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혁신성장의 길, 혁신생태계 구조에서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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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경제가 선진 구조에 이르지 못한 가운데 저고용, 저성장과 높은 복지 수요 등 선진경제형 진통을 겪고 있다. 지난 노무현 정부의 과학기술 중심사회 등 혁신 경제로의 구조 전환을 통해 경제사회 선진화를 국가 발전 목표로 삼은 지 20년이 다 돼 가지만 아직도 혁신 경제로의 길은 멀어만 보인다.

우리나라가 혁신 성장을 지향하고, 이를 위해 막대한 자원을 투입하고 다양한 정책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데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우리 사회에서는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혁신 열의와 높은 투자에도 성과는 이에 미치지 못하는가.

다양한 국내외 혁신 역량 평가를 기준으로 보면 우리 경제는 이미 기술 혁신이 왕성한 혁신 경제를 실현했어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이는 연구개발(R&D) 혁신 투자, R&D 인력, 정보 인프라 등 투입 요소 위주의 혁신 역량 평가가 얼마나 현실을 왜곡하는지를 잘 보여 준다.

혁신이 어떻게, 어떠한 환경에서 일어나는지에 대한 이해와 분석이 없는 혁신 역량 진단과 이를 바탕으로 한 정책은 효과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개선이 필요하다.

정부·기업·대학·연구기관 등 기술 혁신 주체들은 사회의 문화, 규범 및 법제도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의 혁신 지향성(미래지향성·미래투자, 진취성, 모험성 등의 권장 또는 저해) 평가가 필요하다. 단기 및 가시 성과에 집착하는 우리 R&D 문화는 혁신 지향형이라 할 수 없다.

혁신은 사회 구성원 간 자발에 따른 상호작용 결과다. 우리 사회의 문화·관행·제도가 개인 간, 조직 간 수평 및 상호 관계를 권장 또는 저해하는지 평가할 필요가 있다. 수평 및 상호 관계보다는 수직 및 일방 관계에 익숙한 우리 시스템의 문제를 짚어 봐야 한다.

혁신 투자의 효율성은 투자 규모뿐만 아니라 투입 요소가 어떻게 배분·결합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에 개별 혁신 주체의 역량은 물론 투입 요소(인력, 재원 등)의 부문 간, 주체 간 이동성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처럼 분야별 칸막이가 공고한 '폐쇄형 경쟁' 체제에선 자원을 효율 높게 활용할 수 없다.

혁신은 창의성에서 나오고 창의성은 다양성에서 배태된다. 즉 다양한 아이디어가 상호 융합해 새로운 아이디어로 진화하고, 새로운 변종을 만들어 낸다. 창의는 다양한 생각의 표출이 허용·권장되는 사회에서 왕성하게 일어난다. 우리 사회가 이런 구조인지 평가도 해봐야 한다.

또 하나 강조하는 것은 혁신 투자의 효율을 사회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비 지원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업 단위의 목표 달성에 집착한 나머지 '작은 성공'만을 양산하는 사회보다 성공을 장려하되 실패도 허용할 뿐만 아니라 실패를 자산으로 활용할 줄 아는 사회에서만 '큰 성공'을 기대할 수 있다.

작은 성공만을 양산하는 우리 R&D 문화·정책·평가제도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

실패가 자산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연구자, 기관의 정직성, 책임성, 최선을 다하는 직업윤리가 전제돼야 한다. 연구관리 기구와 연구자 간 신뢰도 필수다.

혁신은 예측 가능한 안정된 사회제도 환경에서만 일어난다. 제도 안정, 경제 안정이 미래 투자를 촉진시키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제도에 대한 신뢰는 미래 투자를 촉진시킬 정도로 높지 않다.

혁신은 혁신 주체의 상호작용과 혁신 자원의 효율 배분 및 활용을 유도·촉진하는 혁신 생태계에 의해 결정된다. 이에 따라 혁신 정책 효과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혁신 생태계 작동 원리 이해와 생태계를 구성하는 요소 및 요소 간 관계를 결정하는 문화·관행·제도(관계자본)에 대한 체계화한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 혁신 성장의 길은 혁신 생태계 구조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성철 원정연구원장 scchung5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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