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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이 1967년 4월21일 과학기술처 개청식에서 김기형 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1967년 1월 16일. 정부는 한국 최초의 과학기술진흥법을 이날 공포했다. 정부는 “이 법은 과학기술 진흥에 관한 기본정책과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시행을 위한 체제 확립과 재정 조치 강구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산업 발전과 국민생활 안전 향상에 기여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혔다. 이때까지 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업무 체계를 규정한 법이 없었다. 이에 따라 각 부처의 과학기술 정책을 종합 조정하거나 총괄할 주체가 없었다. 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특정 분야에 집중 투자도 할 수 없었다. 이유는 단 하나이다. 이를 규정한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경제기획원은 이에 따라 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법 제정을 서둘렀다. 전상근 삼전복지재단 이사장(당시 경제기획원 기술관리국장)의 증언. “과학기술 진흥에 관한 종합적 기본정책과 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관련 법을 제정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먼저 '과학기술진흥 관계 법령 기초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위원회에 과학기술 진흥법과 기술사 법안, 기술자와 기술자 고용법안, 직업훈련법 등 제정이 시급한 법안 기초를 의뢰했습니다.”

기초위원회는 이봉인 대한기술총연합회장, 이균상 서울대 공대 학장, 윤일중 전기학회장, 이제곤 통신학회장, 김동일 화학회장, 오원선 원자력원장, 이계호 국립공업연구소장 등 과학기술 관련 학회와 기관장 및 관련 부처 국장급 공무원 등 28명으로 구성됐다. 위원장에는 이봉인 회장을 선임했다. 간사장은 전상근 경제기획원 기술관리국장, 간사는 기술관리국 기술행정과장이 각각 맡아 위원회 활동을 지원했다.

전상근 삼전복지재단 이사장의 회고. “당시 기초위원회는 과학기술 진흥을 위해 법안을 서둘러야 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됐고, 실제 위원들의 열의가 대단했습니다.” 위원회가 기초한 과학기술진흥법안은 관련 부처 간 협의와 국무회의를 거쳐 1966년 6월 30일 국회로 넘겼다. 국회는 재정경제위원회 논의를 거쳐 1966년 12월 국회 본회의에 상정했다.

법안은 대표 제안자인 이재만 의원을 비롯해 김대중 의원, 이만섭 의원, 고흥문 의원 등 13명이 제안자로 참여했다. 과학기술에 남달리 관심이 높던 김대중 의원은 1997년 제15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2월 25일 취임사에서 “자라나는 세대가 지식정보사회의 주역이 되도록 힘쓰겠다”면서 “세계에서 컴퓨터를 가장 잘 쓰는 나라를 만들어 정보 대국의 토대를 튼튼히 닦아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재임 중 한국이 세계에 자랑하는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의 상징 가운데 하나인 '전자정부 세계 1위'를 구현했다.

1966년 12월 22일 오전 10시 국회 본회의장. 이효상 국회의장의 개최 선언에 이어 법안 제안자인 이재만 의원(국회 재경위원회 위원)이 심사보고를 했다. “낙후한 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해서 단시일 안에 우리 숙원인 조국 근대화를 이룩하기 위해 이 법은 절대 필요합니다. 과학기술을 진흥하는 나라는 번영하고, 과학기술을 도외시하는 나라는 가난 속에서 헤매다 몰락할 것입니다. 과학기술 진흥에 대한 책무를 분명히 하고 이를 뒷받침해서 국민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 이 법의 제정을 제안했습니다.”

국회는 이날 만장일치로 과학기술진흥법을 통과시켰다. 정부는 12월 30일 이 법을 정부로 보냈고, 정부는 1967년 1월 16일 법률 제1864호로 공포했다. 15조 부칙으로 된 이 법은 국가가 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종합적인 기본 시책을 강구해야 하며, 주무 장관은 시책에 따른 업무를 종합 조정·관리한다고 규정했다. 또 과학기술진흥 종합계획을 관계 부처 장관 협의를 거쳐 수립하는 한편 연구개발과 인력개발, 자원조사, 기술협력과 기술도입, 사회과학연구 등을 종합계획에 넣도록 했다. 과학기술진흥위원회와 인력개발위원회를 설치하고, 과학기술 기금도 조성하도록 했다.

국내 처음으로 제정한 과학기술진흥법의 부문별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과학기술 진흥에 관한 시책을 강구해 국민의 과학기술 연구 활동을 장려하고, 과학기술 조사와 새 기술 보급 및 지도에 필요한 시책을 마련해야 한다. △경제기획원 장관은 장기경제개발계획의 하나로 과학기술진흥장기종합계획과 그 기본시책을 수립하고, 이에 수반하는 업무를 종합 조정·관리한다. 이 종합계획은 연구개발계획과 인력개발계획, 자원조사계획, 기술협력과 기술도입 계획, 자연 과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회과학연구 계획을 포함한다. △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기본시책, 과학기술진흥 관련 예산, 과학기술에 대한 중요 사항에 관해 경제기획원 장관 자문에 응할 과학기술진흥위원회를 둔다. 위원회는 위원장 1명과 과학기술에 관한 전문가 12명 이내로 구성하며, 위원장은 경제기획원 장관이 맡는다. △경제기획원 장관은 과학기술 인력 자원 개발의 기준이 될 인력자원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과학기술 교육 강화, 기술훈련 조성, 기술 인력 해외 진출, 과학기술자 확보와 보호 등에 관한 지침을 정한다. △정부는 인력개발계획과 이에 따른 중요 정책을 심의하고, 관계 부처 간 긴밀한 협조를 위해 인력개발위원회를 둔다. 위원회는 경제기획원 장관, 국방부 장관, 문교부 장관, 노동청장,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 1명과 경제과학심의회의 상임위원 1명, 기타 관계 중앙행정 기관장으로 구성한다.

△정부는 과학기술 연구개발을 위해 연구기관 시설에 관한 사항, 연구과제에 관한 사항, 연구원 양성에 관한 사항, 연구체제 개선에 관한 사항, 기타 연구개발에 관련한 사항 등을 조정 관리한다. 중앙행정기관장은 과학기술 진흥과 경제개발에 필요한 국내 자원조사 및 그 개발과 활용계획을 매년 3월 안에 경제기획원 장관에게 제출해야 한다. 조사 대상과 범위는 매년 4월 안에 위원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 △경제기획원 장관은 외국 정부와 국제기구 및 외국 법인·단체와 공업소유권을 포함해 유무상 기술 원조·협력, 과학기술 관계 국무회의와 과학기술담당 해외 주재원 파견 등에 관한 기본 시책과 종합 계획을 책정하고 그 시행을 조정·관리한다. △경제기획원 장관은 과학기술에 관한 조사 연구와 진흥을 위해 정부 출연, 외국기관 원조금, 일반 기부금으로 과학기술 기금을 설치할 수 있다. 정부는 과학기술에 관한 조사와 연구, 국가가 필요로 하는 과학기술사업 종사 단체, 개인에게 필요한 장려금을 주거나 용역을 줄 수 있다. 과학기술기금 운영에 관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정부는 과학기술이 있는 공무원 가운데 특정인을 지정해 과학기술 연구나 조사업무를 겸직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런데 이 법 공포 이튿날 돌발변수가 발생했다. 전상근 삼전복지재단 이사장의 말. “이 법을 공포한 이튿날인 1967년 1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이 연두 회견에서 과학기술 전담 부서 신설을 발표했습니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아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정부는 그해 3월 정부 조직을 개편해 과학기술처를 신설했습니다.” 경제기획원은 서둘러 3월 2일 과학기술진흥법 가운데 개정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는 3월 10일 본회의에서 개정 법률안을 정부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개정 법률안은 경제기획원 장관이 담당하던 역할을 과학기술처 장관으로 바꾸고, 인력개발위원회에 과학기술처 장관을 추가했다. 정부는 이 개정 법률을 3월 30일 공포했다. 정부 조직개편에 따라 1967년 4월 21일 개청한 과학기술처는 7월 18일 대통령령 제3148호로 과학기술진흥법 시행령을 제정하고, 이를 관보에 실었다. 시행령에서 과학기술처 장관은 과학기술 진흥 장기종합계획과 그 기본시책을 수립하고자 할 때는 과학기술진흥위원회 심의를 거친 후 경제기획원 장관과 협의하도록 했다. 또 과학기술진흥위원회 임기는 2년으로 하고 장기종합계획에 관한 사항과 과학기술 진흥 관계 예산에 관한 사항, 기타 과학기술 진흥에 관해 과학기술처 장관이 중요하다고 인정하는 사항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도록 했다.

위원회에는 통신, 전기, 금속, 기계, 기초과학 등 14개 분과위원회를 두기로 했다. 인력개발위원회는 경제기획원 장관이 위원장을 맡고, 부위원장은 과학기술처 장관이 맡도록 했다. 위원은 건설부 장관, 상공부 장관, 보건사회부 장관, 교통부 장관, 총무처 장관, 원호처장으로 하고 인력개발 계획에 관한 사항과 인력 양성과 활용에 관한 사항 등을 심의하기로 했다.

문영철 전 과학기술처 기획관리실장(당시 과학기술처 진흥국장)의 증언. “과학기술진흥법과 시행령 제정은 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모법(母法)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큽니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려면 정부와 과학기술자, 국민의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과학기술처는 과학기술진흥법 제11조에 근거해 과학기술기금 운용규정(안)을 마련해서 7월 24일 국무회의에 안건으로 상정했다.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은 과학기술처 장관이 맡고 위원은 경제기획원 차관, 재무부 차관, 문교부 차관, 농림부 차관, 상공부 차관, 건설부 차관, 과학기술 분야 전문가 5명 등으로 구성하며 한국은행에 과학기술기금 계정을 설정하기로 했다. 정부는 8월 8일 대통령령 제3175호로 과학기술운용 규정을 공포했다. 과학기술진흥법은 제정 후 정부조직 개편 등에 따라 몇 차례 일부 또는 전문을 개정했다. 이후 과학기술처는 2001년 1월 16일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과학기술진흥법을 폐지했다. 그 대신 21세기 지식기반 사회에 대비하기 위한 과학기술기본법을 새로 제정, 현재까지 시행하고 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