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감독 코드] ‘판도라’-‘쏜다’-‘바람의전설’ 박정우, 명확한 말하기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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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주희 기자 / 디자인 : 정소정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박정우 감독은 1990년 정지영 감독의 연출부로 영화계에 입문해 1994년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의 각본 및 조감독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영화를 시작했다. 이후 ‘주유소습격사건’ ‘선물’ ‘신라의 달밤’ ‘라이터를 켜라’ ‘광복절 특사’ 등의 시나리오를 써 히트 작가로 이름을 날렸다. 2004년 ‘바람의 전설’로 감독 데뷔했고, 2007년 ‘쏜다’까지 관객수는 많지 않았으나 작품성으로는 인정받았다. 2012년 ‘연가시’가 450만 명을 모으며 흥행 감독이 됐으며, 현재(12월 30일 기준) ‘판도라’가 41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으며 흥행중이다. 박정우 감독은 작품의 주인공에게 극단적인 상황을 부여하는데, 그로인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확실하게 전달해 관객의 마음에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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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주희 기자 / 디자인 : 정소정

◇ ‘바람의 전설’(2004) - 감독 데뷔작

-줄거리

경찰서장의 아내가 ‘제비’ 풍식(이성재 분)에게 돈을 갈취 당했다고 한다. 이에 경찰 연화(박솔미 분)가 제비를 감시하다가 사연을 듣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캬바레에서 사모님들과 춤을 추는 풍식은 자신을 ‘무도 예술가’라고 칭한다. 처음엔 그도 제비인 친구 만수(김수로 분)를 욕했다. 하지만 우연히 춤을 배운 후 매료되어 전국을 떠돌며 수련한다. 서울로 돌아온 그는 사모님 경순(이칸희 분), 지연(문정희 분)과 춤을 추며 열정을 불사른다. 경찰 연화 역시 풍식의 인생 이야기와 춤에 자기도 모르게 빠져든다.

-주목할 점
1. 댄스스포츠 & 열정
현재는 ‘댄스스포츠’라 불리며 건강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이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제비’가 추던 춤으로 인식되곤 했다. 영화 속 주인공들도 “어쩌다가 그런 춤을 추게 됐냐”고 하지만 첫 스텝을 밟는 순간, 전율을 느낀다. 한 번도 느껴보지 않았던 열정을 춤을 통해 느끼게 되는데, 과연 이 예술의 매력은 대체 무엇일까.

2. 코믹한 춤 선생님(김수로, 김병춘)
풍식(이성재 분)의 첫 춤 선생님은 친구 만수(김수로 분)다. “너 제비야?”라고 물어보는 풍식에게 만수는 당당하게 “응”이라고 답한다. 전국으로 떠돌아다니기 시작한 풍식은 한 노인(김병춘 분)을 만나는데, 그는 커피에 설탕도 덜덜 거리며 넣을 정도로 기운이 없다. 하지만 음악이 흘러나오면 갑자기 허리를 펴고 열정적으로 스텝을 밟기 시작한다. 풍식은 입을 떡 벌리며 무릎을 꿇고 제자가 된다. 일본에서 춤을 배웠다는 노인은 풍식이 잘못하면 ‘빠가야로!’를 외친다. 이렇게 코믹한 장면을 보고 있으면, ‘판도라’에서 웃음기 하나 넣지 않고 진지하게 극을 끌고 간 것이 신기할 정도. 웃음을 넣어야 할 때 넣고, 눈물을 넣어야 할 때 넣을 줄 아는 박정우 감독의 연출 능력이 감탄스럽다.

3. 춤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
풍식은 전국을 쏘다니며 5년 동안 춤을 배우는데, 석양 지는 부둣가, 비가 쏟아지는 항구, 빨간 등대 앞에서 함박눈을 맞거나 목장에서는 요들송과 함께, 절에서 스님과 함께 춤을 추며 환상적인 시퀀스를 만들어냈다.

4. 알 수 없는 이성재의 매력
풍식은 수련 이후 캬바레에 가는데 “어쩔 수 없이 찾아가고 말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연화도, 관객도 정상적이지 않은 이 남자의 편에 들어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 영화는 “그 사람의 정체를 아직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춤을 추는 사람이다”라는 연화의 내레이션으로 마무리 한다.

5. 문정희는 ‘춤’만 잘 춘 게 아니다
풍식이 반한 여자 지연 역을 맡은 문정희는 2시간 12분짜리인 이 영화에서 마지막 20분가량 출연하는데, 엄청난 임팩트를 주고 떠나버린다. 가련함과 춤에 대한 열정으로 풍식을 사로잡지만, 마지막 그녀가 제비를 등쳐먹은 꽃뱀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풍식과 관객의 뒤통수를 제대로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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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주희 기자 / 디자인 : 정소정

◇ ‘쏜다’(2007) - 두 번째 연출작

-줄거리
“나 진짜 쏜다.” 반듯한 얼굴을 가진 이 남자가 총을 든 이유는 무엇일까. 이 영화는 ‘바른생활 사나이’ 만수(감우성 분)가 분노하게 되고 파국을 맞게 된 하룻밤 이야기를 담았다. 만수는 어느 날, 그답지 않게 늦잠을 잔다. 허둥지둥 나가는 그를 불러 세운 아내는 이혼을 요구한다. 주차장에 갔더니 개념 없이 주차를 해놓은 에쿠스가 자신의 차를 막고 있고, 겨우 직장에 갔더니 구조조정 때문에 일을 그만둬 달란다. 퇴직 기념 회식에서 사람들이 그에게 회식비까지 내라고 하자 만식은 처음으로 화를 낸다. 이후 만식은 ‘규칙’이라고 써져 있는 모든 것을 걷어차 버리고, ‘소변금지’라고 써진 곳에 노상방뇨를 한다. 하지만 그곳은 경찰서 앞. 경찰은 자신을 잡아가라며 깽판을 치고 다니는 철곤(김수로 분)은 놔둔 채 만수를 구속시키려고 한다. 자신의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자 결국 만수는 철곤과 함께 경찰차와 경찰총까지 빼앗아 분노를 터트린다.

-주목할 점
1. 운수 나쁜 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주인공 만식에게 안 좋은 일이 겹쳐 일어난다. 이 일들은 ‘우연’이거나 주인공이 잘못해서가 아니다. 아내는 “당신이 너무 잘 해서. FM이라 재미가 없다”며 이혼을 요구한다. 퇴직 당한 이유는 직장상사의 비리를 눈감지 못했기 때문인데, 사람들은 만식을 “사회생활을 못 한다”고 비난한다. 이런 만식이 분노해서 겨우 하는 일은 고작 ‘노상방뇨’다. 하지만 경찰은 더 심한 일을 한 사람보다 그를 구속하기 위해 안달이다. 만식은 드디어 깨닫는다. “이 나라는 하지 말란 것 하는 사람이 잘되는 나라야.”

2. 속 시원한 분노 터트리기 - 스피드 레이싱 & 에쿠스 망가뜨리기
최악의 상황에서 만식은 처음으로 분노를 터트리는데, 한 번 봇물 터진 분노는 멈출 기미가 안 보인다. 언제나 속도가 느리다고 욕을 먹는, 만식의 어렸을 때 꿈은 스피드레이서였다. 철곤의 복수를 하기 위해 찾은 국회의원의 집에서 만식은 국회의원의 아들이자 스피드레이서인 태용을 만난다. 그는 태용과 고급 스포츠카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분노의 레이스를 펼친다. 이후 집으로 돌아간 풍식은 며칠 동안 자신의 차 뒤에 주차를 해놓고도 당당한 에쿠스 주인에게 분노하며 에쿠스를 부스기 시작한다.

3. 박정우 감독식 풍자
풍식이 86학번이라는 것을 알아낸 경찰은 그가 당시 데모를 했을 테니 극단적 테러범일 것이라고 몰아간다. 군대 특공대에 간 것은 각종 테러를 준비한 것으로, 공무원인 것은 공무원 신분으로 위장한 채 테러를 도모했다고 주장해 웃음을 자아낸다.

4. 결말
‘착하게 산 당신이여, 당신의 끝은 어떤 것보다 허무하리라.’ 착하게 산 풍식이 처음으로 화를 냈고, 그렇다면 그의 결말은 어떨까. 그가 착하게 산 이유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똑바로 살라’고 했기 때문. 하지만 최악의 인생을 살게 된 그는 삶의 끝에서 “아버지, 세상이 이런 데였으면 그렇게 가르치시면 안됐죠. 잔머리 굴려가며 요령껏 살라고 가르치셨어야죠”라고 절규한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leejh@enteronnews.com / 디자인 : 정소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