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온뉴스 이예은 기자] 김태윤 감독은 ‘재심’은 사회 고발 영화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리고 “극영화가 사회 고발을 할 수 있는 가에 대해 회의적이다. 그것은 언론이 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휴머니즘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틀린 말이 아니다. 영화는 극 요소를 가미해 사회를 투영하는 창이 될 수 있는 매체고, 파장을 만들어내고 울림을 잇는 건 관객과 언론의 몫이다. 그리고 ‘재심’은 훌륭한 진앙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
지방대학 중퇴에 돈도 빽도 없는 변호사 준영(정우 분)은 유명세를 얻고자 아파트 집단 소송에 나서지만 패소하며 돈과 가족을 모두 잃고 벼랑 끝에 몰린다. 그러던 중에, 대형 로펌에 취직하기 위해 억지로 한 무료 법률 봉사에서 하나의 사건을 맞닥뜨린다. 10여 년 전 대한민국을 뒤흔든 살인사건의 범인 현우(강하늘 분)가 억울한 누명으로 10년 간 옥살이를 했다는 사실. 준영은 돈과 명예를 얻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 여기고 재심 청구에 나선다. 사건의 전말로 접근할수록 충격적 진실을 알게 되고, 현우와 그의 엄마(김해숙 분)의 진심이 그에게 닿기 시작한다.
영화의 발단은 ‘약촌오거리’ 사건으로 불리는 실화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2008년,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에서 택시기사가 차 안에서 살해당했다. 유일한 목격자였던 현우의 실존인물 최 씨 소년은 스쿠터를 지나가던 중 우연히 “한 남자가 뛰어가는 것을 봤다”며 경찰에게 증언했다. 목격자로 나섰던 그는 순식간에 경찰로 인해 용의자가 된다. 이후, 경찰은 “소년은 택시기사와 말싸움을 하게 돼 그를 잔인하게 살인하고 증거를 인멸했다”고 밝히고 ‘증거 없는 자백’만으로 최 씨를 살인범으로 둔갑시킨다.
‘재심’은 이 충격적인 실화를 촘촘하고, 샅샅이 밝혀내면서 법의 추악함을 꼬집는다. 그래서 보는 내내 답답함을 호소하게 된다. 진실이 드러날수록 관객은 어느새 현우가 된 듯, 억울함을 풀어내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변호사인 정우는 엄청난 진실을 세상에 밝혀내 사건을 해결하지도, 강력한 변호 연설을 펼치지도 않는다. 한마디로 극적인 연출이 없다.
하지만 그 덕에, 우리는 오히려 현우의 상황에 십분 더 몰입할 수 있다. 그가 세상과 단절한 이유, 속에 꽁꽁 가둬버린 자기방어를 오롯이 이해할 수 있으며 어딘가에 살고 있을 실존 인물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게 된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재심이 채 완료되지 않은 현재진행형 사건이란 사실에 그들을 대신해 한 번 더 분노할 수 있다. 얼핏 송강호의 ‘변호인’도 연상케 한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현실 속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며 진실에 다가서는 그 과정이 몹시 흡사해, 당시의 울림을 다시 한 번 재현한다.
갈색 브릿지로 물들인 머리와 문신 가득한 모습으로 거친 외모를 두른 강하늘은 낯설다. 이전까지 보인 이미지와 180도 다르게 과감한 연기 변신을 꾀했다. 쉴 새 없이 욕을 내뱉다가도 억울함에 사무쳐 울부짖는 그의 연기 폭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또한, 철저하게 이익주의였던 정우의 캐릭터가 변화하는 지점이 워낙 갑작스러워 개연성에 의아함을 가지게 된다. 이런 미세한 결함을 채웠던 건 정우의 연기다. 세심한 연기로 그 간극을 채우며, 그가 지닌 특유의 위트가 탈정형화된 변호사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에 훌륭하게 작용했다.
그리고 주목할 만한 인물이 새로 등장했다. 현우를 살인범으로 만든 장본인, 백철기 형사 역의 한재영이다. 일말의 죄책감 하나 없이 악행을 저지르는 모습은 소름끼칠 정도다. 실제 영광 출신인 그는 정확하게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며 절대적 악인으로 거듭났다. 현우의 엄마 역인 김해숙의 사무침은 기어코 관객들을 눈물 짓게 만든다.
앞서 김 감독이 말했듯, ‘재심’은 사회 고발 영화가 아니고 휴머니즘에 철저한 영화다. 진실을 드러내는 과정 중에 인물 간의 관계 변화, 믿음, 개인의 심리를 그려내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허구적 발상이 버무려진 실화의 힘은 관객들이 직접 부조리한 사회를 ‘재심’하게 만들 것이다. 15일 개봉 예정.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예은 기자 9009055@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