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제는 현실이다. 예정된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 등재 논의와 함께 징벌적 과세 논의 가능성과 마주했다. 여성가족부가 정한 중독기준 미달로 셧다운제 적용이 안된 모바일게임도 향후에는 적용될 가능성이 열렸다.
게임업계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2025년까지 KCD등재를 막기 위한 논리를 개발하거나 게임과 게임장애를 완벽히 분리해 이해시킬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다. 또 보건 복지부는 부인했지만 논의 가능성이 높은 중독세, 기금 징수 절차로 번지지 않게 막는 것에 중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업계는 그동안 게임장애에 대해 관망하는 자세를 취해왔다. 반대 목소리를 높여 온 학계, 유관단체와 비교하면 소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몇몇 기업이 연구자금을 내놓거나 대표가 언급하는 것 외에는 줄곧 '남의 일'이었다.
총회를 앞둔 5월 들어서야 한국게임산업협회가 견해를 밝혔다. 개별 기업도 뒤늦게 목소리를 냈다. 그마저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했다. 네오위즈와 엔씨소프트는 캠페인 이미지를 사용해 '놀이문화'라는 측면을 강조했다. 넥슨과 스마일게이트는 노동조합이 반대 의사를 표했다.
남궁훈 카카오게임즈 대표도 SNS를 통해 의료계를 공개 비판했다. 그는 “게임에 몰입하는 것은 현상이지 원인이 아니다. 원인을 찾아야 치료할 수 있는데 게임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정신과 의사들이 아이들과 제대로 소통할 리 없고 제대로 치료될 리 만무하다”고 주장했다. 업계는 상황을 반전시킬 혹은 여론 변화를 이끌어낼 적극적인 행동은 하지 않았다. 책임을 의료계와 사회 인식에 돌리려 했다.
시간이 없던 것도 아니다. 방준혁 넷마블 의장은 2016년 “나서냐, 안 나서냐가 중요하다기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현실적으로 대응할지가 중요하다”며 “특정 회사 대응보다는 협회와 게임사가 관련된 다양한 유관 단체들이 머리를 맞대 좋은 안을 만들고 이를 적극 건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때 이후로도 대응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문화라고 주장하고 놀이에 대한 탄압이라고 산발적인 저항만 했다. 게임업계는 주류, 담배업계와 달리 적극적으로 논란에서 벗어날 방어논리를 개발하지 않았다. 관계기관 연구용역 정도만이 체면치레를 했다. 의료화가 잘못됐다고 하고 논문을 지적했으나 '우리들끼리' 이야기로만 그쳤다. 반면 입증책임이 있는 보건업계에서는 통일된 의견으로 기준과 사례를 들고 나왔다.
게임업계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와 '업계가 나서면 오히려 우리 이미지 때문에 역효과가 난다'고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질병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오히려 질병으로 프레이밍될까봐 두려웠다. 외교부가 일본 도발에 대응하면 독도를 국제분쟁지역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무대응으로 넘어가는 전략과 같은 맥락이었다.
셧다운제, PC온라인게임 한도제한, 확률형아이템 확률공개 등 규제를 거치면서도 매출후퇴가 없다는 점도 영향을 끼쳤다. 일시적인 매출 하락은 있었지만 게임산업은 규모를 계속 불려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러는 동안 게임 이용자가 등을 졌다. 과거 셧다운제가 시행될 때 게임이용자가 게임사를 지원하고 나선 것과 반대다. 확률형아이템과 양산형 게임 범람으로 차라리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중독세 논의가 새로 불붙을 때 게임업계가 우군을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란 지적이다. 보건복지부는 게임중독세에 대한 논의나 추진이 없었다고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혔지만 정해진 수순이라고 보는 게 업계 분위기다. 추진 시도는 과거 정치권에서도 있었다. 최도자 바른미래당 의원은 게임사업자 연간 매출의 0.35%를 중독세로 징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손인춘 전 의원도 여성가족부가 게임사업자 연간 매출의 1% 이하 범위에서 중독치유부담금을 징수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장은 “KCD 논의 전까지 내부 체제를 정비해 정부나 여론에 보내는 대외 메시지 등 전방위적 대책 수립이 필요하다”며 “이제 진위논쟁에서 정치영역으로 변해 어떻게 압박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며 행동을 이끌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현수기자 hsoo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