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을 쓴 자가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는 말처럼 리더의 직위만큼 그 자리가 무겁다. 요즘 직장인 괴롭힘 금지법에 적용되는 사례가 뉴스화되면서 리더들이 긴장하고 있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이제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이다. 말하기도 조심스럽고 지적하기도 무섭단다. 칭찬을 해도 성희롱이랄 수 있고 지적을 해도 인격모독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부가 지시한 책임은 무겁고 갈 길은 먼데 후배들은 까다롭고 매서워지고 있다. 언제 내 말이 녹음되고 어디서 내 메시지가 캡처될지 몰라 불안하단다. 자나깨나 불조심이 아니라 자나깨나 말조심을 해야 한다.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한 말과 행동이 결정적 순간에 새롭게 각색돼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몸을 사린다. 가치있는 일을 하는데 시간을 쏟는 게 아니라 책 잡히지 않으려고 신경을 쓰고 있다. 리더로서 비전을 제시하고 한계를 뛰어넘도록 용기를 북돋아야 하는데 실수에 연연하고 나쁜 결과를 피하는데 에너지를 쓰고 있다.
그간 당연했던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터득하고 몸에 익히는 시간 동안 이 터널은 필수불가결하다. 이전과 질적으로 전혀 다른 상태로 진입하려면 경계를 넘는 고통이 수반된다. 플라톤은 이 경계를 고대 그리스어로 '코라(chora)'라고 했다. 코라는 새로운 것을 잉태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자리다. 이전 가치관이 하루 아침에 단절되고 새로운 룰이 바로 그날부터 생성되는 게 아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모호하고 불안한 모순의 연속성 속에서 조화로운 통일성이 만들어진다. 우리는 지금 코라를 건너고 있는지 모른다. 각자 생각의 차이와 시간의 차이를 뚫고 자신의 경계로부터 나와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중이다. 이런 코라의 시기에 지혜로운 리더는 쇠락하지 않고 성숙해진다. 코라의 터에서 위축되지 않고 확장한다. 차이 사이에서 예전 것을 비우고 새로운 것을 배운다. 이것이 삶의 일부라는 점을 받아들이고 껴안는다. 과거로 상징되는 것을 의도적으로 버릴 줄 아는 용기가 있고, 새로움을 향해 호기심을 갖는 여유가 있다. 그간 옳았다고 생각했던 것을 소멸시키고 새로운 자신을 창조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다. 오래된 나로부터 탈출하고 낯설은 곳으로 기꺼이 간다. 추종자 대신에 비판자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결점을 감추기보다 부족한 점을 찾으며 배운다.
배움이란 자신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고 자신이 안주하는 시공간에서 나오는 일이다. 모르면 묻고 실수하면 인정한다. 잘못한 건 사과하고 그 속에서 배운다. 몰라도 상관없다. 불확실성의 세상에서 호언장담하는 것이 더 의심스럽다. 리더도 모르고 후배도 모르지만 함께 찾아나갈 의지가 있으면 된다. 탐험하고 실험하며 모험하는 것을 삶으로 여긴다. 그간의 리더는 겁나지만 겁난다고 말 못하고 모르지만 모른다고 말 못해왔다. 왜냐하면 높은 자리에서 외로움을 극복하며 위험을 무릎쓴 절대자였기 때문이다. 면접 때 후배를 뽑아준 시혜를 베푼 권력자였고 경쟁하여 이기고 올라간 승리자였다. 누군가의 위에서 군림하는 자였고 그만큼 떨어질 위험을 감수하는 자였다. 리더는 높았고 외로웠고 위험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요즘 리더의 권한은 불확실하고 유동적이다. 요즘 세대에게 리더는 단지 역할과 입사시기가 다른 동료일 뿐이다. 필요할 때 조언할 수 있지만 지시할 수 없는 존재로 여긴다. 조건부로 권한을 맡겼을 뿐 언제든 이의를 제기하거나 해임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리더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리더는 높은 사람이 아니라 넓은 사람이다. 높은 자리에서 홀로 외로운 사람이 아니라 넓은 영향을 주며 여럿과 함께 동행하는 사람이다. 콩이 구르는 것보다 수박이 구르는 게 낫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혼자 하면 1을 할 일을 셋의 능력을 이끌어내어 5를 만드는 사람이다. 이제 더 이상 높은 곳에서 외로울 필요 없다. 혼자 다 알아야 할 필요가 없다. 리더는 눈 내리깔고 목에 힘주는 사람이 아니라 눈높이를 맞추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같이 고민하는 사람이다. 깃발을 들고 앞장서는 사람이 아니라 어깨동무를 하고 발맞춰 나아가는 사람이다. 입 단속, 행동 단속하려고 마음을 닫는 것 대신에 새로운 룰을 익히기 위해 마음을 열자. 경계를 풀고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말을 타고 숲을 지날 때 나뭇가지에 얼굴을 부딪치지 않으려고 온 신경을 쓰다보면 바닥에 놓여있는 바위를 보지 못해 말에서 떨어진다. 조심스럽게 행동하느라 리더의 역할조차 놓쳐버리면 안 된다. 현대 철학자 질들뢰즈는 노년기의 젊음이란 청춘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세대에 맞는 청춘을 매번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정한 자신감은 열린 자세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용기다. 내 것을 움켜쥐기 보다 남의 것을 받아들이는 포용력이다. 긴장감을 내려놓고 호기심을 발동시키자. 높은 사람 취급하지 않는다고 섭섭해하지 말고 넓은 사람이 되자.
지윤정 윌토피아 대표이사 toptm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