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온뉴스 유지훈 기자] 어린 시절 롤플레잉 게임을 좋아했습니다. 애착을 가지고 캐릭터를 성장시켰고, 어느 순간에는 그들이 마치 자기만의 인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게임에 점점 흥미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 캐릭터들에게 정말 인격이 있었다면, ‘싫증났다고 자신들을 버린 나를 미워하고 있지 않을까’라고 말입니다.
‘브로큰 토이즈(Broken Toys)’는 2007년 발매된 에픽하이의 정규 4집 앨범 ‘리맵핑 더 휴먼 소울(Remapping The Human Soul)’ 두 번째 CD의 열두 번째 트랙입니다. 에픽하이 외에도 당시 인피닛플로우로 활동하고 있던 넋없샨과 영지엠이 참여했습니다. 그만큼 더욱 풍성한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브로큰 토이즈’는 인공지능 로봇들이 감정을 가지게 된 후의 겪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네 명의 래퍼는 각각 보모, 애인, 예술가, 군인 역할을 가진 로봇으로 분합니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지만 던지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감정을 지닌 인공지능 로봇들이 인간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입니다.
미쓰라진은 모보로봇 A의 마음속으로 들어갑니다. A는 한 아이의 탄생과 함께 어머니라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제 막 세상을 마주한 아이는 A를 어머니처럼 따랐습니다. A의 품에 안겨 잠들기도 하고 친구처럼 많은 시간을 공유했습니다. A는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 셈입니다.
로봇이었던 A의 외형과 마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습니다. A의 품을 벗어나 걸음마를 뗐고 스스로 선택할 줄 아는 어엿한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A가 아닌 진짜 가족들과 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효용가치가 없어진 A는 방구석에 버려졌습니다. 하지만 걱정되는 마음에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A는 “이런 게 모정인가요”라고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영지엠은 여자들의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채워주는 애인 로봇 B입니다. 영화 ‘에이아이(Ai)’ 속 주드 로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 될 겁니다. 속된 말로 ‘남창’ 로봇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B는 여자들이 별다른 고민 없이 전화의 버튼 몇 번만 눌러 자신을 산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때문에 인간 세상은 돈이면 무엇이라도 가능한 차가운 곳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러던 B는 한 여자를 만나 다른 삶을 살게 됐습니다. 그 여자와 함께 있는 시간은 길어졌고 ‘기쁨’이라는 감정을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B는 과학자들에게 붙잡힙니다. 과학자들은 B가 단순히 기능을 잃은 고장 난 로봇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B가 느꼈던 사랑은, 인간들에게는 “로봇에서 발견된 새로운 과학적 오류”일 뿐이었습니다.
타블로가 맡은 C는 가장 인간에 가까운 로봇의 형태를 띱니다. 사람처럼 숨을 쉬고 잘 때도 꿈을 꿨습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예술적인 무언가를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C가 만든 시와 노래가 “아름답다”고 감탄했습니다.
사람들은 C가 인간의 형태와 가까워져 갈수록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지금까지 인간만 할 수 있던 ‘창작’을 했기 때문에, 인간을 ‘지배’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 공포를 이용해 권력을 차지하려 했습니다.
C는 지도자가 바뀐 날을 ‘어둡고 붉은 날’이라고 표현합니다. 지도자는 로봇에 대한 과격한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경찰들은 C가 피아노와 시를 쓸 수 없게 손을 잘랐습니다. C는 결국 경찰을 죽입니다. 마치 분노한 사람이 타인에게 폭력을 휘두르듯 말이죠.
마지막 순서인 넋업샨은 전쟁 기계 D에 분합니다. 작은 체구이지만 섬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릴 정도의 위력을 가진 특별한 병기입니다. 그는 연전연승을 거두며 한 나라의 영웅이 됐습니다. 사람들은 마치 슈퍼히어로의 활약을 보듯 환호와 갈채를 보냅니다.
D는 대자연에 눈길을 돌립니다. 하늘을 나는 새, 바다를 가르는 배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해와 달의 숨바꼭질을 바라보며 고독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D가 할 줄 아는 것은 파괴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향한 전쟁터, 죽어가는 적들에게 “이 전쟁에서 기억을 지워요”라고 위로를 건넵니다.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는 지난해 인공지능 비서 ‘자비스’를 공개했습니다. 자비스는 아침이 되어 주인이 일어나면 일정과 날씨를 알려주고 토스트와 음악까지 제공합니다. 많은 과학자들은 여기에 한 가지 가정을 더해 토론의 장을 만들었습니다. ‘주인이 큰 목소리로 명령을 내리면, 자비스는 자신의 능력치를 최대한 활용해 더욱 빠르게 일을 처리한다’는 기능을 추가해보자고 말이죠. 그리고 인공지능과 윤리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습니다.
자비스는 인공지능을 가지고 있지만 감정까지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때문에 슬퍼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진 않습니다. 하지만 어린 아이가 자비스에게 고함을 지르는 부모의 모습을 보게 된다면, 부정적인 감정은 물론 ‘타인에게 분노하면 효율이 올라간다’는 학습까지 하게 됩니다. 인공지능을 대하는 자세는 인간의 삶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다시 ‘브로큰 토이즈’로 돌아가 봅니다. 노래 속 A, B, C, D를 인간이라고 가정해볼까요. 보모, 성매매 종사자, 예술가, 군인이라고요. 보모는 애지중지 키운 아이를 부모에게 돌려보내고, 성매매 종사자는 인권을 유린당하고, 평범한 예술가는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고, 군인은 애국이라는 명분으로 타인을 죽였습니다. 미래의 인공지능은 어쩌면 지금의 우리 시대의 어두운 부분과 닮아있는지도 모릅니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유지훈 기자 tissue@enter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