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리뷰┃‘패신저스’] ‘언제 어디서’보다 ‘무엇을 어떻게’가 중요한, ‘사랑’

Photo Image
출처 : '패신저스'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가끔 예능프로그램에서 짓궂게 이런 가정을 한다. ‘여기 있는 사람 중에 무인도에 단 둘이 갈 수 있다면 누구랑 갈건가요.’ 영화 ‘패신저스(Passengers)’에서는 한 남자가 침몰중인 난파선에 한 여자를 속여 탑승시킨다. 이곳에 살아있는 사람이라곤 단 두 명뿐, 그 상대방은 내 꿈을 망치고 내 인생을 위험에 빠뜨린 사람이다. 사랑이란 언제 어디서든 무슨 이유로든 가능한 것일까.

120년 후의 개척 행성 ‘터전II’로 떠나는 초호화 우주선 아발론 호에는 5000여 명의 승객이 타고 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30년 만에 한 남자, 짐 프레스턴(크리스 프랫 분)이 깨어나고 만다. 처음에 짐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즐기지만, 잠들어 있는 5000명의 군중 속에서 외로움에 빠진다. 우주는 아름답고 드넓지만, 외로움을 더욱 배가할 뿐이다.

자신이 살아있는 것이 어떤 가치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짐은 자살을 시도한다. 그러다가 이상형의 여자 오로라 레인(제니퍼 로렌스 분)을 발견한다. 하지만 오로라가 깨어나기까지 남은 시간은 90년, 두 사람이 만날 일은 평생 없다.

짐은 오로라를 깨울까 말까 고민하게 된다. 나쁜 짓이 분명하지만, 자신을 살리기 위해 다른 사람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을까. 관객은 그의 딜레마를 함께 고민하게 된다.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한 후, 짐은 행복해진다. 오로라와 함께 하니 우주선도 완벽하다. 하지만 짐은 늘 불안하다. 오로라가 자신의 잘못을 알까봐 매일이 행복한 지옥이다. 그리고 사랑받은 대가로 감옥에 갇히게 된 오로라까지, 관객은 두 사람에게 연민을 갖게 된다.

‘패신저스’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로맨스물이자 재난극이다. 우주에 대한 신비함을 선사했던 ‘인터스텔라’보다는 1인 재난극 ‘마션’에 가깝지만, 생존의 위협을 받던 ‘마션’과도 또 다르다. 이곳에는 초호화 우주선으로 평생 먹어도 될 만큼의 다양한 술과 여가거리가 준비되어 있다. ‘마션’에서는 지구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지만, 짐은 그럴 능력이 없기 때문에 방대한 시간 동안 우주선에서 평생 혼자 있어야 한다. 그 두려움과 외로움으로 윤리적으로 문제 있는 일을 저지르고, 그 잘못으로 인한 불안함과 죄책감, 그럼에도 사랑하는 감정 때문에 괴로워한다. 거대한 우주를 배경으로 클로즈업된 두 사람의 감정은 더욱 크게 느껴지고, 격한 배경음은 심장을 쪼그라들게 만든다. 두 사람의 감정에 공감하다 보면 이런 공포도 없다.

Photo Image
출처 : '패신저스'

자신들의 감정을 추스를 시간도 없이 두 사람은 재난과 마주하게 된다. 짐이 깨어나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것. 두 사람은 5000명의 승객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깨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두 사람은 ‘승객’일 뿐이었다. 이미 정해진 항로가 있는 우주선 안에서 도착하기까지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만 하면 됐었다. 하지만 ‘승객’에 불구했던 두 사람은 ‘선택’을 함으로서 인생의 주체가 되어 간다. 이런 모습은 마치 태초에 존재했던 아담과 이브의 모습 같기도 하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두 남녀는 과연 어떤 세상을 후손들에게 선사할까.

영화는 삶의 가치를 ‘사랑’으로 설명한다. 앞서 지구에 살던 오로라는 현실에 만족하지 못했다. 때문에 현실을 떠나 남들은 해보지 않은 새로운 경험을 얻고 돌아가 글을 쓰려고 아발론호를 탔었다. 친구들은 그에게 “꼭 근사한 일을 해야 하는 건 아니다” “그곳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그래도 120년 후에는 꼭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행복해져라”라고 이야기했었다. 그리고 오로라는 짐과 함께 하면서 자신에게 소중한 것이 생겼다는 것을 깨닫는다. 즉 언제 어디서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중요한 것은 ‘사랑’이었던 것이다.

로맨스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거대한 SF 배경도 눈요깃거리가 된다. 두 남녀가 두 손을 잡고 떨어지는 우주, 별이 쏟아지는 장관, 중력 손실로 거슬러 올라가는 수영장, 줄 하나로 서로를 잇는 모습은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프로메테우스’ ‘닥터 스트레인지’ 등 방대한 세계관을 집대성한 존 스파이츠가 각본을 맡았다. 여기에 심리를 디테일하게 잡아내며 긴장감을 자아내는데 일가견이 있는 ‘이미테이션 게임’의 모튼 틸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생과사의 문제가 달린 만큼, 감정을 예리하게 잡아내 섬세하게 표현했다. 오는 4일 개봉.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leejh@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