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준의 어퍼컷]'망사 팬티'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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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이 개정한 '신용정보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신용정보법)'시행조치를 놓고 뒷말이 많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상품 주문내역정보를 공개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주문정보는 소비자가 구매한 상품의 이름, 규격, 수량 등을 일컫는다. 가령 '빨간 팬티 2장 85사이즈, 망사 팬티 5장 100사이즈'와 같은 식의 자세한 구매상품 정보다. 가명으로 처리한다지만 민감한 개인정보가 포함될 수 있다. 논란이 이어지자 금융위가 협의를 위해 회의를 소집했지만 당사자인 전자상거래 업체는 참석조차 거부했다.

날선 공방 배경은 '주문내역정보를 신용정보 혹은 개인정보로 볼 것인가'에 따른 견해차다. 금융위는 개인 신용평가와 분석을 위해서는 주문정보를 포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껄끄러운 정보는 범위를 제한해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데이터 공유 상호주의'라는 원칙까지 들고 나왔다. 전자상거래업체는 세세한 개인정보는 소비자 반감을 불러일으킨다고 우려하고 있다. 쇼핑몰 이용을 꺼려해 시장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강변한다.

속내도 그럴까. 여러 이야기가 들린다. 금융당국은 '빅테크 기업 견제'다. 네이버와 카카오와 같은 신생 기업에 힘이 실리면서 불만이 높아진 금융사를 달래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마이데이터 사업을 놓고 정보 불균형이 생기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업체도 셈법이 깔려 있기는 마찬가지다. 소비자를 이유로 내세우지만 결국 '데이터 비교우위' 때문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주문내역 정보는 맞춤형 상품을 위한 핵심 데이터다. 차별화를 위한 가장 큰 무기를 누구도 허투로 공개하지 않을 것이다.

내막은 알 수 없다. 사실 중요하지도 않다. 과거 경험에 비춰 볼 때 법 실행을 앞두고 더 큰 불협화음이 나오지 않는 게 신기하다. 그래도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데이터 3법의 취지와 의미다. 데이터 3법은 20대 국회의 최대 쟁점 법안이었다. 정부와 산업계가 한목소리로 외치면서 국회 막바지에 가까스로 통과됐다. 제조업 중심 산업 경제를 마감하고 인공지능(AI)주도의 데이터 경제가 열린다는 큰 흐름을 공감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데이터 경제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대통령까지 나서 데이터 경제를 강조하는 상황이다. 정치·사회·경제·문화 모든 분야에서 데이터와 AI가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데이터 경제의 성패는 개인정보보호에 달려 있다. 개인정보는 당연히 보호받고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엄격하게 적용할수록 데이터 수집과 이용은 힘들어진다. 혁신 기술과 서비스는 가시밭길이 불가피하다. 공개와 보호의 교집합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적정한 개방수위를 정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주문정보 공개 논란은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더 심각한 개인정보 이슈가 나올 개연성이 크다. 자칫 데이터 경제의 발목까지 잡힐 수 있다.

그래서 데이터 주권이 중요하다. 결국 주인이 선택해야 한다. 불행히 지금까지 개인정보보호 논란에서 주인은 빠져 있었다. 정부도, 기업도 심지어 시민단체도 손님(객)일 뿐이다. 주객이 바뀌었다. 단, 주인이 되기 위한 조건은 있다. 결정역량이 있는 지 여부다. 스스로 판단할 정보는 물론 권한도 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정보를 스스로 판단해 볼 수 있는 경험이 중요하다. 필요하다면 시행착오도 감수해야 한다. 복잡할수록 원칙을 따라야 한다. 진리는 단순함에 있는 법이다. '오컴의 면도날'과 같은 결단이 필요하다. 주인이 응답하지 않는다면 강제소환이라도 해야 한다. 마이데이터 사업은 이를 위한 첫걸음이자 워밍업이다.


취재총괄 부국장 bjk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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