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보호 규제 때문에 사업을 할 수가 없어요.” 정부의 여러 가지 데이터사업 활성화 정책도 불만을 잠재우지 못한다. 지난 2월에는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을 개정하고 분산된 개인정보보호 기능을 통합해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개보위)를 확대 개편했다. 다른 나라 개인정보위원회 위상에 견줘 충분치는 않지만 유럽연합(EU) 개인정보보호규정(GDPR) 대응과 국내 개인정보 산업 발전을 위해 환영할 일이다. 개인정보보호 정책 입안과 관련 부처의 지휘·감독·조정으로 국민 권익 보호와 데이터 산업 발전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개보위의 최대 과제는 '개인정보 활용과 보호의 균형점'을 찾는 일이다. 개인정보 침해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데이터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접점은 이해당사자 생각에 따라 그 폭이 엄청나게 크다. 일정 피해를 감수하고 산업 발전을 도모하는 정책이 옳은지조차 판단하기 어렵다. 데이터 비식별화 조치에도 여전히 불만의 목소리가 존재하는 이유다. 개보위가 결정의 권한을 십분 발휘, 산업과 개인 요구를 동시에 충족시켜야 하는 난제를 해결해야 한다.
개보위는 방송통신위원회와 행정안전부, 금융위원회 일부 기능을 통합했을 뿐 금융정보와 의료정보 관련 정책은 여전히 여러 부처에 산재해 있다. 금융 거래가 신용정보이기 때문에 개보위가 다룰 사항이 아니라는 부처 이기주의도 여전하다. 아직 개인정보 관련법과 정책이 서로 다른 수레에 실려 있어 여러 개의 수레가 협조해서 함께 달리는 묘수를 개보위가 제시해야 하는 실정이다.
개보위가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특정 부처의 입김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이미 인사를 담당하는 부처에서 개보위를 쥐락펴락 한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수레가 함께 달리려면 우선 특정 부처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야 한다. 협력을 위해 관련 부처를 좌지우지하려는 시도보다 각 분야의 특성을 고려한 정책을 수립, 운영해야 한다. 개인정보는 내용과 상황에 따라 피해 규모나 활용 정도가 상이하기 떄문에 획일성에서 탈피한 다양한 규제의 일관성 있는 정책이 묘약이다.
개보위의 글로벌 협력은 인터넷 확장과 함께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개인정보보호와 관련한 법과 제도가 국가마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의 개인정보보호 표준에 적극 개입하는 일과 민간기관의 가교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인터넷 비즈니스 보편화와 함께 개인정보보호 제도가 산업 경쟁력 강화 필수 요건임을 감안하면 개보위의 외교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지 쉽게 이해된다. 남이 만든 법을 따르는 위치에서 선도하는 위치로 변신해야 한다. 표준은 균형의 맞춤이 아니라 선도하는 자들의 논리로 만들어진 틀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개보위 위원장에게 “균형과 조화로 보호의 지평을 새로 시작하라”는 의미를 꽃다발에 담아 선물했다. 대통령만이 아니라 국민이 염원하는 개보위의 모습이다. 처벌 강화로 질서를 유지하려는 구시대 발상은 버리고 국민의 이해와 협조로 한걸음씩 전진하기를 바란다. 코로나19와 홍수 피해 때문에 지면 할애가 어려운 탓도 있지만 위원회 출범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그러나 개보위의 일거수일투족을 응원하는 국민과 함께 '보호와 활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신뢰의 조직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정태명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 tmchung@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