그리고 6개월간 연구 끝에 예상을 깨고 자체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강진구 전 회장의 회고. “VLSI (초고밀도집적회로)사업을 본격 시작하자 국내에 이승규 부장(전 삼성전자 부사장)을 팀장으로 하는 64K D램 개발팀을 구성했다. 40여일 만에 조립공정 개발에 성공했다. 그로부터 3개월간 우리 기술진들은 미국 현지법인에 근무하는 이상준 박사와 이종길 박사 등의 지도로 64K D램 양산을 위한 설계와 공정 개선 작업에 들어갔다. 그해 11월 초 칩 생산에 성공, 64K D램을 확보했다. 이런 사실을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에게 보고했다. 그리고 기흥 제1라인 건설에 불철주야 일하는 송편건 공장장(전 삼성석유화학 사장)에게도 소식을 전하면서 공장 건설에 최선을 다해 줄 것을 당부했다.”

64K D램 개발은 호암 이병철 회장의 염원이었던 사업보국의 꿈을 실현할 삼성 반도체 신화의 서막이었다. 반도체 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적국 육성하던 전두환 대통령도 “삼성반도체통신의 64K D램 개발을 우리나라 첨단산업 개발에 중요한 이정표를 만든 쾌거였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제품 개발 성공 발표 시기를 놓고는 삼성 측과 입장이 다소 달랐다. 전두환 대통령의 회고. “64K D램 개발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나는 즉각 보고받았다. 삼성 측은 이 성과를 대대적으로 홍보할 계획이라고 했다. 나는 관계자를 통해 '이제 시제품이 나온 것인데 이를 보도하면 외국기업들이 삼성 진출을 막으려고 덤핑 공세를 펼 가능성도 있다. 그러니 우리가 시장을 개척해 놓고 외국이 보도한 후 국내에서 보도해도 되는 일이 아닌가'하는 이야기를 이병철 회장에 전하도록 했다.” (전두환 회고록)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이런 내용을 전해들은 호암 이병철 회장이 “전 대통령이 사업에 관해 무얼 안다고 이런 것까지 간섭하느냐”며 못마땅해 했다고 적었다.

청와대 경제비서관실에 근무했던 A행정관의 말. “전 대통령은 걱정스러워 한 말이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입장이 다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세계 3번째로 64K D램을 개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삼성 브랜드 가치가 얼마나 높아지겠습니까. 그러니 삼성 측에서 발표를 뒤로 늦추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을 겁니다.”

김광호 전 삼성전자 부회장도 “삼성 내부에서도 발표를 놓고 고민을 했다. 하지만 발표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 발표를 한 것”이라고 회고했다.

삼성반도체통신의 64K D램 개발 성공 발표 이후 실제 우려하던 일이 현실로 다가왔다. 반도체 수출에 나선 삼성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 업체들이 덤핑 공세를 취했다. 미국이 통상법 301조를 걸어 일본을 견제했으나 반도체 가격폭락으로 삼성은 한동안 경영난에 시달렸다.

그해 연말. 전두환 대통령은 경제계 원로들을 부부동반으로 초청해 청와대에서 만찬을 함께 있다. 전두환 대통령의 회고록 내용. “이 자리에서 이병철 회장이 '64K D램을 개발했을 때 나는 하루빨리 발표해 자랑을 하고 싶었는데 대통령이 광고를 하지 않도록 권유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납득할 수 없어 이를 듣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정 돌아가는 걸 보니 대통령이 걱정한 대로 흘러갔다. 나는 평생 사업을 하며 살았고 대통령은 경제를 공부하거나 사업을 해 본 경험도 없는데 대통령이 나보다 뛰어난 사업 감각을 가지고 있음을 알았다'고 말했다.”

삼성반도체통신은 제품 개발 발표 후 언론에 대대적인 개발 성공 광고를 실었다. 각 신문 1면 5단 광고에서 삼성반도체통신은 '미국, 일본에 이은 세계 세 번째 64K D램 개발 성공'이라는 문구 아래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기수로서 최첨단 미래산업을 통해 선진조국 창조의 일익을 담당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병철 삼성그롭 회장은 그해 12월 8일 사장단 회의를 주재하고 64K D램 개발과 VTR 등을 개발하는 데 공이 많은 이성규 삼성반도체통신 부장 등 69명에게 총 1억원의 상금을 주고 기술개발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그해 12월 12일. 삼삼반도체통신은 이날 오후 6시 30분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64K D램 개발 자축연'을 열었다. 자축연에는 채문식 국회의장과 진의종 국무총리, 금진호 상공부 장관, 이정호 과학기술처 장관, 정주영 전국경제인연합회장, 정수창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 관·재계 인사와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 강진구 삼성반도체통신 사장 등 각계 인사 500여명이 참석, 대성황을 이뤘다.

이병철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이번 64K D램 개발 성공은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 첨단기술로 부가가치 창출에 기대가 크며 앞으로 지속적인 기술축적을 통해 256K D램 개발을 실현하겠다”고 다짐했다.

참석자들은 삼성반도체통신이 만든 슬라이드를 통해 64K D램 생산공정과 빈도체를 이용해 생산하는 컴퓨터와 통신기기 등 각종 제품을 관람했다.

문화재청은 2013년 8월 27일 삼성반도체통신이 개발한 64K D램을 국가등록 문화재 제563호로 지정했다. 문화재청은 “첨단기술이라는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정상에 오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집적회로의 실용화로 산업사회에서 정보화사회로 전이를 가속화했다”고 지정 이유를 밝혔다. 64K D램 제품 개발은 삼성이 최강 반도체기업으로 가는 첫 신호탄이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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