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중국발 위기 현대차...원인과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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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 현대자동차 경영 위기 원인의 핵심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에 따르는 중국 내 반한 정서가 아니다. 중국 자동차 업계의 완성차 기술이 높아지는데도 수년째 높은 자동차·부품 가격을 고집하는 모호한 시장 포지션은 더 이상 중국에서 통할 수 없다는 게 현지의 공통된 시각이다. 현대차가 글로벌 자동차 업체와 로컬 완성차 업체 양쪽에 밀리는 샌드위치 상황에 놓이면서 지금까지 잘 쌓아 온 판매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본지가 중국 현지 분위기와 베이징모터스그룹을 취재, 현대차의 중국 시장 실태와 대안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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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북경에 위치한 베이징모터스그룹 본사.

지난달 하순에 만난 베이징모터스그룹 고위 관계자는 짧은 만남에서 “심각하다”는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매달 10만대 이상 생산하던 베이징현대 전체 공장은 4만대 이하로 줄어든 지 오래됐다. 최근엔 연간 30만대 규모의 생산 공장 가동을 시작했지만 건설비도 다 지급하지 못했다. 베이징현대 설립 이래 처음으로 임금 삭감까지 검토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우리는 현대차와 관계가 잘못되는 걸 절대 원하지 않는다. (현대차는) 중요한 파트너”라면서도 “사드 이슈보다 지금의 부품 가격 구조과 시장 전략을 바꾸지 않는 한 회복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예견된 중국발 위기

현대차와 베이징모터스 합작사인 베이징현대의 올 상반기 자동차 생산량은 지난해 상반기와 비교해 29%(14만5000대) 급감했다. 현대차 지분법 평가 이익은 베이징현대(지분율 50%)가 적자를 내면서 크게 하락했다. 그러나 이 수치는 생산량일 뿐 현지에는 적지 않은 재고가 쌓이고 있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베이징현대의 판매 부진은 이미 예견됐지만 베이징현대의 부품 협력사를 쥐고 있는 현대차는 여전히 복지부동이다. 지난해 12월 쉬허이 베이징모터스그룹 회장 겸 베이징현대 회장은 중국 시장 위기를 감지하고 현대차 양재 본사를 방문했다. 쉬 회장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만나 베이징현대 주력 모델 '싼타페'의 판매량 등 시장 위기 상황을 설명했고, 이에 따른 대응책으로 현대모비스 등 부품사의 가격 인하를 제시했다. 그러나 정 회장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베이징현대는 2002년 합작사 설립 당시부터 현대차와 현대차 부품 협력사에 의존해서 성장해 온 만큼 가격 경쟁력을 개선할 열쇠는 현대차가 쥐고 있지만 개선 조짐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결국 베이징현대는 임금 삭감이라는 초강수 이외에 대책이 없다 보니 무작정 현대차의 선택만을 기다리는 상황이다.

베이징모터스그룹 관계자는 “현대차가 베이징현대 설립 때부터 지금까지 관련 부품사를 관리해 온 탓에 부품 인하 등 가격 경쟁력 개선은 현대차에 달렸다”면서 “최근 산둥성에서도 전문회의가 진행됐고, 현대차도 자국책 마련에 노력하고 있는 만큼 상황이 진전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고급차도, 보급형차도 아닌 모호한 위치

복수의 베이징모터스그룹 관계자는 베이징현대의 판매 부진을 모호한 시장가격 정책으로 꼽았다. 베이징현대의 주력 차종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라인은 보통 22만위안(약 3600만원)인 데 반해 중국 장성기차 '하발(Haval)'은 12만위안(약 2000만원) 수준이다. 이 차는 주행성능과 연비, 차체 외내부 마감도 흠잡을 게 없는데다, 디자인 완성도까지 뛰어나 수년째 SUV 시장 선두자리를 지키고 있다. 베이징현대는 '싼타페' 등을 앞세워 2013년 중국 SUV시장 2위까지 올랐지만 로컬 브랜드에 밀려 지난해 6위까지 밀려났다. 싼타페 판매량은 2014년 7만1424대에서 지난해에는 2만2438대로 절반 넘게 급감했다.

베이징모터스그룹 관계자는 “창청자동차 '하발'의 부품 원가는 약 4만위안이지만 크게 다를 바 없는 싼타페 부품가는 이보다 3만위안 더 비싸다”면서 “예전엔 현대차가 중국 로컬 브랜드의 품질보다 뛰어나 시장 반응이 좋았지만 지금은 기술 완성도 수준이 근접해 온 만큼 고가든 저가든 가격 전략을 더욱 명확히 구분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시장 변화에 따른 발 빠른 대응 전략도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그룹 관계자는 “현대차의 신속한 결정과 신속한 대응력이 예전같이 않다”면서 “대표 사례가 제네시스 중국 진출이었는데 이마저도 늦어지면서 출시 타이밍을 놓쳐 하반기에 출시하더라도 시장 영향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중국의 프리미엄 자동차 시장 반응이 좋을 때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제너시스를 출시했다면 지금 같은 판매 부진을 면할 수 있겠지만 이미 다른 수입차 브랜드가 이 시장을 선점, 시장 기회를 놓쳤다는 설명이다.

박태준 자동차 전문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