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어떤 분야든 어느 정도 연륜이 쌓인 사람들을 인정해주는 것은 맞다. 다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에 더욱 매력적인 경우도 있다. 오히려 예술은 젊음이 가진 창의성이 강한 매력으로 작용한다. 가요 분야에서는 20대 초반의 아티스트들이 큰 역할을 하고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자유로움이 강조되어야 할 예술임에도 불구하고 젊은 감독들을 만나기 쉽지 않다. 이런 영화계 분위기를 벗어나 세계무대를 휩쓴 젊은 거장이 여기 있다.
◇ 다미엔 차젤레
지난 8일 영화 ‘라라랜드’는 제74회 골든글로브를 휩쓸었다. 74년 간 이어져 온 골든글로브 역사상 최다 7관왕이었으며, 노미네이트 전 부문 수상이라는 기염을 토했다. 시상식 이전부터 강력한 후보로 손꼽혔던 이 영화의 수상에 이견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이런 마스터피스를 만든 다미엔 차젤레 감독은 1985년생으로, 한국나이로 33세에 불과하다.
‘라라랜드’는 개봉 전, ‘위플래쉬’ 감독의 영화로 홍보가 됐다. 지난 2015년 충격에 가까운 전율을 선사한 영화 ‘위플래쉬’는 제30회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 수상을 비롯해 세계 40개 이상의 영화제에 노미네이트 되는 등 전 세계 영화상을 휩쓸었고, 다미엔 차젤레 감독은 연출 능력 및 음악에 대한 열정을 인정을 받았다.
앞서 다미엔 차젤레 감독은 ”‘라라랜드’는 ‘위플래쉬’보다 먼저 만들고 싶었던 영화“라고 말한 바 있는데, 이미 2006년 각본을 완성했지만 당시 신인이었던 그가 원하는 대로 영화를 만들기 쉽지 않았던 것이다. 차선책으로 만든 ‘위플래쉬’가 흥행과 비평면에서 모두 성공을 거두며 마침내 ‘라라랜드’를 세상에 내보일 수 있었다. 이를 보면 젊은 신인감독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의 100%를 꺼내기까지 많은 시간과 조건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 자비에 돌란
프랑스계 캐나다인인 자비에 돌란은 현지에서 ‘아이돌’로 불린다. 어린 나이에 천재적인 능력을 선보이면서 전 세계 영화인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는 그에게 붙은 수식어다. 1989년생으로 한국 나이 29세인 자비에 돌란 감독은 연출, 각본, 연기뿐 아니라 미술, 패션, 음악 등 다방면으로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전 세계 가장 핫한 감독이다.
연기가 하고 싶어 연출을 시작한 자비에 돌란은 10대에 만든 데뷔작 ‘아이 킬드 마이 마더’가 칸영화제 감독 주간에 초청받아 세 개의 트로피를 거머쥐면서 등장했다. 2014년 다섯 번째 영화인 ‘마미’로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고, 최연소 칸영화제 심사위원까지 맡았다. 2016년 ‘단지 세상의 끝’으로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과 에큐메니컬상(Prize of the ecumenical Jury) 2관왕을 거머쥐었다. ‘칸의 총아’로 불리던 자비에 돌란은 이로서 세계적 젊은 거장으로 발돋움 했고, 프랑스에서는 개봉하자마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 개봉 첫 주 만에 40만 관객을 동원하며 작품성은 물론 대중성과 흥행성까지 모두 갖춘 수작임을 입증해냈다. 특히 ‘단지 세상의 끝’이 칸영화제에서 수상한 에큐메니컬상은 인간 존재를 깊이 있게 성찰하며 예술적 성취가 돋보이는 영화에 수여되는 상으로, 자비에 돌란 감독이 한층 더 깊어진 고민과 성숙해진 연출력을 선보이며 점차 성장하고 있는 모습을 드러냈다.
사실 젊은 나이에 세계적으로 알려지는 사람들은 여러 구설수에 시달린다. 지난해 개최된 칸영화제에서 자비에 돌란의 작품이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먼저 영화를 관람했던 관객들에 의해 야유를 받기도 했다.
다만 이 젊은 거장이 지지를 받는 이유는 ‘단지 세상의 끝’에서 엄마 역할을 맡은 나탈리 베이의 말로서 짐작하게 한다. 나탈리 베이는 ”‘로렌스 애니웨이’를 촬영할 때 자비에는 22~23살의 청년이었다. 그때에는 몰랐지만 당시에도 자비에는 그 나이에 자기가 원하는 것 그대로 영화를 무척 쉽게, 여유롭게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당시에도 놀라울 정도로 성숙했는데 지금도 그렇다. 자비에는 모든 것을 직접 계획하고 실행하고 통제했는데 심지어 억양까지 정해줬다. 한 문장을 10가지 버전으로 읽게 하기도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자비에만의 프레이징과 음악을 주면 배우들은 그에 맞춰서 재해석했다. 이렇게 엄청난 재능을 가진 젊은 감독과 함께 할 수 있어서 큰 행운이었다“고 평했다.
◇ 김태용
우리나라에는 김태용 감독이 있다. 김태용 감독은 지난 2010년, 밀입국 알선책 소년들을 통해 욕망과 윤리의 경계에 대해 묻는 작품 ‘얼어붙은 땅’을 통해 제63회 칸국제영화제 시네마파운데이션 부문에 초청, 국내 최연소 칸영화제 진출이라는 영예를 안았다. 영화 ‘거인’으로 제36회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 제35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감독상 수상,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초청 등 그 해 유수 영화제를 휩쓸었다. ‘여교사’로는 제36회 하와이국제영화제 등에 초청됐다.
놀라운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인간의 삶에 대한 통찰이다. 그는 영화를 통해 인간의 밑바닥 감정을 끌어올렸는데, 얼마만큼 인간의 마음속을 깊게 파고들어야 이 정도로 인간의 감춰진 욕망과 감정을 속속들이 파낼 수 있을까 놀라울 정도다. 진한 연륜이 묻어나는 그의 영화를 보면 쉽게 예상할 수 없지만, ‘여교사’를 만들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30살(1987년 생)이었다.
‘여교사’의 김하늘은 앞서 엔터온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감독님은 캐릭터 자체가 편하고 귀엽다. 그래서 내 의견 말하는 것도 편했고, 말하면 금방 알아주셨다. 감독님 전 작품들이 너무 좋았고, 시나리오를 쓰는 느낌도 놀라웠다. 다음 작품 준비하시는 것도 들었는데 아이디어가 굉장히 좋아서 앞으로도 계속 주목받을 수 있을 것 같다”며 이제 막 충무로에 발을 딛은 후배 영화인이자 젊은 감독에 대한 믿음을 드러냈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leejh@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