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SW) 가치평가와 금융자산화를 위한 SW단체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한국SW저작권협회가 'SW가치평가 모형'을 발표한 데 이어 한국SW산업협회, 한국SW저작권협회, 한국상용SW협회가 SW 가치·자산 인정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한국SW저작권협회는 2년 전부터 SW가치평가 모형을 개발해왔다. 한국상용SW협회도 상용SW 개발비 금융자산화를 위해 내부 논의를 이어왔다. 한국SW산업협회가 가세하며 이들이 운영해온 실무협의회 활동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SW 가치평가, 금융자산화 주장의 배경에는 SW 기업의 영세함이 자리한다. 조사에 따르면 국내 SW 기업 중 매출 10억원 이하 기업이 45%, 50억원 이하 기업이 85%를 차지한다. 열에 아홉은 소규모 영세기업이다.
수년간 연구개발(R&D)을 통해 신제품을 개발한다고 하더라도 R&D에 투자한 비용은 자산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제품을 개발한 이후 자본잠식에 빠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SW는 라이선스(저작권)를 보유한 개발사가 아니라 SW를 구매한 고객사 자산으로만 인정받는 것도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는 '제품'이 아닌 '지식산업'의 결과물로 인정받아야 할 SW가 여전히 단순 용역 취급을 받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SW는 단순한 제품이 아니다. 개발자의 재능과 창작 능력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창작물이다. 글이나 그림 등과 다를 바가 없다. SW가 가치를 평가받고 이를 통해 금융자산화가 가능해지면 기술 투자 유치나 담보권 설정을 통한 금융 거래가 가능하다. 기술의 매매, 라이선스 가격 결정 때에도 적정가액을 제시할 수 있다. 무엇보다 기업 가치가 높아진다는 점이 가장 큰 기대효과다. SW 가치평가는 SW 사업화 단계를 파악한 이후 기술적 경쟁력, 예상되는 가치, 시장의 기대효과 등을 종합해 경제적 이익 창출 정도를 도출해야 한다. 현재 시점뿐만 아니라 R&D 단계에서 투입된 노력과 비용도 평가해 자산화할 수 있어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다. 사회적 동의를 얻을 수 있는 객관적 가치평가 모형 완성이 최우선과제다. 시범사업 등을 통해 적용하고 담당 기관에 제안, 관련 규정이 도입돼야만 SW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정부와 금융당국, 회계사 등의 협조가 필수다. 제약·바이오 분야에서는 2018년 '제약·바이오 기업의 연구개발비 회계처리 관련 감독지침' 개정을 통해 개발비의 무형자산을 인정받고 있다. 논의를 시작해 지침 개정까지 7~8년이 걸렸다.
SW 분야는 이보다 기간을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선행 사례가 있다는 점,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SW 수요가 늘고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SW진흥법에도 이미 SW 가치평가에 대한 근거(제14조)가 있다. 정보기술(IT)이 '0차 산업'화 되면서 SW의 중요성도 높아진다. SW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SW 가치평가와 금융자산화는 SW 산업 발전을 위한 'SW 제값주기'의 핵심 요소다. 3개 협회의 행보가 주목받는 이유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