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지난 10일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가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4일이 더 지난 현재도 누적관객수는 비슷한 110만 명이다. 15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지난 14일 ‘미씽: 사라진 여자’(이하 ‘미씽’)는 301개 스크린에서 9815명을 모아 6위를 차지했다.
‘미씽’은 지난 11월 30일 개봉해 첫 날 13만 9000 명을 모았고, 개봉 첫 주말에는 47만 명을 모아 흥행 몰이를 시작했다. 그러나 둘째 주말에는 6위를 떨어지면서 급속도로 힘을 쓰지 못했다.
신작의 공세가 쏟아지기 때문에 대부분의 영화들은 개봉 첫 주말에 가장 많은 관객을 모을 수 있다. ‘판도라’ ‘라라랜드’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등 기대를 모았던 대작이 개봉하면서 상위권을 싹쓸이 해 ‘미씽’은 대중들의 관심에서 밀려났다.
사실 ‘미씽’은 기대작이 아니었다. 흥행에 유리한 남성 투톱물인 ‘형’, 재난영화인 ‘판도라’와 대적할 만한 작품은 아니었다. 작품성과 별개로 여성을 전면으로 내세운 영화가 흥행한 것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래서 여성 투톱물은 제작조차 어려운 상황이고, ‘미씽’은 만들어진 것만으로도 ‘해냈다’는 성취가 있던 작품이었다.
기대감이 낮아 보러 가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본 관객들은 호평했다. 기대감보다 입소문이 좋을 경우엔 개봉 첫째 주보다 둘째 주에 더 많은 관객을 모을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미씽’의 경우는 둘째 주 흥행을 기대케 했다.
‘미씽’의 제작비는 총 50억으로, 손익분기점은 160만 정도 된다. 개봉 첫 주 스코어를 보고 대부분의 영화 관계자들은 ‘미씽’이 손쉽게 손익분기점을 넘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나타난 여성 투톱물이 흥행까지 하자 영화 관계자는 물론 배우들까지 기대에 찬 모습이었다. 하지만 현재 ‘미씽’은 손익분기점을 못 채우고 사라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는 ‘모성’이 영화의 중심 소재인 만큼 남성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쉽지 않은데다가 주연을 맡은 엄지원이 또 다른 영화 ‘마스터’ 홍보 일정에서 구설수에 오른 것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그냥 보내기는 아쉽다. 많은 여성 관객들이 극장을 찾지만, 그들을 대변해 주는 영화는 찾기 쉽지 않다. 여배우 주인공 영화가 간혹 나오지만, ‘미씽’ 만큼 영화적인 완성도를 가지고 있는 영화는 많지 않다. ‘미씽’의 시나리오가 좋다는 소문은 오랫동안 있었지만, 감독들이 쉽게 손대지 않았던 것은 흥행에 유리하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미씽’이 손익분기점도 넘기지 못한 채 사라진다면, 퀄리티 있는 여성 주연의 영화는 다시 만들어지는 것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미씽’은 다른 영화에서 찾기 힘든 장점 몇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이언희 감독의 탄탄한 연출이다. 이언희 감독은 데뷔작 ‘...ing’부터 ‘어깨너머의 연인’까지 여자들의 심리를 쏙쏙들이 파헤치는 영화를 해왔다. 감성 멜로인 ‘...ing’에서는 풋풋한 첫사랑 이야기를 여주인공인 민아(임수정 분)에 맞춰 그려냈고, 청소년관람불가의 로맨틱 코미디 ‘어깨 너머의 연인’은 사랑에 대한 여성들의 솔직한 마음과 30대 여성들의 성장기를 다뤘었다. 가벼운 섹시 코미디가 아니라 여성들이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던 밑바닥 감정을 끌고 와 여성들의 마음을 대변했다. 이언희 감독은 ‘미씽’에서 극한으로 치닫는 상황 속에서 스릴러의 쫀쫀한 느낌을 살렸고, 시작부터 끝까지 관객들의 머리를 아프게 할 정도로 긴장감을 부여했다.
두 번째는 앞서 말했듯이 이 영화는 여성 영화로서 한 획을 그을 작품이다. 단순히 여배우 주연의 영화가 아니라 여자의 이야기를 제대로 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약자와 소수자로서 살아가는 그녀들의 이야기는 관객에게 아픔과 충격적인 공포를 안겨준다.
어떤 영화는 보고 이야기할 거리가 없지만, 이 영화는 이야기 거리가 넘쳐난다. 이 영화의 최대 이야기 거리는 ‘여자 영화인가, 엄마 영화인가’이다. ‘미씽’의 관계자는 “영화를 찍을 때 남자 스태프들이 ‘엄마가 이래도 되냐’는 말을 많이 했다더라. 한매(공효진 분)가 현익(박태준 분)과 이야기 하는 신에서 미소를 짓는데, 아픈 아이를 보러 가기 직전에 엄마가 어떻게 웃을 수가 있느냐고 하더라. 심지어 엄지원의 경우 머리를 갈색으로 염색했는데, 엄마가 왜 염색을 하느냐고 묻더라”라고 밝힌 바 있다. 여자는 없고 엄마만 존재하는 이 사고방식은 지금 우리 주변의 남성들의 시각이다. 때문에 이 영화로 인해 이런 인식을 바꿀 수는 없더라도 ‘다르다’ 정도는 알릴 수 있지 않을까.
세 번째는 ‘배우’ 공효진의 매력 때문이다. ‘미씽’에서는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공효진의 쓸쓸하고 어두운 캐릭터를 볼 수 있다. 드라마에서 그는 주로 로맨틱 코미디로 사랑을 받았다. ‘상두야, 학교가자’ ‘파스타’ ‘최고의 사랑’ ‘주군의 태양’ ‘괜찮아, 사랑이야’ ‘프로듀사’ ‘질투의 화신’까지 ‘공블리’로 불리며 사랑스러움을 뽐내고 있다.
하지만 스크린에서 그의 변신은 거침이 없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품행제로’ ‘미쓰 홍당무’ ‘고령화 가족’에서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3년 만에 나온 작품이 ‘미씽’이다. 앞서 공효진은 엔터온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시나리오를 선택하게 만들려면, 해결하기 어려운 캐릭터를 쥐어주면 된다. ‘이것을 해낼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면, 투지가 불타오르는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손 떨리는 기분이 있다. 대본을 보면서 ‘이걸 내가 내일 찍는다고?’ 하면서 흥분된다”고 말한 바 있다.
여배우들을 떨리게 만드는 작품, 사랑받던 기존의 이미지를 버리고 자신을 던질 수 있는 작품이 과연 한 배우에게 얼마나 찾아올까. ‘미씽’은 배우에게도 관객에게도 설렘과 공감을 함께 선사하는 영화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leejh@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