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준의 어퍼컷]'네카라쿠배당토'의 역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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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카라쿠배당토.' 처음 들었을 땐 난수표를 접하는 느낌이었다. 감을 잡지 못했다. 알고 나니 헛웃음만 나왔다. 기대에 비해 별 뜻이 없었기 때문이다. 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달의민족, 당근마켓, 토스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었다.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빅 테크' 기업을 지칭하는 대명사라는 정도. 그러나 신조어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180도'로 달라진 테크 기업의 위상을 보여준다. 과거 언론 헤드라인을 장식하려면 재계 10위권에는 들어야 했다. 10대 그룹이 대한민국 경제의 얼굴이었다.

변화의 바람을 일으킨 일등공신은 쿠팡이다. 미국뉴욕증시 상장은 '잿팟'이었다. 상장일 전후로 온통 '쿠팡(CPNG)'을 둘러싼 뉴스가 미디어를 장악했다. 쿠팡을 시작으로 마켓컬리, 야놀자와 같은 유니콘 기업이 미국시장을 노크할 것이라는 후속보도가 줄을 이었다. 카카오 김범수 의장과 배달의민족 김봉진 의장의 재산기부 소식은 사회전체를 훈훈하게 달궈 놓았다. 게임업계 주도의 '연봉 배틀'은 기존 대기업까지 영향을 줄 정도로 파장이 컸다. 꿈적 않던 개발자 몸값을 하루아침에 올려놓았다. 모두 한, 두 달 사이에 벌어진 빅뉴스다. 빅뉴스의 주인공은 결코 대기업이 아니었다.

테크기업의 집중조명은 달라진 산업지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조용하지만 확실한 세대교체가 진행 중임을 암시한다. 과거 이들 기업의 소식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구색 용도였다. 아니면 기껏해야 흥미를 위한 가십 수준이었다. 지금은 산업 전체의 여론을 좌우할 정도로 무게감이 달라졌다. 주변의 시선도 부러움 이상으로 바뀌었다. 과거 재벌로 불리는 대한민국 경제를 주도했던 기업집단과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 가고 있다. 최소한 '정경유착', '문어발식 경영', '부의 세습'과 같은 부정 이미지와는 확실하게 선을 긋는다. 새로운 경제 세대의 등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대교체 수준을 넘어야 한다. 기업문화가 중요하다. 문화는 단순히 기업과 직원, 업종이 바뀐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직원대우가 좋아지고 연봉이 높아진다고 생겨나는 게 아니다. 그럴싸한 슬로건과 캠페인만으로도 부족하다. 과거 세대가 보여준 구태나 악습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새로운 내용과 형식의 기업문화가 필요하다.

두 가지 키워드 '소통'과 '책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모두 창업자가 솔선수범해야 한다. 과거세대 부를 축적한 잘 나가는 오너하면 떠오르는 수식어는 '은둔'이었다. 베일에 가린 다른 세상의 신비로운 존재였다. 지금은 그 때와 다르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를 포함한 촘촘한 사회관계망이 뒤덮고 있다. 비밀이 없는 세상이다. 오히려 허심탄회한 소통이 이득이다. 직원과 만남이 더 이상 뉴스거리가 되지 말아야 한다. 누구나 스스럼없이 만나야 하고 사회와 적극 교류해야 한다. 또 하나는 '책임'이다. 산업 생태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져야 한다. 디지털 시대로 넘어갈수록 기존세대와 갈등의 골이 깊어가고 있다. 특히 새로운 세대는 기득권을 둘러싼 수많은 규제와 싸워야 한다. 과거는 싸움에 끼워들지 않는 게 상책이었다. 문제가 있어도 누군가 싸워주기를 바랬다.

새로운 세대는 달라야 한다. 필요하다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건강한 산업생태계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책임질 때 책임져야 한다. 사회 신뢰도는 그렇게 높아진다. 세상은 바뀌었지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새로운 세대가 경제주역이라고 선언하기 위해서는 '한방'이 필요하다. 과거와 같은 방식을 고집한다면 결코 다른 문화가 나올 수 없다. 겉모습과 바뀐다면 진짜 같은 가짜, 사이비일 뿐이다. '네카라쿠배당토', 말장난에 그쳐서는 안 된다.


취재 총괄 부국장 bjk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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