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리뷰┃‘나, 다니엘 블레이크’]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전 세계에게 켄 로치가 전하는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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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 다니엘 블레이크' 포스터

[엔터온뉴스 이예은 기자]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보험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내 이름은 다니엘 블레이크입니다.’

국민 전체가 행복해지고,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기 위해 노력하는 국가의 정책, 복지. 켄 로치 감독이 그린 영화 속 복지는 허울뿐이었다. 고달픈 약자에게 잠시 기대어 쉴 바람 같은 존재가 되어주는 건 국가라는 거대 집단의 힘이 아닌 이웃이 선사한 위로였다.

평생을 목수로 살아온 다니엘(데이브 존스 분)은 심장병이 악화되어 의사에게 ‘일 하지 말라’는 진단을 받는다. 이에 실업 급여를 받기 위해 관공서를 돌아다니며 고군분투하지만 돌아오는 건 절차 문제로 인한 퇴짜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실업 급여가 기각 되었으니 구직 활동을 시작하라는 답변까지. 굴복하지 않고 계속해서 벽을 두들기던 와중에 우연히 자신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어린 남매의 싱글맘 케이티(헤일리 스콰이어 분)를 만나 인연을 맺게 된다. ‘늪’에 빠진 케이티에게 다니엘은 구원자이자 영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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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주)영화사 진진 제공

약자가 주인이 아닌 관료들의 편리함대로 설정되어 있는 매뉴얼은 관객이 100여분동안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들에게는 귀찮은 서류 한 장이었지만 약자에게는 생존 문제다. 심장병인 다니엘에게 팔과 다리가 멀쩡하다는 이유로 급여 지급을 기각시키고, 항고 문의를 위해 건 전화도 2시간 동안 지긋지긋한 통화음을 들은 뒤에 연결될 수 있었다. 디지털과 거리가 먼 다니엘에게는 인터넷으로만 가능한 항고 신청이 구직보다 더 어려운 과제였다. 이렇게 계속되는 난관에 관객들은 숨이 턱 막혀오는 것은 물론이며 자신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닌 나와 내 주변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척박하고 거대한 벽 앞에서도 숨통이 트일 수 있던 것은 다니엘의 긍정적인 태도와 개인이 소소하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 덕이었다. 갑갑한 현실이 다니엘을 휘감고 있었지만 그는 쉬어 가더라도, 무력감에 빠지지 않고 시종일관 유쾌했다. 더불어 관공서의 한 직원, 다니엘의 이웃, 마트 직원 등 그들은 국가가 갖지 않은 관심과 사랑으로 다니엘과 케이티를 다방면에서 도와준다. 그렇게 서로를 끌어안으며 살아갈 힘을 얻는다. 소소함이 개인의 존재를 허상으로 만들지 않는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다니엘이 자신의 방법으로 목소리를 내며 대항하는 마지막 장면에선, 길거리 위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고 추앙하면서 그를 외롭게 만들지 않는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관객들도 그의 편에 서서 함께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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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주)영화사 진진 제공

언제나 노동자 곁에 서서 사회에게 끊임없이 ‘숙제’를 내어주었던 켄 로치 감독이 이번에는 실업자의 편이 되어 그들을 위로하고, 대신해 목소리를 냈다. 허울뿐인 복지로 전락한 영국의 현실을 풍자했으나, 비단 영국의 문제만이 아님을 상기시킨다. 이 영화가 끝난 뒤에도 마음에 울림을 줄 수 있는 건, 큰 혁명을 일으키며 사건을 전개시켜서가 아니다. 일상적 에피소드를 디테일하게 쌓아올려 하나의 큰 화두를 만들어 영화를 본 사람들이 한번 쯤 옆을 돌아보게 만드는 켄 로치의 힘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다니엘 블레이크 역의 데이브 존스의 연기는 실화라고 착각할 만큼 이입하게 만들었다. 그가 내뿜는 유쾌한 유머도 과하지 않았고, 그의 절망은 함께 무력감을 느끼게 할 정도였다. 실제로 노동자 계층이었던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활동했던 그의 경험이 빛을 발한 것이다.

“우리는 희망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고 말해야 한다.” 켄 로치는 국가 정책의 무능력함을 신랄하게 비판했으나 ‘개인의 연대’ ‘함께’라는 가치에는 힘을 실었다. 그가 말하는 희망은 ‘함께’였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예은 기자 9009055@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