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준의 어퍼컷]특허강국, 변리사, 인공지능

Photo Image

꼬일 대로 꼬였다. 묵을 대로 묵었다. 새끼줄과 묵은 김치 이야기가 아니다. 변리사를 둘러싼 '직역'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해묵은 논란이 수면 위로 다시 떠올랐다. 직역은 법률용어로 전문직이 규정하는 업무 범위를 말한다. 변호사와 변리사, 감정평가사와 변리사, 지식재산(IP)업체와 변리사 등이 직역을 놓고 법적 공방이 한창이다. 공교롭게 중심에는 '변리사'가 있다. 덕분에 변리사협회는 '호떡집에 불난 격'이다. 일부에서는 '직역 이기주의'라며 싸잡아 비난한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꼬이고 묵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밥그릇 싸움'으로 본다면 해법이 나올 수 없다. 대한민국 IP경쟁력 차원에서 봐야한다. 사안을 분리해 상식과 원칙에서 판단해야 한다.

실타래가 어디서, 어떻게 엉켜는 지가 중요하다. 먼저 '변호사와 변리사' 갈등이다. 쟁점화한 지 20년이 넘었다. 결국 소송권한을 둘러싼 힘겨루기다. 민간법원이 다루는 '특허침해소송'에 관한 건이다. 변리사는 특허침해소송에서 기술을 잘 아는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고 변호사는 소송 노하우가 떨어지는 변리사는 기술검토에 그쳐야 한다고 맞선다. 평행선이지만 사실 변호사 주장은 상식에 맞지 않다. 특허와 디자인 등 지식재산은 전문영역이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변호사만이 특허사건을 취급해야한다는 주장은 지나친 직역확대다. 이미 특허 소장부터 전공 분야의 변리사가 개입한다. 해외에도 변리사 단독 혹은 변호사 공동으로 처리하는 나라가 수두룩하다.

두 번째로 '감정평가사의 변리업무' 여부다. 지난해 말 국토교통부가 지식재산 가치평가를 감평사 업무로 정하고 독점하는 내용의 감정평가사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하면서 논란이 됐다. '감정'은 동산이나 부동산 따위와 같은 재산의 경제 가치를 판단해 이를 가격으로 표시하는 행위다. 특허, 기술, 디자인과 같은 무형의 가치를 부여하는 업무와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개정안 자체도 문제지만 이를 인정해도 감평사가 기술을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변리업무를 수행해도 변리사를 대행으로 쓸 수밖에 없어 사문화된 조항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 감정과 평가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한 결과다.

마지막으로 특허 조사업무를 둘러싼 논란이다. 변리사협회가 IP전문업체를 고발하면서 불거졌다. 민간 기업이 변리사 업무를 침해했다며 변리사법·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고 압수수색까지 이어지면서 사건이 커졌다. 쟁점은 기술조사가 변리사 업무인 특허 감정과 가치평가를 포함하느냐에 달려 있다. 해당 업체는 시장조사일 뿐이라고 강변하지만 변리사회는 평가업무까지 수행했다는 주장이다. IP전문업체는 척박한 환경에서 변리사와 함께 수십 년 동안 시장을 키워 온 주역이다. 이미 일부 업무는 민간에서 수행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고 판정이 났다. 기존에 없던 영역을 개척해 지식재산서비스 수준을 올린 점도 인정된다. 세세한 법리 침해 여부는 법정에서 가리겠지만 결국 같은 배를 탄 상황이다. 대립과 갈등이 아닌 조정으로 해결할 사안이다.

'직역'은 중요하다. 생존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영역을 침해당하면 저항이 상식이다. 그래도 거대 시장흐름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인공지능(AI)'이 빠르게 직역에 뛰어들고 있다. 이미 법률 분야를 헤집고 뒤집어 놓고 있다. 멀리서 큰 파도가 몰아치는데 당장 잔물결에 일희일비한다면 미래가 밝을 리 없다. 대한민국은 세계 5대 IP강국으로 발돋움했다. 지난해 특허출원 건수 22만6000여건, 등록 13만4000여건이었다. 미국, 중국, 일본, 독일 다음이다. 이제는 특허강국에 걸맞는 수준과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아웅다웅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


취재총괄 부국장 bjkang@etnews.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