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리뷰┃‘우리손자베스트’] 일베와 어버이연합이 만난다면…두 남자가 그려내는 ‘헬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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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우리손자베스트' 포스터

[엔터온뉴스 이예은 기자] ‘일베 유저’와 ‘어버이연합’의 만남, 생각만 해도 ‘헉’소리 나오는 조합이다. ‘우리손자베스트’는 이 두 존재의 행위를 낱낱이 비추고 이면까지 들춰냈다.

교환(구교환 분)과 정수(동방우 분)의 첫 만남은 우습다. 개싸움을 벌이고 있던 정수의 모습을 교환이 카메라로 찍으면서 그들의 인연은 ‘으르렁’ 속에서 시작된다. 곧, 서로 간의 애국에 대한 이념이 동일함을 알게 되면서 친구로 거듭난다. 교환은 일명 ‘일간베스트(이하 일베)’를 떠올리게 하는 너나나나베스트의 유저이며 정수는 ‘어버이 연합’을 모티브로 삼은 어버이별동대의 회원이다. 자칭 ‘애국 보수’ 정수와 ‘팩트’를 찾아다니는 교환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실소가 터져 나오지만 아주 불쾌하다. 기이하고 추악하기까지 한 행위들을 일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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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우리손자베스트' 예고편 캡처

너나나나베스트의 헤비유저(활동 빈도가 높은 유저)인 교환은 실제로 ‘일베’ 회원들이 해오던 행위를 선보인다. 노동 집회 영상을 우스꽝스럽게 편집해 업로드 한다든지, 세월호 유가족 집회 앞에서 피자를 먹는 폭식 시위를 벌인다든지 등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게 만든다. 그 뿐만이 아니다. 여동생의 속옷을 몰래 촬영해 페이지에 공유하고 폭탄 제조 및 여성 납치 등 기행을 이어간다. 이 모든 행동은 교환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인정받길 바라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하지만 극단적 행동들은 불쾌감을 넘어, 관객에게 교환이라는 캐릭터에 강력한 혐오감을 심게 만든다.

정수도 다를 바 없다. 자신의 의견과 조금이라도 충돌하면 무시는 물론, 여성에게도 폭력을 서슴없이 휘두른다. 그런 그에게는 일말의 죄책감도 보이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많은 영화 속에는 악인이 등장한다. 그 영화들 속에서 악인은 ‘캐릭터’로 다가온다. 하지만 교환과 정수를 보고 있자면 공포에서 비롯된 혐오가 아닌 불쾌감으로부터 비롯된 혐오감이 일어난다. 이 둘은 단순히 영화적 ‘캐릭터’가 아닌, 우리 주변에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누군가’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기행의 발현점이 어디인지 나름대로 추측하며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한다. 즉,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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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우리손자베스트' 예고편 캡처

대표적으로 가족을 이용했다. 엄마의 목을 조르는 딸,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는 엄마, 무관심한 아빠로 이뤄진 교환의 가족은 정서적인 유대감을 얻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그는 너나나나베스트 활동을 통해서 그 세계의 소속감을 얻고 자신의 존재감을 느낀다. 정수의 개인사도 심도 있게 그려지지는 않으나 고독을 엿볼 수 있다. 손자에게서는 사랑 받지 못하고, 아들 내외에게는 스스로 먼저 거리를 둔다. 아마 다른 영화에서의 주인공이 이러한 삶을 지녔다면 그들을 측은하게 여겼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우리 손자 베스트’ 속 교환과 정수의 행위에 대한 불편함의 장벽이 상당히 높아서 연민을 느끼기엔 쉽지 않다. 행위에 대한 이해를 돕지 못해 정당성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들처럼 이해 못할 환경을 지녔다 하더라도 모두가 그렇게 성장하고, 행동하지 않는다.

김수현 감독은 영화를 두고 “지금의 20대는 위태롭고 아픔을 가지고 산다고 생각한다. 극단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지금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영화의 배경을 전한 적이 있다. 물론, 현 사회에서 20대에 속한 교환이 겪는 아픔과 좌절감은 충분히 엿볼 수 있고 공감까지 이끌어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교환의 기행은 그 감정마저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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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우리손자베스트' 예고편 캡처

영화가 시작되기 전 오프닝 장면을 통해 영화 속 과한 표현에 대해 제작진도 미안함을 느낀다며 사과부터 했다. ‘우리손자베스트’가 그려낸 것은 가상이 아닌 현실이다. 그 속의 캐릭터들이 조금만 덜 극단적이었다면, 교환이 펼치는 행위가 ‘기행’이 아닌 ‘비행’ 정도였다면, 헬조선에서 인정받기를 원했던 그들을 향해 더 편하게 인정의 시선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이러한 몰입에는 감독으로도 활동하는 구교환의 ‘하이퍼리얼리즘’ 연기 공이 가장 크다. 올해 2016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배우상을 안겨준 ‘꿈의 제인’의 트렌스젠더 역에 이어 ‘일베 유저’라는 강력한 캐틱터로 완벽하게 녹아든 연기를 선보였다. 구교환은 특유의 리얼감을 살려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생동감을 전달한다. 극 전체를 구교환이 이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7년 만에 동방우로 개명한 명계남 배우는 극에 무게를 싣는다. 고집 쎈 애국 보수의 모습도, 손자 앞에서는 연약한 할아버지의 모습까지 적당한 괴리감을 유지한 채 표현해냈다. ‘리그오브레전드(LOL)’의 성우이자 배우인 김상현의 매력적인 연기 역시 극의 텐션을 지루하지 않게 유지시킨다. 8일 개봉.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예은 기자 9009055@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