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가 만났습니다]이재훈 한동대 이사장 “교육 개혁으로 저출산 문제 해결해야”

1시간여 대화 내내 부드럽고 온화했다. 하지만 신념을 내비칠 때 목소리와 표정에는 강직함이 묻어났다.

오랜 기간 목회자의 길을 걸어왔지만 종교 못지않게 사회 현안에도 관심이 많았다. 여느 정치인 못지않은 해박한 지식과 대안을 가지고 있었다.

이재훈 한동대 이사장(온누리교회 담임목사)은 지금을 대한민국 '존립 위기' 상황으로 진단했다. 인구 감소, 지역 소멸, 공교육 붕괴 등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역 소멸이나 인구 감소 등 모든 문제의 해법은 결국 '교육 개혁'에 있다는 게 이 이사장의 생각이다. 그는 학생이나 학부모가 교육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면 저출산 이슈를 해결하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학생이나 학부모가 진학할 학교를 선택하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바우처(Voucher)' 제도를 도입해 학생 수에 따라 학교에 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혁신적 방안도 제안했다. '학생 있는 곳에 교육 예산 있다'로 요약되는 바우처 제도는 학교별 모집 경쟁 촉발로 교육 질을 제고해 사교육 부담을 없애는 한편, 해당 학교 인근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끄는 등 저출산과 지역 소멸을 해결할 근본 대책이라는 것이다.

이 이사장은 목회자 겸 교육자로서 성 소수자를 옹호하는 차별금지법 반대 등 예민한 사회 이슈에 대해 소신 발언을 해왔다. 사회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라면 개혁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필요하다면 정부를 향해 쓴소리도 내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 이사장을 만나 그가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와 해결책에 대해서 들어봤다.

대담=안호천 ICT융합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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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 도달했다. 기존 정책의 공과와 한계는.

▲우리나라에서 뚜렷하게 기억되는 저출산 정책이 있었는지 반문하고 싶다. 자녀 1인당 재정을 보조해주는 것 외에 와닿는 게 없었다. 현금 나눠줄 때는 당연히 한계와 부작용이 있다.

우선 현금 지원이 필요 없는 부유한 가정에 주는 지원금은 세금 낭비일 뿐이다. 또 단순히 '국가가 돈을 줄 테니까 애를 낳아라' 하는 것도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크게 공감받지 못한다. '우리가 애를 낳는 기계냐'며 반발할 수 있다. 자존심만 상하게 할 뿐이다.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인구가 감소하고 국력이 회복된 경우가 없다. 우리나라 저출산 위기는 북핵 위협보다 심각하다. 인구수가 붕괴된 다음에는 국가가 소멸하는 수순밖에 더 있나.

-저출산 위기 구조적 해법은 무엇인가.

▲저출산 문제 해결은 결국 교육 개혁이다. 우리나라는 애를 키울 때 사교육비가 너무 많이 든다. 부모는 자녀가 성장할 때까지 막대한 사교육비를 지출해야 한다. 특히 부모 소득 수준에 따라 사교육 수준과 교육 격차가 벌어진다. 부와 학벌이 세습되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어떻게 애를 낳고 키울 수 있겠는가.

정부는 사교육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아예 금지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법으로 제한하면 음지에서 활개를 칠 것이기 때문이다.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교육에 투자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애를 낳으면 얼마를 준다' 할 게 아니라, 그 예산으로 실력 있는 학원 강사들을 학교로 모셔오는 등 교사 투자를 늘리면 된다. 사교육의 힘을 점점 빼서 공교육을 키우자는 얘기다.

사교육 시장도 양극화가 심각한 수준이다. '일타 강사'들은 연봉을 수백억원씩 받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태반이다. 이들 가운데선 준공무원인 교사로 직업을 전환하려는 수요도 있을 것이다.

부모가 많은 돈을 내서 국제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굳이 학원을 다니질 않는다. 비싼 학비 만큼이나 교육 질이 높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에서 공교육 질이 좋아지면 굳이 사교육을 시킬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바우체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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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처 제도란 무엇인가.

▲'교육 바우처'는 교육부가 학생이 입학한 학교에 지원금을 주는 제도다. 지금은 교육부가 학교를 줄 세우고 평가해 지원금을 지급한다.

법조계에만 전관예우가 있는 것이 아니다. 교육계에도 파다하다. 이권이 달렸는데 이면에 정치와 로비가 없겠는가.

반면에 바우처 제도를 도입하면 맹모삼천지교가 가능해진다. 강원도 산골에 있는 학교라도, 학생 또는 부모의 교육 철학과 맞다면 그 학교에 진학하면 된다. 학생 1인당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학교 간 모집 경쟁은 치열해질 거다. 자율 경쟁이 일어난다는 얘기다. 교육 품질도 높아질 수 있다.

학생과 학부모는 학교 선택 폭이 넓어진다. 학생 모집에 실패한 학교들은 문을 닫아야한다. 경쟁에서 도태된 것인데, 누굴 탓하겠나. 기업은 제품을 하나 더 팔기 위해 경쟁하는데, 교육에서도 선한 경쟁은 필요하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선전척 재능을 부여받는다. 하지만 현재는 획일적이고 평준화된 교육을 받는다.

'평준화' 교육은 '평둔화'를 낳았다. 사립학교를 공립화한 교육 정책과 부실한 공교육이 사교육 시장을 만들었다. 해결 방법은 사립학교가 건학 이념에 따른 자율 교육을 시행토록 하는 것이다. '경쟁을 조장한다'는 시각에서 볼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창의적 능력을 발견해주고 육성한다는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각 학교가 창의적 커리큘럼을 만들고, 교육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나 지자체가 사립학교에 재정 지원하고 있으니까 간섭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시각은 잘못된 것이다. 재정 지원금은 결국 국민 세금이다. 국민 세금에는 교육을 위한 세금이 포함돼 있다. 사립학교에 과감하게 자율권을 부여하고 지원하는 것이 사회적 낭비를 줄이는 지름길이다.

교육과 통일 정책은 항상 장기로 봐야 한다. 늦더라도 백년대계로 추진해야 한다. 나라와 민족의 미래가 여기에 달렸다. 단순히 출산 지원금을 주는 '마약 정책'은 위험하다. 장기 효과를 내는 교육 개혁이 필요하다.

-바우처 제도가 지역 소멸 문제까지도 해결 가능하나.

▲그렇다. 지역 소멸도 저출산 못지않게 심각한 수준이다. 친분 있는 목사가 실제 겪은 일이다. 이 목사는 지방에서 목회 활동을 하는데, 하루는 어린 아이가 울면서 찾아왔다고 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본인이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다더라. 본인만 한국인이고 나머지는 혼혈이라서 벌어진 일이라고 하더라.

이게 현실이다. 지방에 아이들이 없다. 인구 절벽뿐만 아니라 교육 품질 저하, 복지 사각, 인프라 미비 등 이유로 지역은 소멸의 길에 접어들었다. 지역 소멸은 경기 침체 등 우리나라 산업과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가 출산 장려금 지급, 생활비 지원 등 다양한 자구책을 고민해 추진하지만 해결되지 못했다.

결국 지방 소멸 문제도 저출산 대책과 연계돼야 한다. 바우처 제도가 교육 개혁의 시발점이 된다면 자연스레 저출산과 지역 소멸 문제도 해결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최근 교육부, 국토부가 구상 중인 교육 특구와 혁신 도시 같은 정책을 하나로 연결해야 한다.

교육 특구라는 것은 기존 교육 정책을 따르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판을 만들어 교육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이다. 이렇게 교육해보고 저렇게 교육해봐서 좋은 것 중심으로 점진적으로 바꿔나가는 것이 골자다. 바우처 제도를 파일럿 개념으로 도입해 운영해도 된다는 얘기다.

교육 특구는 기존 교육 제도와 차별화한 실험적 교육 제도와 커리큘럼으로 교육해야 한다. 수요가 몰리면 지역이 활성화되고, 기업은 몰릴 것이다. 여기에 혁신 도시 정책이 함께 추진되면 효과는 배가 될 것이다. 교육과 기업은 함께 가야 한다. 결국 교육부와 국토부도 같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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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부처 간에 협력에 대해 당부할 말은.

▲저출산 문제는 범부처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있긴 하지만 현재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힘이 부족해 보인다. 적어도 사회부총리가 위원장을 맡아야 생산적 논의가 이뤄지고 해결책에 힘이 실리지 않겠나.

정부의 사고 풀에는 한계가 있다. 저출산 문제에 대해 언론이 공론의 장을 만들어주면 (참여자 누구나 항목을 작성하고 수정 가능한) '나무위키' 처럼 해결 방안을 추가하는 식의 대안이 만들어질 수 있다.

'저출산 해결책으로 이 방법이 제격이다' 하는 아이디어들이 하나둘씩 쌓이면 집단 지성이 발휘되고, 하나의 블록체인처럼 될 것이다. 블록체인이 결국 탈중앙화 아닌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당사자인 여성들이 공론의 장에서 토론한다면, 충분한 대책이 나올 수 있다. 이를 정부가 받아주는 형식으로 간다면 어떤 문제도 해결 가능하다고 본다.

뭐든지 창의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대중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젊은 사람들이 주축이 돼 '저출산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스스로 대책을 세우는 식이 돼야 한다. 정부 입장에서는 이것이 말이 안 된다고 할 수 있지만 스스로 해결책을 만들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 현안에 관심이 큰 것으로 안다. 최근 관심 있는 분야는.

▲차별금지법 도입에 대해 반대한다. 차별금지법은 성 소수자를 보호한다는 취지이지만, 실상은 다수자를 역차별하는 과잉입법이다.

과학적으로 밝혀진 성은 남성과 여성밖에 없다.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사람이 있으면 별도로 도와주면 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서구권을 중심으로 생물학적, 과학적 성 대신 '사회적 성'을 인정하자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사회적 성은 비과학적이며 가정과 사회를 해체하는 사상이다.

양성이라는 염색체 기준을 무시한 채 차별금지법을 도입, 시행한다면 사회가 악영향을 받고 부작용이 생길 것이다.

-끝으로 할 말이 있다면.

▲종교인의 사회적 책무는 옳고 그른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다. 또 화해의 다리가 되는 것이다. 옳고 그름이라는 도덕적 경계가 분명해야 화해가 가능하다. 객관적 기준이 있고, 그 기준에서 벗어났는지를 명확히 알아야 치유할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에서 도덕적 기준이 약화되지 않고, 다음 세대가 애국심과 긍지를 더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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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이사장은...

1968년생이다. 명지대학교를 졸업하고 합동신학대학원과 미국 트리니티신학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다. 고든콘웰신대학원에서 박사과정 중이다. 현재 온누리교회 제2대 담임목사, 제6대 한동대 이사장 등을 겸임하고 있다. 대표 저서인 '생각을 생각한다' 등 10여권의 책을 썼다.

한동대는 복음주의 신앙에 기초한 기독교 정신에 의해 세워졌다. 무전공 입학, 기숙형 대학 제도 등을 국내 최초 도입했다. 정직하고 성실한 인재 양성을 위해 무감독 시험을 시행한다.

이 이사장은 사단법인 사학법인미션네트워크(사학미션) 이사장으로도 활동한다. 사학미션은 기독교 사학법인 연합체다. 국내 최초로 130여년 만에 설립됐다. 60여개 법인이 참여한다. 자정위원회 활동으로 인사 비리 등 해결에 앞장서고 있다.

류태웅기자 bighero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