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온뉴스 이예은 기자] 액션, 스릴러 등 타 장르에 비해 국내에서 정통 로맨스 작품을 찾긴 어렵다. 오로지 로맨스 하나만을 내세우는 정공법은 흥행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계는 변화구를 던지고 있다. 올해 하반기, 정통 로맨스 영화는 없다. 대신, ‘로맨스+α’는 있다.
‘목숨 건 연애’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가려진 시간’ 그리고 올해 개봉 예정이었다가 내년으로 미뤄진 ‘미스 푸줏간’까지 기존 타 장르를 결합해 등장했다. 판타지, 스릴러, 액션, 섹시 등 형태도 다양하다. 로맨스라는 장르 안에서 다룰 수 있는 웬만한 이야기는 다 나왔기에 기존에 있는 것을 혼합해 장르 구분을 희미하게 만들었다.
자칫 뻔하고 밋밋해질 수 있는 로맨스에 비현실을 첨가한 작품들이 있다. 시간을 이용한 ‘판타지’를 더한 것이다. 올해 11월에 개봉한 강동원‧신은수 주연의 ‘가려진 시간’은 시간과 공간을 함께 비틀었다. 이후 시공간이 멈춘 세계에 갇혀 갑자기 어른이 되어 나타난 성민(강동원 분)과 소녀 수린(신은수 분)의 로맨스를 담았다. 현실과 동떨어진 다른 차원에서 시간이 멈춘 설정과 소녀와 어른의 모습을 한 소년의 풋풋한 로맨스는 신선한 소재로 주목 받았다.
이어 등장한 기욤 뮈소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올해 12월에 개봉한 작품으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10개의 알약을 얻게 된 남자 수현(김윤석)이 30년 전의 자신인 수현(변요한)과 만나 연인 연아(채서진)를 지켜내는 것을 그렸다. 드라마 ‘나인’처럼개봉 이후, 변요한과 김윤석이 번갈아가며 채서진과 제대로 된 정통 멜로를 펼친다는 반응을 모으며, 흥행에 청신호가 켜졌다.
로맨틱 코미디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장르 개척에 성공했고 수많은 작품들이 나온 상태다. 그래서 두 개의 장르에 하나를 더 담았다. 스릴러, 호러, 그리고 섹시와 같이 ‘로코’와 전혀 어울리지 법한 요소를 가미했다. 올해 12월에 개봉한 하지원 주연의 ‘목숨 건 연애’는 추리 소설 집필을 위해 직접 연쇄살인사건 수사에 나선 허당추리소설가 한제인(하지원 분)과 지구대 순경인 소꿉친구 설록환(천정명 분), 그리고 미묘한 남자 제이슨(진백림 분)이 삼각 로맨스를 펼친다. 이에 더해, ‘연쇄살인사건’이라는 소재를 사용하며 스릴러도 함께 접목시켰다.
기존 12월 개봉에서 1월로 미뤄진 로맨틱코미디스릴러 ‘미스 푸줏간’은 ‘섹시’라는 한 가지를 더 추가했다. 열혈강력계 김형사(김민준 분)가 동네에 새로 생긴 신비스러운 푸줏간 주인 순애(서영 분)를 만나고 연이은 살인사건이 이어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개봉 전이지만 미리 영화를 관람한 일각에서는 오히려 섹시에 치우치다 보니 로맨스, 코미디, 스릴러가 모두 빛을 발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장르 결합이라는 남다른 시도가 모두 흥행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와 ‘목숨 건 연애’는 14일 같은 날 개봉했지만 흥행 속도는 현저하게 차이난다. 개봉 당일,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2위로, ‘목숨 건 연애’는 7위로 박스오피스를 기록했다. 이어 19일 영화진흥위원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67만 9837명 관객 수를 모으고 있지만 ‘목숨 건 연애’는 4만 1328명에 그친다. 약 16배 차이가 나는 셈이다. 하지원은 “로맨스, 코미디, 스릴러가 모두 들어있어 재미있는 영화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상황이다.
마찬가지로, 올해 4월 개봉했던 이진욱, 조정석, 임수정 주연의 ‘시간이탈자’는 꿈과 시간을 이용한 판타지에 감성 멜로를 기반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하지만 판타지, 로맨스, 스릴러를 모두 담으려 하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애매함이 커진다는 평이 줄을 이었다. 그 영향인지, 관객수 100만을 조금 넘기며 막을 내렸다. 강동원이 출연해, 흥행 바람을 몰고 올 것이라고 예측되던 ‘가려진 시간’도 19일 기준, 50만 9806명에 그쳤다.
반면에, 2011년에 개봉했던 ‘오싹한 연애’는 300만 관객 수를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귀신을 보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여자(손예진 분)와 그녀를 동정하는 마술사(이민기 분)의 러브스토리를 그린 작품으로, 로맨틱 코미디에 정통 호러를 접목시켰다. ‘오싹한 연애’의 가장 큰 흥행 요인은 새롭다는 이유였다. 2011년까지만 해도 로맨틱 코미디에 호러나 스릴러를 가미한 작품이 흔치 않았다. 하지만 ‘오싹한 연애’는 로맨틱 코미디에 호러 영화 못지않은 공포까지 선사하며 새 장르의 길을 열었다. 더불어 이민기가 펼치는 마술쇼를 연출한 촬영 기법도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기존의 것을 더해 새로운 콘텐츠의 형태를 창출하려는 시도는 좋다. 하지만 신선함만이 무기가 되어선 안 된다. 익숙한 것을 탈피해 ‘새로움’이라는 승부수를 던지는 만큼, 촘촘하고 철저한 준비가 갖춰져야 한다. 대중이 납득할 만한 탄탄한 연출과 스토리가 기반이 되어야 낯섦이 신선함으로 빛을 볼 수 있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예은 기자 9009055@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