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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미국 테네시강 유역개발(TVA)로 대표되는 최초 뉴딜은 수요 창출을 위한 경기부양책인 동시에 생산 기반의 혁신이었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댐 건설에 인력을 동원해서 고용을 창출한 점에 초점을 맞춰 불황기의 정부 역할을 강조했다. 그러나 당시 건설한 테네시강 후버댐은 수력발전원이면서 동시에 유용한 도로 인프라였다.

이는 정부가 총공급 측면의 혁신에서 마중물 역할도 수행했음을 의미한다. 미국 전역에 보급된 전력은 전기·전자, 통신, 정보기술(IT), 인터넷 등 20세기 산업의 기초가 됐다. 철도와 도로 인프라는 국민 이동성을 확대시켜 철강·자동차 산업과 함께 국민생활 패턴의 근본 변화를 가져왔다.

한국형 디지털 뉴딜 정책을 보면서 품는 기대도 비슷하다. 데이터(D), 네트워크(N), 인공지능(A) 등 DNA 생태계 강화를 위한 재정 투입이나 디지털 안정망 구축 노력 등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제품이나 서비스 생산 과정의 패러다임 근본을 바꿀 수 있는 혁신의 씨앗을 찾아내는 것이다. 한국형 뉴딜이라는 정책 기조 속에서 생산의 디지털화, 즉 스마트 생산 의미와 지향점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먼저 스마트 생산이 기업의 전체 제조공정 혁신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데이터 플랫폼 구축과 활용이 필요하다. 30여명의 현장 전문가로 구성된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의 열린혁신랩 워킹그룹에서는 스마트 생산의 본질을 물리 제조 공정이 데이터 비즈니스로 전환되는 것이라고 재정의했다. 단순한 공정 자동화를 넘어 전체 생산 과정에 데이터가 덧입혀질 때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이 창출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독일의 플랫폼 인더스트리 4.0에서는 제품·기기·설비 등 모든 자산을 디지털 형태로 제공하며, 제조의 디지털화를 지원하는 개념을 자산관리셸(AAS)이라고 설명한다. AAS는 사람과 제품뿐만 아니라 제품과 기계, 설비 간 소통 및 네트워킹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또 워킹그룹에서는 미래 생산시스템으로 전환하기 위한 준비로 제조데이터 표준화 및 라이브러리 구축, 가상 제조공장과 디지털트윈 기술을 활용한 공정 효율화, 스마트 생산 생태계를 통한 신규 디지털 서비스 발굴 등을 제안한 바 있다.

요컨대 스마트 생산의 정책 방향은 자동화에 따른 제조원가 절감이 아니라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생산시스템으로의 전환이어야 한다.

이와 함께 불황기 공공부문 역할과 원칙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20조원 규모를 유지해 오던 우리나라 연구개발(R&D) 예산은 2020년 24조원, 2021년 27조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18% 및 12% 증가했다. 일본의 대 한국 수출 규제, 코로나19의 전 세계 확산 등 실물 부문 충격과 미국 및 중국의 기술패권주의 강화 등이 배경이다. 기술 개발 재정 지출 확대를 통한 혁신 성장의 씨앗 뿌리기 노력은 경제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한 노력으로서의 의의가 있다.

다만 불황기에 바람직한 정부 모습은 단순한 펀딩 주체가 아니라 민간의 혁신 리스크를 분담해 주는 역할이어야 한다. 제조 기술 개발을 비롯한 총공급 측면의 혁신은 생산 주체인 기업의 자발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민간의 기술 개발 성과물을 공공 조달과 연계시키는 'R&D-공공조달 연계사업'은 혁신을 유인하는 정부 역할을 포함하기 때문에 바람직하다. 같은 맥락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혁신 제품의 정부 조달을 제조 혁신 핵심 사업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 규모는 향후 4년 동안 4000억달러에 이른다.

자동차와 전력은 20세기 초 대중의 상상력이었다. 최신 기술에 기반을 둔 공공사업을 통해 상상은 점차 현실이 됐다. 여러 관련 산업의 생멸과 진화를 거쳐 지금의 사회가 만들어진 셈이다. 디지털 뉴딜과 스마트생산이 한국 산업과 경제에 새로운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박찬수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전략기획실장 pcs1344@step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