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서 남자로 살아간다는 것, 특히 중년 남성의 삶은 크게 조명 받지 못한다. 싱글맘, 미혼모, 경단녀 등 중년 여성들의 이야기는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반면 같은 또래의 남성들을 주제로 한 이야기는 드문 실정이다.
영화 '미안해요, 리키'(감독: 켄 로치)는 가족, 직장,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외로운 삶을 살아가는 중년 남성 '리키'(크리스 히친)와 그 가족의 이야기를 담았다.
리키는 11살 막내딸 '라이자'(케이티 프록터), 사춘기 아들 '세브'(리스 스톤)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 '애비'(데비 허니우드)가 있는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가장이다.
리키는 가족과 안정적인 삶을 살기 위해 택배 회사에 가사로 취직한다. 회사에서 그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하고 가정에서도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며 소박한 행복을 꿈꾼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아내 애비도 하루 종일 간병인 근무를 하며 함께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
그러나 현실은 차갑기만 하다. 경제적인 어려움에 아이들까지 문제를 일으키며 부부간 다툼이 잦아진다. 큰 위기에 봉착한 리키네 가족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행복했던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켄 로치 감독은 제69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신자유주의 복지국가의 허상과 인간의 존엄성을 고찰했다. '미안해요, 리키'는 그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적인 목소리가 세계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혹자는 한계점에 다다른 자본주의를 대신해 사회주의로 환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안해요, 리키'는 전 세계 모든 서민층을 대변하는 리키네 가족을 통해 현대 자본주의 사회 경제 시스템에 심각한 결함이 있음을 경고한다.
아울러 지금처럼 경제력이 최우선시 되는 사회에서 그 희생양은 대부분 리키와 같은 중년 남성들이라고 말한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밤낮 없이 일하지만 소득은 부족하고 그로 인해 가족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결국 사회와 가정에서 소외된 그들이 설 자리는 없어 보인다.
누구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국가들은 이에 대해 심각성을 깨닫고 보다 공정한 자본 분배를 위한 시스템 구축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국민이 있어야 국가가 있는 법이고 그 대부분의 국민은 리키네 가족과 같은 서민들이다.
'내일'의 희망을 배달하지만 정작 '오늘' 행복할 시간조차 없는 리키네 가족 이야기는 삶의 이유가 되는 '뜨거운 가족애'라는 보편적인 의미와 함께 통렬한 사회적 메시지와 질문을 던지며 묵직한 울림을 전한다.
괴한들에게 습격을 당해 한 쪽 눈이 퉁퉁 붓고 뼈가 부러지는 등 온 몸이 성치 않은 상태에서도 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트럭을 몰고 배송을 나가는 리키의 모습에서 '아버지'라는 이름이 지닌 삶의 무게가 온전히 느껴진다.
'미안해요, 리키'는 12월 19일 국내 개봉한다. (사진 제공 = 영화사 진진)
전자신문 컬처B팀 김승진 기자 (sjk87@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