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4차 산업혁명 관련 세법 개정안을 만든다. 세금 부과 기준이 되는 고정사업장 범위를 산업 변화에 맞춰 확대한다는 게 골자다.
26일 글로벌 회계·컨설팅 법인 EY(Ernst&Young)가 최근 내놓은 조세 동향 자료에 따르면 EU는 디지털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장·단기 과세 방안을 마련했다. EU는 우선 장기 방안으로 고정사업장 개념을 손본다. 인터넷 기반 플랫폼, 블록체인과 같은 미래 산업에 대한 세금 징수 근거를 제시한다.
이를 위해 디지털제품 공급이 이뤄지는 장소를 고정사업장으로 규정할 계획이다.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물건을 구매, 서비스를 받았더라도 실제 공급 절차가 완료된 지역 사업장이나 대리점을 고정사업장으로 보겠다는 취지다. 예컨대 일본 소재 업체가 만든 암호화폐가 국내 거래소 빗썸을 통해 수익을 창출했다면 고정사업장은 일본이 아닌 우리나라가 된다. 유튜브 광고 수익에 대한 세금도 지금은 서버가 위치한 국가에서 세금을 물리고 있지만 EU 규정을 대입하면 실제 수익이 발생한 지역 국세청이 걷는다.
개인사업자 과세 기준도 명확히 했다. 인터넷사업자가 플랫폼을 지원, 일반 개인에게 사업 환경을 제공했다면 이 개인이 속한 국가가 고정사업장이다. 유튜브 개인방송 진행자는 현재 광고 수익을 달러로 받을 경우 세금을 내지 않았지만 앞으론 소득세 납부 대상이다. 진행자 거주지 관할 국세청이 과세권을 갖는다.
통제되지 않은 수익 모델도 잡아낸다. 과세당국 신고 항목에 없는 신종·변종 사업자를 상대로 세금을 걷을 수 있도록 했다. 업체별 부수 수익사업도 규제한다. 동영상 플랫폼 사업자가 쇼핑몰과 연동해 2차 수익을 얻는다면 쇼핑몰도 고정사업장에 포함할 방침이다.
EU는 단기 방안도 내놨다. 매출에 3%를 세금으로 부과한다. 대상은 연매출 7억5000만유로를 초과하거나 유럽 내에서 5000만유로 넘게 버는 대기업이다. 10만명 이상 사용자를 보유한 플랫폼 기업도 속한다. 다만 집행 가능성은 떨어진다. 28개 EU 회원국의 만장일치 승인을 얻어야 한다. 직격탄을 맞는 나라가 미국이다 보니 무역전쟁을 우려,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장기 방안은 통과될 확률이 높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고정사업장 개념을 확대하려는 OECD 의지와 일맥상통하는 데다 이미 독일을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한 세법 개정안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EU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장·단기 과세 법안을 2019년까지 완성, 2020년부터 시행한다.
임재광 법무법인 양재 회계사는 “EU가 과세권을 강화하면 미국이 걷을 세금이 줄 수밖에 없어 두 주체 간 세금 갈등이 격화될 것”이라며 “EU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면서 우리도 과세권 일실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세법 보완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문헌규 에어블랙 대표는 “사실상 미국 IT기업 대상 플랫폼 사업자, 이용자 모두를 과세하겠다는 의도”라며 “국내기업에 미칠 영향은 미비할 전망이지만 EU와 중국 상황을 보면서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전했다.
최종희기자 choi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