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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 서울특별시교육청 부교육감

2016년 벽두에 열린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의 주제는 '4차 산업혁명'이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미래사회의 기술적, 경제적 패러다임의 변화는 이미 가속화되기 시작했을 터였다.

우리 교육계가 미래를 주요 정책 의제로 삼은 지는 꽤 오래다. 미래사회의 특징을 세계화와 정보화로 규정하고 미래를 선점하기 위한 국제경쟁력을 강조한 1995년 5.31 교육개혁으로부터 따진다면 근 한 세대가 지났다. 그 사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정보통신기술이 익숙했던 일상을 뒤흔들고 해법이 난망한 전 지구적 난제가 인류의 생존을 시시각각 위협해오면서 세계 교육계는 앞 다퉈 미래핵심역량을 강조했다.

최근 몇 년 우리 교육계도 일상에 구현되기 시작한 미래를 목도하면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교육과정 개정, 수업-평가방법 혁신, 미래학교 운영, 메이커·소프트웨어교육, 무크(MOOC) 시스템 구축 등 '미래'라는 키워드로 수렴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갔다.

올 봄, 여느 겨울독감처럼 적당한 시점에 물러가리라 생각했던 코로나19가 팬데믹으로 번졌다. K방역의 성과를 이야기할 정도로 상황이 호전됐으나 2학기를 앞두고 발생한 2차 팬데믹 조짐으로 또다시 비대면 일상이 강화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초래한 전격적이고 전면적인 비대면 일상은 모두에게 당혹스러웠다. 대면을 전제로 구축된 공교육시스템도 예외는 아니었다.

최초의 온라인 개학이라는 부담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학교현장은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교사를 비롯한 학교현장 구성원의 역량과 헌신적 노력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초래한 원격수업 과정에서 그동안 미래를 준비하면서 미처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던 문제가 드러났다. 학생의 자기주도적 학습능력과 디지털 리터러시, 가정환경 차이에 따라 교육격차가 심화됐다. 뿐만 아니다. 학교폭력은 사이버 공간으로 옮겨 나타났고, 사이버 도박에 빠진 학생도 늘어났다. 아동 학대와 돌봄 공백도 문제였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장애학생, 유·초등학생, 기초학력 부진학생, 결손가정 학생 등 배려가 필요한 학생에게 원격수업이 갖는 한계가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돌봄과 배려가 필요한 학생들을 원격으로 도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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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신문 DB

코로나19 팬데믹은 분명히 재앙이다. 그러나 미래 교육체제로의 변화를 서둘러 도모해야 하는 공교육계로서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그 변화를 위한 노력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먼저 온·오프라인 교육이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최적의 배합 지점을 찾고, 오프라인 교육의 보완 수준에 머물렀던 온라인 교육을 공식화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원격수업 경험을 통해 교육과정 다양화와 접근성 확대 등 원격수업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은 큰 성과다. 공교육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지속가능한 학교체제로의 변화 노력이다. 이번 코로나19 팬데믹은 학교의 전통적 모습에 의문을 던졌다. 이제는 학교도 자신의 진로에 맞는 과목을 자신에게 맞는 순서와 속도로, 자신이 선택한 시공간에 공부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는가라는 가능성을 이번 경험을 통해서 보게 된 것이다. 물론 복잡하고 어려운 선결문제가 산적해 있지만 적어도, 지속가능한 학교로의 변화 방향은 학생 한 명, 한 명의 개성과 처지가 온전히 배려돼야 한다는 것 만큼은 분명하다.

자율과 파격, 협력을 지향하는 행정 혁신을 위한 노력도 요구된다. 조직의 성패는 문제를 민감하게 발견하고 해결하는 시스템과 역동적이고 창의적이고 유연한 조직 문화에 달려 있다. 단위 조직이 가진 역량, 전통적 관료적 방식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난제가 속출하는 요즘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조직 구성원들의 자발성, 자율성, 창의성이 장려되고 단위 조직을 넘어 협력하는 조직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주고슬(膠柱鼓瑟)'이라는 말이 있다. 거문고의 줄을 떠받치면서 음을 조정하는 안족(雁足)이라는 기둥을 아교로 고정시키고 연주한다는 말이다. 누가 이렇게 어리석은 행동을 하겠는가마는, 현실 속에서는 어리석은 일이 명약관화하게 분별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우리는 정말 미래를 잘 준비하고 있는가. 우리 학생들이 좁은 대학문을 들어가기 위한 대열의 맨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역량이 아니라 개성과 공동체성을 지닌 미래 핵심역량을 지닌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제대로 지원하고 있는가. 매 연주마다 악기의 음을 조율하듯, 교육을 생각하는 매 삶의 순간, 일상 곳곳을 남김없이 성찰하고 혁신하려고 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이것이 코로나19 팬데믹이 준 교훈이자 기회를 살리는 길이다.

김영철 서울특별시교육청 부교육감 yungchul116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