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기후변화 맞설 탄소중립 시대 온다(1)빨라지는 기후변화 시계 해법은

작년 전세계 폭염·장마·태풍 등 시달려
기온 계속 오르면 국내 생물종 6% 사라져
전문가들 '탄소중립 실천' 중요성 강조
국민·기업 모두 참여할 수 있게 유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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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30일 러시아 북동부 베르호안스크 기온은 38℃에 달했다. 온대 여름을 훌쩍 뛰어넘는 북극에서 기록한 최고 기온이다. 노르웨이에선 한겨울인 1월에도 기온이 19℃까지 오르면서 관측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미국에선 기록적인 폭염과 함께 마른 번개, 가뭄이 지속되면서 캘리포니아, 멕시코, 워싱턴 등지에서 8000여개의 크고 작은 산불이 발생했다. 남반구인 오스트레일리아 동부지역에선 2월 집중호우가 내려 10만여가구가 정전되고 터널이 침수됐다. 뉴사우스웨일주에선 35개 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졌다. 우리나라에선 지난해 6월 때이른 폭염이 찾아오더니 7월부터는 47일에 달하는 긴 장마와 4개 태풍에 시달렸다. 이상기후가 지난해 온 지구를 덮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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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라지는 기후변화 시계

인류와 지구 생태계를 위협하는 기후변화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지난해 북극의 여름은 평균보다 3~5℃ 이상 높게 나타나면서 1881년 이후 북극 기온이 가장 높은 해로 기록됐다. 6~8월 사이에는 중국과 일본, 한국에서 기록적인 긴 장마와 집중호우, 최다 강수량으로 인명과 재산이 손실됐다. 중국은 62일간 장마로 1961년 이후 가장 많은 강수량 759.2㎜을 기록하며 159명이 사망 또는 실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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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온실가스 감축 없이 기온상승이 지속되면 우리나라 평균 기온은 이번 세기말 4.7℃ 오를 것이란 관측이다. 만약 기온 변화가 현실화되면 폭염일수는 2009년 9일보다 7.2배 증가한 64.7일로 늘어난다.

실제 한반도가 더워지고 있다는 증거는 생태계 변화에서 극명해졌다. 최근 10년간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등 높은 산자락에는 구상나무, 분비나무, 가분비나무 등 상록침엽수가 25~33%가량 줄었다. 또 최근 10년간 잎이 생기고 꽃이 피는 시기는 각각 13.4일과 9.4일 빨라졌다. 단풍은 4.2일이 늦어졌다. 또 겨울철 기온 상승과 봄철 건조한 날씨로 매미나방 유충이 큰 폭으로 늘면서 나뭇잎이 붉게 바래는 피해가 잇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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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와 같은 속도로 기후변화가 진행되면 이번 세기말이면 국내 생물종 5700여종 가운데 6%인 336종이 사라질 것이란 지적도 있다.

국립생태원 관계자는 “현재같은 기후변화 속도면 2100년경에는 하천에 서식하는 구슬다슬기·참재첩 등 저서무척추동물종 중 많은 종이 사라지고 아열대 지방에서 유래된 뉴트리아, 큰입배스 등 외래종이 전국에 서식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기후변화가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라는 지적도 있다.

채여라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기후대기안전연구본부장은 “온실가스는 사라지지 않고 100년간 대기중에 떠다니며 영향을 미친다”면서 “과학자 다수는 인간이 온실가스를 제어할 수 있는 티핑포인트를 지났다고 우려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이라도 당장 탄소중립을 실천하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온실가스 결국 사회 문제로 번질 것

온실가스로 인한 문제는 지구 생태계뿐 아니라 인간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기온 상승으로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동근 서울대 교수는 “이상기후는 단기 전망이지만 10년 단위로 기후변화를 보면 온도가 수렴하지 않고 지속 상승하고 있다”며 “이는 산업화이후 온실가스가 쌓인 것과 일치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후변화 문제는 이미 시작됐다며 한번 나빠진 경로를 되돌리기에는 과거보다 더 큰 비용과 시간이 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온도가 상승하면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피해가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기온이 더워지면 소득이 있는 사람은 에어컨을 사용하지만 쪽방촌 노인이나 취약계층, 야외 노동자 등은 열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는 질병 등 건강 악화는 물론 생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 기온이 더욱 올라가면 빈곤도에 따라 피해층은 더 커질 수 있다. 아울러 기온상승으로 모기와 각종 바이러스가 번식하면 질병과 전염병 가능성도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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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도 호주나 중동 등 온도가 50도℃ 이상 오르는 곳이 생기면 인간이 살 수 있는 영역은 좁혀지고 대규모 이동이 불가피해 이로 인한 분쟁도 잦아질 수 있다.

이 교수는 “지금 현재 우리나라 국민 입장에선 기후변화가 피부에 느껴지지 않을 수 있지만 곧 눈앞의 현실이 되면 그때는 되돌릴 수 없다”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도 적극적인 탄소중립 실천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천 가능한 탄소중립 시나리오 짜야

전문가들은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2050년 탄소중립 계획에 대해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동근 교수는 “지금 세계 각국의 정책을 결정하는 지도층은 연령층이 높아 2050년, 2100년 문제에 둔감할 수 있다”면서 “5년 내지 10년 단위로 단계적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다시 점검하는 형태로 실천하기 쉽게 목표를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과 기업이 탄소중립의 필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이를 실천할 수 있게 하는 접근도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유승직 숙명여대 교수도 목표 상향조정뿐 아니라 실천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테면 한번 지으면 40~50년 가는 건물은 에너지 효율적으로 설계기준을 바꾸고 발전과 제조 등 에너지 다소비 업종은 유상할당을 늘려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화하도록 해야 한다.

국민 역시 기업이 매출과 실적에만 매몰되지 않도록 탄소중립을 실천하면 회사 경쟁력이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데 일조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일관되고 장기적인 정책 추진 필요성도 제기됐다.

엄지용 KAIST 교수는 “탄소중립을 이행을 위해서는, 정부의 장기적이고 일관성 있는 탄소중립 정책추진을 통해 민간의 적극적인 투자를 촉진하는 것이 필수”라고 말했다. 그는 정책불확실성은 친환경 투자를 막을 수 있어 기업이나 산업계가 탄소중립을 비용효과적으로 이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