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리뷰┃‘녹터널 애니멀스’] 핏빛 없는 처참한 분노, 이보다 잔인한 복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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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녹터널 애니멀스'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는 하나의 문학작품이다.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답게 ‘녹터널 애니멀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상징성을 띄고 있다. 소설 속 토니와 그의 아내가 겪는 상처와 복수는 현실과 과거의 수잔과 에드워드로 치환되어 진정한 의미의 복수를 해내고 만다.

뉴욕의 미술관 아트디렉터로 잘 살고 있는 수잔(에이미 아담스 분)은 19년 전 이혼한 전 남편 에드워드(제이크 질렌할 분)에게 폭력적이고 슬픈 소설 한 편과 쪽지를 받는다. 수잔은 이 종이쪼가리를 현재 남편에게 대신 읽어봐 달라고 할 정도로 의미 없게 여긴다. 쪽지엔 “당신 덕에 난 ‘진정성’ 있는 글을 쓰게 됐어. 오랜만에 한 번 보자”는 내용이 씌어있다. 원고의 포장을 풀다가 수잔의 손가락에 피가 맺히는데, 이것은 수잔에게 비극과 혼란이 닥쳐올 것임을 암시한다. 과연 소설엔 어떤 진정성 있는 내용이 담겨있으며, 두 사람은 정말 다시 만나게 될까.

소설 속 주인공은 토니(제이크 젤린할 분)와 로라(아일라 피셔 분)다. 소설 속 토니의 얼굴은 현실의 에드워드와 같지만, 로라는 현실의 수잔의 모습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토니와 로라, 그리고 딸은 텍사스 시골 도로에서 한 무리에게 공격을 받는다. 불한당들은 아내와 딸을 발가벗긴 채로 잔인하게 죽인다. 로라를 자신이라 느낀 수잔은 소설 속 주인공의 고통을 같이 느끼고, 공포심에 책을 덮는다. 소설을 읽으면서 공허해진 수잔은 현재의 남편과 딸에게 연락을 하지만, 남편은 바람을 피는 중이고, 딸도 엄마를 신경 쓰지 않는다.

현재의 수잔은 자신의 과거와 소설을 겹쳐 보기 시작한다. 과거 자신은 가난한 에드워드를 사랑했고, 보수적인 부모님은 결혼을 반대했다. 결혼 후 수잔은 자신의 가치관과 자신 부모님의 가치관이 같다는 것을 알았고, 결국 지금의 남편을 만나자 에드워드를 쉽게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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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녹터널 애니멀스'

※ 아래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소설 속 토니는 현실 속 수잔의 남편과 달리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걸 줄 아는 인물이다. 복수에 성공한 토니의 모습까지 읽은 후 수잔은 격렬한 파동을 느끼고, 사랑을 할 줄 아는 토니, 즉 에드워드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소설 속 죽은 아내는 수잔이 아니라 에드워드의 ‘진심’으로도 볼 수 있다. 진심을 죽인 불한당이 현실 속 수잔이었고, 토니는 불한당으로 그려진 수잔에게 복수를 한 것이다.

토니가 살고 있는 소설에서는 자극적이고 적나라한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다 직접적으로 적을 처단하지만, 현실 속 에드워드는 어떤 폭력성도 없이 복수를 한다. 표면적인 복수 대신 그저 진실을 던져주고 끝까지 얼굴 한 번 보여주지 않는 방법으로 수잔의 마음을 허전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수잔의 공허함은 깊이 새겨진다. 이로 인해 수잔은 에드워드를 떠나 행복하다고 믿었던 19년이란 세월 모두를 잃고 만다. 결국 상처를 받은 건 소설 속 토니와 현실의 에드워드이지만, 돌이키지 못할 결말을 얻게 된 것은 수잔이었다. 이렇게 에드워드는 자신을 떠난 연인을 향한 진정한 복수에 성공한다.

마지막쯤 왔을 때, 영화의 충격적인 오프닝이 다시 떠오른다. 영화의 오프닝에서는 화려하게 꾸몄지만 흉측한 몸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 나체로 춤을 추는 모습이 미술관에 전시된다. 수잔은 이를 정크(쓰레기) 문화라고 정의한다. 초반 수잔은 “나는 모든 것을 다 가졌으니 불행할 이유 없다”고 말하는데, 화려해 보이지만 흉측한 전시물은 수잔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이 영화의 인물들은 현실과 과거, 그리고 소설 속을 오간다. 다만 액자식 구성으로, 현실에는 수잔의 감정을 따라가야 하고, 소설에서는 토니가 벌이는 사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에 수잔이 소설을 보면서 느끼는 공포심을 관객이 함께 느끼기 어렵다. 게다가 이 영화는 1993년에 출간된 소설 ‘토니와 수잔’을 원작으로 했는데, 핸드폰이 잘 터지지 않는다는 현대적인 사실성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 서부 텍사스로 배경을 옮겼다. 때문에 소설 속 내용은 쓸쓸함을 더하는 장점이 있지만, 다소 올드해 보이고 지루하기도 하다. 살인사건의 범인을 이미 알고 있는데 그들을 끝까지 찾아 다녀야 하기 때문에 무료한 감도 있다.

그래도 이들이 쌓아놓은 서사 덕분에 마지막 수잔의 표정에서 드러난 허무함은 이 영화가 하고자 하는 바를 모두 설명해주며 긴 여운을 남긴다. 특히 클라이맥스에서는 누군가의 죽어가는 심장을 효과음으로 사용하는데, 다른 배경음악이나 대사 한 마디 없이 심장 박동수가 점점 느려지는 것만으로 극한의 공포를 자아내 극을 장악한다. 오는 11일 개봉.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leejh@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