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앙공무원의 25%가 인공지능(AI)으로 대체 가능하다는 연구 보고서가 발표돼 AI가 고용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번 연구 결과의 타당성과는 별도로 기술이 노동 현장에서 인간을 대체하는 문제는 19세기 초반 러다이트 운동을 시작으로 하여 컴퓨터 보급으로 말미암은 정보화 혁명에 이르기까지 지속해서 인류의 관심사였다. 학술적으로는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기술적 실업' 문제를 제기한 이후 많은 학자가 기술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 왔다.
새로운 기술이 출현할 때마다 기술에 의한 일자리 감소가 정치·사회 이슈가 됐지만 인류는 항상 새로운 기술 도입으로 대체되는 일자리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기술 혁신을 통해 창출하면서 경제 발전을 이뤄 왔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같은 현상이 반복될까. 아니면 AI와 로봇에 의한 일자리 대체는 이전과 다른 형태로 전개되고, 인류의 삶에서 직업의 의미는 바뀌게 되는 것일까. 2013년 영국 옥스퍼드대 카를 베네딕트 프레이와 마이클 오즈본이 오는 2030년 중반까지 미국의 직업 가운데 47%가 자동화할 공산이 높다는 보고서를 낸 이후 많은 기관이 AI 및 로봇이 노동 현장에 미치는 영향 연구를 진행했고, 상이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에릭 브리뇰프슨과 앤드루 매커피는 베스트셀러인 '제2의 기계시대'에서 디지털 기술 발전은 총고용 감소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반대로 세계경제포럼(WEF, 일명 다보스포럼)은 2022년까지 자동화로 75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지지만 1억330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날 거라고 분석했다.
AI와 로봇에 의한 노동시장의 본질적인 변화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디지털 기술을 통한 일자리 대체는 산업화 시대에 기계가 인간의 물리 능력 대체를 넘어 인간의 인지 능력 대체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산업화 시대 기술 혁신이 새로운 일자리로 이어지던 것과 달리 디지털 경제에서는 소수의 창의 엔지니어들과 최고 수준의 관리자 외 직업 대부분이 AI와 로봇으로 대체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고, 향후 직업을 잃을 사람 대부분을 보호하기 위해 '기본소득'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AI가 고용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앞으로 심층 연구가 더 이뤄져야 하겠지만 현재까지 상황을 분석해서 올해 발간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AI의 고용시장에 대한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AI 기술 영향을 받은 직종의 고용과 임금에 의미 있는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AI가 고용시장에 미치는 역할은 우리가 무시해도 되는 것일까. OECD 보고서도 지적하고 있듯이 AI가 고용시장에 미치는 역할은 현재 상황에서 일자리 대체보다 일하는 방식 변화에 더 주목해야 한다.
기그 이코노미 가속화와 비정형 근로 형태 확대 등 고용시장의 변화는 단일 고용주와의 정규직 고용 형태에 기초한 고용정책 체계를 통한 근로자 보호 효과성의 근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퀵서비스, 대리운전 기사 등 플랫폼 노동자에 대해 내년부터 고용보험을 적용하는 정책을 발표하는 등 기존의 법체계로 보호되지 않던 플랫폼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전개하는 것은 이러한 측면에서 긍정적인 현상이지만 아직도 많은 플랫폼 노동자가 노동법에서 보장되는 권리를 충분히 누리고 있지 못하다.
플랫폼 노동자 보호 정책 정비가 신속히 이뤄져서 디지털 경제가 승자독식 경제가 되지 않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디지털 경제의 혜택을 평등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민원기 한국뉴욕주립대 총장 wonki.min@sunykorea.ac.kr
-
박지성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