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가 쏟아지던 지난주 목요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위워크 회의실은 폭우를 뚫고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자리가 부족해서 수십명은 선 채로 발표를 들었다. 이제 막 한국 지사를 설립한 회사의 서비스 설명을 듣기 위해서다. 회사는 고객경험관리(CXM) 솔루션을 서비스형소프트웨어(SaaS)로 제공하는 스프링클러다. 일반인에게 생소하지만 업계에선 유명한 SaaS 업체다. 스프링클러는 한국 SaaS 시장이 열린다며 지사 설립 배경을 전했다. 이를 입증하듯 설명회가 끝날 때까지 회의실에서는 한 명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SaaS 기업이 몰려온다. 글로벌 SaaS 1위 업체 세일즈포스는 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지 10년 만에 지사를 설립했다. 인력을 대량 충원하며 공격 영업에 나섰다. 인력관리(HR) SaaS 업체 워크데이와 코너스톤 온디맨드, 공급망관리(SCM) SaaS 1위 업체 오나인(o9) 등 그동안 들어보지 못한 SaaS 업체가 대거 한국에 진을 쳤다.
최근 SaaS 기업의 잇달은 한국 시장 진출은 3년 전을 떠올린다. 그때 서비스형인프라(IaaS) 업체가 대거 한국으로 몰려들었다. 아마존웹서비스(AWS)와 마이크로소프트(MS)는 2016년 초 국내용 데이터센터 설립 계획을 발표하며 한국 시장 공략을 알렸다. 이들 기업은 불과 3년 만에 국내 IaaS 시장을 장악했다. 전체 시스템을 AWS로 옮기는 획기적인 사례까지 만들었다. 3년 전에 클라우드 불모지이던 한국이 클라우드업계의 매력 만점 시장으로 떠올랐다.
3년 동안 국내 기업도 IaaS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경쟁력을 길렀다. 네이버비즈니스플랫폼(NBP), NHN 등이 새롭게 IaaS 시장에 뛰어들었다. 신규 시장도 창출됐다. 주요 IaaS 기업과 협력해서 서비스 구축을 지원하는 베스핀글로벌은 창업 3년 만에 연 매출 1000억원을 올렸다. 나무기술, 이노그리드 등 IaaS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은 IaaS 관리·연동 등 틈새시장에서 성과를 거뒀다.
IaaS에 이어 SaaS 물결이 다시 한 번 밀려온다. 국내 클라우드 시장이 IaaS를 넘어 SaaS로 가는 시기다. IaaS가 3년 만에 확고히 자리를 잡았듯 SaaS 역시 순식간에 확산될 가능성이 짙다. 이미 삼성· LG전자 등 주요 대기업은 SaaS를 일부가 아닌 전사 차원에서 도입하고 있다. 보수성 강한 금융과 공공도 최근 클라우드 완화 정책을 펼치며 SaaS 도입 문호를 열었다.
그러나 아직 국산 제품 가운데 시장을 대표할 만한 SaaS 서비스가 없다. 세일즈포스, 워크데이 등 글로벌 제품 대항마가 보이지 않는다. 또 한 번 밀려드는 물결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만들면 된다. IaaS 시장도 3년 전에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최근 국내 IaaS 기업은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는 단계까지 성장했다. 대기업부터 스타트업까지 업계가 IaaS 전문 인력 양성, 주요 기업 인수 등 투자를 강화한 덕분이다.
SaaS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미 분야별 주요 패키지 SW를 보유했다. 다만 SaaS 시장에 대한 이해와 준비가 부족할 뿐이다. SaaS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까지 진출 가능한 분야다. 지금 SaaS 전환을 서두른다면 세계 진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동안 정책이나 지원 대부분이 IaaS에 치우쳤다. 기업과 정부 모두 SaaS 시장을 재진단하고 투자를 강화해야 할 때다. 물결은 이미 우리 턱밑에까지 왔다.
김지선 SW 전문기자 riv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