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영화 ‘마스터’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돋보이는 선 굵은 범죄오락액션 영화다. 배경은 각종 정재계에 유착해 거대한 사기 행각을 선보였던 ‘조희팔 사건’이며, 피해액은 무려 ‘조’ 단위다. 이런 실화를 바탕으로 조의석 감독은 ‘감시자들’에서 선보였던 빠른 템포와 이병헌-강동원-김우빈이라는 초호화 멀티캐스팅을 합쳐 올해 개봉 영화 중 가장 휘황찬란한 영화를 만들어냈다.
주인공 진현필(이병헌 분)은 조희팔의 초성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처럼 ‘마스터’는 일명 ‘조희팔 영화’로도 불리고 있는 영화이지만, 모티프를 따왔을 뿐, ‘내부자들’ 만큼 권력층들의 비리와 그들의 욕망을 깊이 있게 파헤치지는 않는다. 다만 그 깊이는 배우들의 연기력이 꼼꼼히 메운다.
이병헌은 또 한 번 놀라운 연기력을 보여준다. 이병헌이 연기하는 원네트워크의 진현필 회장은 수만 명의 회원들에게 사기를 친다. 극 초반 그는 대중들 앞에서 원네트워크가 얼마나 훌륭한 회사인지 프레젠테이션을 하는데, 오랫동안 혼자 이야기를 늘어놓지만 지루할 틈은 없다. 이 신은 진현필의 성격을 설명해주며, 관객들을 영화에 빨려 들어가게 할 정도로 몰입감을 선사한다. 희끗한 흰머리와 부드러운 그의 음성은 믿음을 주기에 충분하고, 연설은 마법쇼를 보는 듯하다. 청중들은 모두 감동의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다가 눈물을 훔치는데, ‘교주’에 가까운 사기꾼의 활약에 관객들마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런 그를 반년 간 추적해온 지능범죄수사팀장 김재명(강동원 분)은 진현필은 물론 그의 뒤를 봐주는 숨은 정재계 권력까지 모조리 잡으려 한다. 경찰 윗선에서도 그에게 “세상 너 하나로 못 바꾼다”고 하지만 김재명은 자신의 소신으로 밀고 나가는 저돌적인 사람이다. 그는 밑도 끝도 없이 정의롭지만, 흔들리지 않아 믿음직스럽다. 당연한 정의를 주장하지만,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더욱 믿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인물이기도 하다.
‘검사외전’ ‘검은 사제들’ ‘군도’ ‘전우치’ ‘초능력자’ 등 앞서 톡톡 튀는 캐릭터로 극을 좌지우지하던 강동원이 평소와 달리 평범한 경찰 역을 맡았다. 밋밋한 인물이기에 주목을 받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가 처음으로 극에서 상대배우를 묵직하게 받쳐주면서 극의 흐름을 이어나가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김재명은 진현필의 오른팔 박장군(김우빈 분)에게 진현필의 로비 장부를 넘기라며 압박한다. 박장군은 뛰어난 실력과 명석한 두뇌를 바탕으로 진현필과 김재명 둘 사이를 오가며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이 기회를 타 돈도 챙기고 경찰의 압박에서도 벗어나겠다는 것. 김우빈은 앞서 ‘기술자들’이나 ‘상속자들’에서 봤던 모습처럼 능청스럽고 뺀질거리지만, 팔딱팔딱 뛰어다니며 영화의 활기를 불러일으킨다.
어쩌면 세 사람의 기본 능력은 비슷할 지도 모른다. 머리가 좋고 한 번 집착한 것은 끝을 본다. 하지만 그 방향이 다르다. 이런 세 사람의 조화가 영화를 감각적으로 만든다. 세 명의 케미스트리는 각각 다른 말투에서도 영향을 받는다. 이병헌은 연설을 할 땐 믿음을 줄 수 있도록 느린 말투를 쓰지만, 필리핀으로 간 후에는 악센트가 있는 필리핀식 영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한다. 강동원은 정보성 있는 말을 전달하기 위해 평소와 달리 매우 빠르게 말을 던진다. 김우빈은 통통 튀는 말투로 변주해 리듬감을 주며, 각종 애드리브로 매 장면을 화려하게 수놓는다.
결국 계획이 틀어지자 진현필은 중국인 행세를 하며 필리핀으로 도망가는데, 이후 언론은 진현필이 불에 타 죽었다고 보도하고 사건을 종결한다. 이는 지난 2008년 3만여 명에게 5조의 사기를 치고 해외로 도피한 후, 장례식을 치렀다고 알려진 조희팔의 사건과 똑같은 흐름이라 관객들의 쓴웃음을 짓게 한다.
이 과정에서 나오는 필리핀 로케이션은 한 달 동안이나 배우들이 공들여 촬영한 신들로, 초반 진현필의 연설 장면만큼이나 인상적이다. 허름한 듯 하면서도 원색적인 배경은 진현필의 색깔을 더욱 강렬하게 드러내는데, 이국적인 필리핀에서 펼쳐지는 카체이싱과 총격신은 뜨겁고 화려하다.
액션신 뿐만 아니라 심리 싸움은 이 영화를 끌고 가는 핵심이다. 세 사람은 이중스파이가 되고 서로를 유인한다. 한 사람이 미끼를 던지면 상대편은 의심하고, 물리고 물리는 상황이 반복된다. 서로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하지만, 끝날 때까지 반전은 계속된다. 게다가 하나의 행동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지 않고, 그 속에 또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어 재미를 준다.
과정은 치고 빠지면서 현란하지만, 결말은 의외로 단순하다. 끊임없이 반전을 선보이는 캐릭터들에 눈을 못 떼다가도 마지막 결말 부분이 나오는 순간 맥이 빠질 정도. 그나마 두 개의 에필로그가 오락적인 재미를 선사하며 마무리한다. 덕분에 러닝타임은 143분으로 더 길어졌다. 오는 21일 개봉.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leejh@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