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온뉴스 이소희 기자] 자신의 불안함과 외로움을 타인에게 보여주기는 쉽지 않다. 특히 화려하고 빛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직업인 연예인이라면, 자신의 나약한 감정을 드러내는 건 더 힘들다.
수지는 2010년 미쓰에이(miss A)로 데뷔해 곧장 인기가수 반열에 올랐다. 당시 10대였던 수지는 풋풋한 외모를 자랑하며 무대 위에서는 당찬 여성을 그렸다. 이후에는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새로운 모습을 꾀했다. 스크린 혹은 브라운관 속 수지는 때로는 청순하고 청초했으며 때로는 푼수 같기도 한 활기찬 모습이었다.
수지는 승승장구했고, 팬들은 열광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고도의 ‘이미지 메이킹’에 불과하다면? 물론, 그간 수지가 보여온 모습이 무조건 ‘메이킹’됐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의 수지는 무대 위 콘셉트에 맞게, 캐릭터를 최우선으로 두고 움직여야 하는 연예인이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수지는 첫 번째 미니앨범 ‘예스? 노?(Yes? No?)’를 통해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알을 깨고 나왔다. 진짜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국민 첫사랑’으로 만들어진 수지가 아닌, 스물네 살의 수지를 말이다. 공교롭게도 스물네 살의 수지가 24일에 앨범을 발매한 것도 재미있다.
이 앨범은 과거의 경험들이 모여 만들어냈을 현재 수지의 내면을 담고 있다. 수지는 지금까지 화려한 생활과 복잡한 연예계를 겪으며 느낀 감정과 다져진 생각을 고스란히 내비쳤다. 그러자 드러난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연예인 수지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수지였다.
수지가 스스로 보여준 자신의 모습은 흔들리고 불안했으며 불완전했다. 여느 스물네 살과 똑같이 인생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혼돈을 겪는 청춘이었다. 스물세 살의 아이유가 자신의 속내를 담아 발매한 앨범 ‘챗셔’가 떠오른다. 수지는 자신의 청춘을 어떻게 표현해냈을까.
앨범은 총 6트랙. 노래 제목은 묘하게 불확실함을 담고 있다. ‘행복한 척’의 ‘척’, ‘예스 노 메이비(Yes No Maybe)’의 ‘메이비’, ‘난로 마냥’의 ‘마냥’ 등의 표현은 무언가를 명확히 가리키지 않고 여지를 두고 있다. ‘다 그런거잖아’는 힘 빠진 체념과 같은 감정이 느껴진다.
선공개곡이었던 ‘행복한 척’은 타이틀곡이 아님에도 이번 앨범의 메시지를 명확하게 내포하고 있다. 수지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이 있어…나를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은/행복해 보이는 나를 보겠지만’ ‘날 바라보고 있는 시선들이 두려워/나를 얘기하는 말들이 무서워/난 또 행복한 척/더 더 행복한척/하는 내가 싫어’라고 노래한다.
노래는 사랑을 표현하는 듯하지만, 수지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수지는 리얼리티 ‘오프 더 레코드: 수지’에서 “아무래도 공감이 된다. 부르면서 울컥했다”면서 ‘행복한 척’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소속사 대표 박진영이 수지와 함께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한 내용에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는 타이틀곡 ‘예스 노 메이비’도 마찬가지다. 수지는 분명 힘 있는 목소리로 노래하는데 풍기는 분위기는 외롭다. 마치 빠져나갈 수 없는 미로를 홀로 헤매고 있는 듯하다. 보컬은 고음부에서 더욱 처절해지며, 후렴구의 코러스는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다급함까지 느껴진다.
이런 느낌은 앨범 티저와 타이틀곡 뮤직비디오에서 시각적으로 표현됐다. 티저 속 한자들은 흔들린 채 새겨져있다. 뮤직비디오 속 수지는 휘청이며 홀로 길을 걷고 반쯤 감긴 눈으로 무언가에 홀린 듯한 표정을 짓는다. 카메라는 스텝프린팅 기법을 통해 비현실적인 움직임을 극대화했다. 이 모든 것은 영상의 붉은 톤과 어우러져 나른한 듯 섹시하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연출됐다.
수지의 솔직함은 단순히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수지는 어쩌면 자신의 가장 어둡고 깊숙한 속내를 털어놨다. 연예인이 이도 저도 아닌 모호한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대중에게 내보이는 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용기가 필요했을까.
그 용기는 리얼리티 ‘오프 더 레코드: 수지’로까지 이어진다. 영상 속 수지는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들과 함께 야식과 술을 즐기고, 음원이 발매되던 날 1위를 찍자 소리를 지르고 춤추며 기뻐한다. 예쁜척하지 않고 내숭 없이 다가오는 수지다. 그렇게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수지의 1%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소희 기자 lshsh324@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