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예산으로 전국에 구축한 공용 충전기 가운데 상당수가 여전히 부실 시공된 채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충전기와 주차면 간 거리가 5m 이상 떨어져 있는 등 사용이 어려운 곳이 적지 않다. 여성 전용 주차면 또는 화단에 충전기를 설치하고, 심지어 손이 닿지 않은 곳에 기기가 위치한 현장도 있다.
정부는 전자신문이 지난해 다수의 부실 공사를 보도할 당시 전수 조사를 통해 개선에 적극 나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부실시공 문제는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충전기 부실시공으로 전기차 사용자 불만이 여전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가 최근 관련 업계와 전기차 사용자로부터 제보 받은 15곳 가운데 7곳의 부실 공사 현장을 찾았다.
충전기와 주차면 사이가 5m 이상 떨어져서 정상적인 이용이 불가능한 곳은 세 곳이다. 서울 양천구 신정동 및 종로구 창신동 주민센터 충전기는 주차면과 크게 떨어진 채 기본적 안전장치도 없이 화단 안에 설치돼 있다. 제주시에 설치된 두 곳의 충전기는 사람 접근이 어려운 정원 안에 깊숙이 위치하고 있었다. 이들 모두 스토퍼·볼라드나 충전·주차 표시면이 전혀 표기되지 않았다.
서울 성북구 정릉동의 한 아파트는 여성 전용 주차면에 충전기를 설치, 사용자의 혼동이 우려된다. 경기도 용인의 한 아파트는 충전기가 지상으로부터 170㎝ 높이에 설치돼 있어 키 작은 사람은 손이 잘 닿지 않았다. 서울 동부수도사업소에는 주차면이 4개지만 충전기는 6대가 설치됐다. 다수의 충전기 설치 연장이 부실시공으로 의심된다.
정부가 집계한 공용 충전기 가운데 일부는 실제 이용자가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실정이었다. 설치 사업자가 예산 확보를 노려 보급 기기 수만 늘리면서 심히 예산 낭비가 우려된다.
이들 충전기는 정부가 지정한 충전 사업자가 국가 예산을 받아 전국 각 지역에 구축했다. 공용 또는 부분공용 충전기다. 충전기당 최대 350만원 수준의 예산을 지원했다.
관련 업계는 전국적으로 문제가 되는 시공 현장이 전체의 10% 이상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정부사업자는 자체 사업비 하나 없이 매년 수십억원의 정부 예산을 악용, 부실 충전소를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지난해 부실 공사가 드러난 해당 사업자에게 신규 사업자 선정에 따르는 불이익과 보조금 환수 등 조치를 시행한다고 밝힌 바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3월까지 전수조사를 하고 있으며, 부실시공 등에는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면서 “매년 1만2000개 이상 충전기가 들어서기 때문에 실시간 관리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국가가 지정한 공식 충전 사업자는 대영채비, 에버온, 지엔텔, 제주전기차서비스, 포스코ICT, 파워큐브, 한국전기차충전서비스, KT 등 8개사다.
박태준 자동차 전문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