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 칼럼]ICT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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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혁신기업이 저가제품을 만드는 기업에 어떻게 전복되는가'를 연구해왔다. 저서 '혁신기업의 딜레마' '성공기업의 딜레마'에서 말이다. 책에는 혁신 기업이 모방적이고 저가제품을 만드는 '허접한' 기업에 멸망하는 과정을 담았다.

그의 이론은 '신제품은 언젠가 기성품이 되고 다음에 출현하는 신제품에 의해 파괴된다'는 가설을 전제한다. '기존 기술에 집착해 새로 등장하는 파괴적 기술을 등한시'해 투자하지 않으며, '시장에서 요구하는 것보다 더 빨리 신기술을 개발'하는 전략적 오류가 더해지면 한순간 무너진다. 혁신하지 않는 기업은 말할 나위 없다.

14인치 컴퓨터 드라이브가 8인치·5.25인치 드라이브에 밀린 과정이, 코닥이 디지털카메라에 밀리는 과정이 그랬다. 디지털카메라가 스마트폰에 자리를 내주는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혁신의 딜레마에 '시간'이라는 변수를 집어 넣으면 시장은 더 가혹하다. 최근 시장은 혁신 주기가 과거에 비해 훨씬 빠르다. 우리는 증강현실 속 몬스터를 잡기 위해 속초로, 강릉으로 차를 몰고 갔던 그 시절을 기억조차 하지 않는다. ICT 시장에서 혁신제품이 기성품이 되는 시기는 6개월 정도. 애플과 삼성전자가 화웨이와 오포, 비보, 샤오미에 도전을 받는 이유가 그것이다.

'공간'이라는 변수까지 넣으면 아비규환이 된다. 기존에는 동일업종 간 경쟁을 전제로 했지만 지금은 이업종 경쟁이 더 무섭다. 아마존과 페이스북, 테슬라가 무엇을 하는 기업인지 나조차 모른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어디와 M&A를 하는지, 협력을 하는지 알기조차 힘들다. 기존 전통기업에 ICT를 넣으면 경쟁자로 탈바꿈한다. 농업에 ICT를 넣으면 스마트농장, 공장에 ICT를 넣으면 스마트공장이 된다. 재래식 군사무기에 IT를 접목하면 스마트무기가 된다.

지난해 우리나라 연간 무역수지 흑자는 705억달러, ICT 무역수지 흑자는 1132억8000만달러다. 2000원을 수출하면 1000원이 남는 구조다. 다른 부문 적자를 ICT부문 무역수지로 때운다는 말이다. 메모리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 수출은 1282억달러, 단일품목 최대였다.

대한민국 수출주력 ICT 산업은 다른 딜레마에 빠져 있다. 정부와 국회다. 혁신의 딜레마를 고민하는 기업에 국회와 정부는 넘지 못할 딜레마다. 스마트폰에 금융기능을 넣은 '스마트 페이', 인터넷 금융은 금산분리법에, 카카오택시는 기존 산업의 저항과 이를 대변하는 국회와 정부의 눈치보기에 진척이 없다. 국회는 정부를, 정부는 국회를 핑계 삼는다. 일이 많으면 간섭을 줄여야 하는데, 국회와 공무원을 늘려서 참견하려 한다.

국회와 정부에서 1년은 짧다. 업계 이야기를 듣고, 법제 제정·개정안을 만들고, 발의해서 통과시키려면 최소 그 정도가 필요하다. 숙의도 해야 한다. 하지만 기업 1년은 너무 길다. ICT제품 주기상 6개월 뒤 신흥 경쟁사는 모방 제품을 내놓는다. 정부가 청와대와 조율해서 대통령이 참석하는 규제혁신 끝장토론회의를 준비하는 순간 파괴적 기술은 메인스트림으로 개화해버린다.

정부와 국회는 ICT산업에 대한 규제를 1년 주기로 개혁해서는 안된다. 규제를 풀지 못한다면 차라리 없애면 된다. 안 만들면 된다. 이제 공장에 전력 공급을 망설이고 도로조차 허가내주지 않는, 기득권에 막혀 우버조차 하지 못하는 '이 따위 규제'에서 벗어나야 한다. 19세기 산업화 시대 기준으로는 절대 혁신할 수 없다.


김상용 주필 srkim@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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