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10월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김동률의 ‘THE CONCERT’ 콘서트의 한 장면을 떠올려 본다. 당시 그는 오랜 쉼을 예고하듯 내일이 없는 것처럼 공연을 준비했다고 털어놓았다. 좀처럼 눈물을 보이지 않던 그는 앵콜곡 ‘그 노래’를 부른 뒤 울음을 터트렸다. 한동안 그 잔상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간 그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김동률이 3년 만에 보내온 ‘답장’을 꺼내 펼친 뒤에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김동률은 지난 7일부터 9일까지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 위치한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2018 KIMDONGRYUL CONCERT-답장’을 성황리에 마쳤다. 영하 10도에 가까운 한파에도 불구, 그의 ‘답장’을 기다리는 1만여 명의 관객들은 설렘과 기대감에 가득한 모습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더 콘서트’의 한 구절인 “불이 꺼지고”가 들리자 공연장은 암전됐다. 무대를 가리고 있던 가림막이 올라가고 무대 위 오케스트라의 모습이 드러났다. 3년의 기다림 끝에 가수를 마주한 관객들은 일제히 박수와 환호로 그를 맞았다.
김동률은 올해 1월에 발매된 미니앨범 ‘답장’의 ‘문라이트(moonlight)’로 첫 포문을 열었다. 묵직한 저음과 오케스트라 협연이 하나가 된 순간, 공연장은 우주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듯했다.
그는 10년 전 공연에서 새롭게 편곡한 ‘사랑한다는 말’,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를 재구현했다. 스크린을 통해 뮤지션의 모습이 보이자 그제야 관객들은 ‘김동률 콘서트’에 온 것을 실감한 듯 곳곳에서 탄성을 질렀다.
그는 “10년 전 체조경기장에서 처음 공연을 했다. 리허설 때 큰 무대와 관객석을 보고 내가 무리한 건 아닌가? 이번이 마지막이겠구나 하는 마음이었다. 이 자리에 다시 서게 됐는데 그때마다 꽉 채워주셨다. 3년 만에 열리는 공연이다. 여러분도 많이 기다리셨겠지만, 저도 많이 기다렸다. 오래 준비한 만큼 좋은 시간, 오래 기다리신 만큼 후회 없는 공연 보여드리도록 하겠다.”며 다음 무대를 준비했다.
미니앨범 ‘답장’ 발매 후 11개월 만에 열리는 첫 공연이었다. 그는 오랜 시간 기다려준 팬들을 위해 미니앨범 전곡은 물론 최근 디지털 싱글로 발매한 곡들로 셋 리스트를 채웠다. 뿐만 아니라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새롭게 편곡된 그의 곡들은 새로운 옷을 입고 무대 위에서 반짝이기 시작했다.
기타리스트 임헌일의 연주에 맞춰 ‘오래된 노래’의 첫 소절이 시작됐다. 김동률은 임헌일의 솔로 어쿠스틱 기타 연주와 목소리만으로 곡을 이어나갔다. 거대한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비워내자 온전히 그의 목소리에 집중할 수 있었다. 여백은 ‘음악은 만든 이의 손을 떠나는 순간 자유의지를 갖는다’는 뮤지션의 말처럼 관객들의 추억들로 채워졌다. 이어진 ‘오늘’ 무대에서는 금관 6중주와 현악기가 만나 더욱 풍성한 사운드를 완성하며 극적인 분위기로 전환됐다.
‘배려’, ‘연극’에서는 반디네온 연주자 고상지가 주축이 돼 무대를 사로잡으며 탱고 마스터의 명성을 입증했다. 무대를 수놓은 조명은 견고하게 쌓아 올린 소리가 색으로 바뀐 듯 화려한 빛의 향연이 펼쳐졌다.
그는 자신을 ‘과거 집착형 가수’라고 설명한 글을 봤다며 위트 있는 멘트로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기도 했다. 공연에 대한 부담보다 무대 위에서 음악으로 소통하는 자신의 현재를 온전히 즐기고 있었다. “과거를 그리워하기보다 현재의 소중함을 늦게 깨닫는다. ‘청춘’이라는 곡도 청춘을 그리워할 수 있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며 ‘동행’ 앨범 수록곡 ‘청춘’을 이어 불렀다.
2부에서는 ‘꿈속에서’, ‘제이스 바(J's bar)’, ‘새’, ‘하늘 높이’, ‘고별’, ‘콘택트(Contact)’ 등 화려한 오케스트라와 곡에 걸맞은 영상으로 분위기를 압도했다. 공연이 극에 치달아 갈수록 공연장은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공간은 오페라 극장이었다가, 뉴욕의 한 재즈 바가 되기도 하였으며 겨울나무가 우거진 ‘김동률의 숲’이 되기도 했다.
지난 ‘더 콘서트’에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줬던 ‘그 노래’는 3년이 지난 ‘답장’ 콘서트에서도 빛을 발했다. 마이크를 잠시 내려놓은 그는 오롯이 자신의 목소리만으로 ‘그 노래’를 불렀다. 1만여 명의 관객들이 가득 찬 넓은 공연장은 더 단단하고 견고해진 뮤지션의 목소리로 채워졌다.
‘이제야 보내온 답장’
김동률은 1부가 끝난 뒤 인터미션 영상에서 지난 2015년 공연 이후 긴 슬럼프를 겪었다고 털어놨다. ‘더 콘서트’ 앵콜곡 ‘그 노래’를 부르며 행복해서 미치도록 슬펐다고 했다.
‘참 많은 것을 누려 행복한 사람이지만, 모든 것이 영원할 수 있을까. 이제 무엇을 더 할 수 있지? 어디까지 욕심내도 될지 몰랐다’며 지난 시간을 회고했다. 그는 어둠이 스며든 길 위에서 스스로 불을 밝혀야 했다. 길을 잃었던 그에게 동기부여가 되어준 이들은 동료 뮤지션이었다.
김동률은 ‘답장’ 앨범 데모를 받은 프로듀서 황성제가 보내온 편곡을 듣는 순간, 잊고 있던 감정들이 끓어올랐다. 숙제처럼 해나갔던 작업에 다시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다. 멈춰있던 시간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을 잘 해내고 싶어졌다.
‘김동률 음악은 늘 똑같다’는 대중의 평을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완벽한 완벽주의자’인 그는 헷갈리기 시작했다. 발전이 없다는 걸까? 변화가 없다는 건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요하지 않았다. 많은 것들이 변해가는 이 시대에 ‘왜 변해야 할까’, ‘왜 한 사람이 전부 다 하길 원할까’ 그는 앞으로 변화를 위한 변화보다 늘 해오던 스타일 안에서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어느 순간 이제는 제가 정말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걸 천천히 공들여서 여러분들에게 보여드리면 어떨까 생각한다. 이렇게 하나를 오랫동안 열심히 정성스럽게 만들어야 나오는 결과물이라는 걸 보여드리고 싶다. 조만간 조금 멋져지고 조금 늙어서 만나요.”
자신의 음악을 좋아해주는 리스너의 시간을 헛되게 하고 싶지 않다던 뮤지션의 진심과, 슬럼프를 이겨내고 다시 돌아와 고맙기 만한 관객들의 마음이 전해진 12월의 어느 날. 관객들은 모두 김동률이 보내온 따스한 ‘답장’을 품에 안고 돌아갔다.
<2018 콘서트 ‘답장’ 셋리스트>
0. ‘더 콘서트(The concert)’
1. ‘문라이트(moonlight)’
2. 사랑한다는 말
3.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4. 그럴 수밖에
5. 내 사람
6. 오래된 노래
7. 오늘
8. 배려
9. 연극
10. 청춘
11. 그게 나야
12. 꿈속에서
13. J's bar
14. 새
15. 사랑한다 말해도
16. 하늘높이, 고별
17. requiem (with 포레스텔라)
18. Prayer, 새로운 시작 (with 포레스텔라)
19. Contact
20. 답장
21. 그 노래
22. 기억의 습작
23. 노래
24. 감사
전자신문인터넷 윤효진 기자 (yunh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