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온뉴스 백융희 기자] 작사와 관련된 코너를 진행하면서 이제 막 20명 남짓한 작사가, 작곡가들을 만났다. 매 순간 코너 인터뷰를 진행하며 느낀 것은 이들은 한 가지 질문을 던져도 그 질문만으로 서너 시간은 거뜬히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인터뷰를 진행하다보면 대화의 맥이 끊어져 이야기의 공백이 생길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어떤 질문으로 내 앞에 있는 사람의 말문을 트이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으로 찰나의 시간을 맞기도 한다.
그 공백이 뜨지 않게 하는 것이 기자의 역량이겠지만, 적어도 코너를 진행하면서 만났던 이들은 달랐다. 그들은 본성과 상관없이 인터뷰에서만큼은 외향적인 사람들이었다. 어색한 시간이 생기지 않을 만큼 말이다.
데니스 서는 지금까지 만났던 이들 중 어색하지 않은 인터뷰를 진행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인물이었다. 물론 그가 보여준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의 빙산의 일각이겠지만, 질문 하나를 던져도 작사 혹은 인생에 대한 여러 갈래의 길로 들어서면서 다양한 세계로 들어갈 수 있도록 이끌어줬다.
대부분의 음악은 3분가량의 가사를 전하지만, 많은 것을 이야기 하는 가사가 있고 그렇지 않은 노래도 있다. 어떤 것이 더 좋은 가사라고 할 순 없겠지만, 데니스 서 작곡가는 다른 이들과 얼추 비슷한 시간을 이야기 했음에도 참 많은 것을 전해준 뮤지션 중 한 사람이었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나아가고 있는 그의 미래가 궁금해진다.
Q. 처음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과거 대학을 다니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그곳서 작곡을 하려는 생각을 마음먹었다. 작곡 공부를 25살에 시작했고 작곡으로 일을 하게 된 건 29살 때다. 늦었기 때문에 걱정도 많이 했다. 데뷔하기 전까지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음악 공부를 했다. 현재 작사가, 작곡가들이 겪는 불안한 때를 다 겪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안다. 집에서 걱정도 많이 했는데 29살에서 30살 될 때까지 작곡가로 데뷔하지 못하면 이 길을 걷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29살 때 카라가 일본에서 활동한 노래를 작곡 데뷔를 했다. 부모님께 변명거리가 생겨서 일을 계속 할 수 있었다.”
Q. 지금 몸담고 있는 클래프는 어떻게 들어가게 됐나?
“과거에 엠보트라는 회사의 가수 연습생이었다. 그 때 지금 클래프 대표인 이승민 대표님이 계셨다. 그 때 당시 같이 연습을 했던 친구가 비스트의 양요섭, 뮤지컬 스타가 된 윤형렬 배우다. 요섭이의 경우엔 정말 머리가 작아서 곧 없어질 것 같다는 말을 많이 했었다.(웃음) 정말 착한 친구였다. 그 때 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도움이 될 사람은 승민 누나라는 걸 직감적으로 안 것 같다. 미국에 갔을 때도 누나가 많은 도움을 줬다. 그러던 와중에 누나가 클래프컴퍼니를 설립했고 영입 제의가 와서 바로 들어가게 됐다. 계약서를 읽어보지도 않고 도장을 찍는 사이다. 그 정도로 믿는 분이다.(웃음)”
Q. 데니스 서는 작곡가다. 작곡가의 입장에서 작사 혹은 작사가의 입지는 어느 정도인가?
“개인적으로 작사를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승민 대표님은 나를 키웠다고 말해도 될 정도다. 과거에 내가 실력이 좋지 않았을 때 작사를 할 수 있는 데모를 많이 줬다. 그러다보니 가사 쓰는 실력이 많이 늘었다. 처음에는 엉망진창이었다.(웃음) 작곡가에게 곡이 잘 되고 안 되고의 결정적인 역할은 작사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나도 데모곡이 많은데 발매되지 못한 곡을 보면 곡은 좋은데 가사가 잘 안 풀린 곡들이 대부분이다.”
Q. 작사를 잘 한다는 것은 타고난 걸까?
“재능보다는 적성인 것 같다. 타고나는 사람들은 몇 없다. 지드래곤 정도면 타고 났다고 할 수 있겠지.(웃음) 적성이 맞나 안 맞나 기준으로 삼는 건 이 일을 할 때 한 두 시간이 빨리 가느냐다. 적성에 맞으면 힘들어도 계속 하게 된다. 계속 하다보면 안 힘들 수가 없는 일이다. 즐기고 있다는 건 덜 열심히 하고 있는 거다. 프로 뮤지션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정말 힘든 정도까지 가야하는 것 같다. 그럴 때도 계속 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게 적성인 것 같다. 이런 면으로 따지면 난 작사, 작곡 모두 적성에 맞는 것 같다.”
Q. 가사를 잘 쓰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있나?
“글을 쓰거나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아도 다른 가사를 많이 보면서 연구를 한다. 좋은 표현을 적어놓거나 활용해서 참고를 하기도 한다. 가사를 많이 쓰다보면 가사에 써도 좋을 만한 것과 쓰면 안 되는 것들을 구분 하게 되는 것 같다.”
Q. 좋은 가사란?
“너무 어렵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 생각에는 들었을 때 바로 와야 되는 것 같다. 예를 들어서 너무 유명한 가사지만 소유X정기고의 ‘썸’같은 노래. 내용만 들어도 누구나 그 감정에 대해서 다 알지 않나.”
Q. 평소에도 공감 가는 가사를 많이 쓰는 편인가?
“이번에 클래프에서 했던 노래 중에 가수 루와 트루디 씨가 부른 ‘딱 좋은’이란 노래에 내가 아껴둔 가사가 있다. 예전에 적어놓은 ‘병정’이란 표현이다. 나는 갑을관계에 병정밖에 안 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내려고 했다. 그런데 여기에 한술 더 떠서 루가 갑을 관계가 아니라 갑을 나라의 병정이라고 하더라. 느낌이 중의적이지 않나. 이런 것 하나하나가 가사를 더 살리는 것 같다.”
Q. 가사를 점점 발전시키는 과정을 거치면 훨씬 좋은 가사가 나오나?
“맞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좋다고 느끼는 걸 다른 사람은 아니라고 느끼는 경우도 있을 거다. 요즘에는 공감이 가면서도 재미있는 표현을 쓰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가사 의뢰가 올 때도 재미있는 단어를 써달라고 하더라. 일상생활에서 잘 쓰지 않는 단어를 집어넣으면 많은 분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
Q. 아이돌 가수의 노래도 일상생활에서 오는 것들을 이용해서 공감을 줄 수 있을까?
“내가 작사, 작곡한 노래 중에 틴탑의 ‘그 전화 받지 마’라는 노래가 있다. 실제로 생활하다가 얻은 아이디어다. 아는 여동생이 전에 사귀던 남자친구한테 전화가 왔는데 받을지 말지에 대해 물어보더라. 그 순간 내가 ‘그 전화 받지 마! 그 전화 뻔한 거 아니겠어?’ 이렇게 말했다. 그러다가 내가 말하고 괜찮은 것 같아서 적어놓고 가사에 쓴 거다.(웃음)”
Q. 평소에 가사에 쓰일 영감이나 소재를 일상생활에서 얻는 편인가?
“제목으로 쓸 만한 것과 표현으로 쓰는 것들을 분류해서 메모해두는 편이다. ‘그 전화 받지 마’는 제목으로. ‘딱좋은’의 갑을병정 같은 경우에는 표현으로 분류해 놨다. 작곡할 때 제일 먼저 생각하는 건 제목이다. 제목이 안 나오면 노래를 다 만들고 나서도 노래가 산으로 갈 때가 많다. 제목이 딱 잡혀서 콘셉트가 잡힌 음악이어야 가사가 잘 나오지 일단 만들자 해서 만들면 십중팔구는 망하더라.”
Q. 가사의 콘셉트를 잡는 방법이 있을까?
“댄스곡의 경우에는 그 가수의 입장이 돼야 한다. 연차가 6~7년 된 분들은 난이도가 있는 걸 좋아한다. ‘난 널 사랑해’ 이런 건 안 좋아한다. 처음에 갓 데뷔한 18~20살 연령의 친구들은 파릇파릇한 것부터 시작한다. 사랑해란 말 한마디를 한다고 해도 예쁘게 할 것인가 점잖게 할 것인가 끝까지 안하고 뉘앙스만 풍길 것인가에 대한 정의를 해줘야하는 것 같다.”
Q.가사의 구간별로 잘 쓰는 팁이 있을까?
“후렴이 제일 중요한데 흔한 표현으로 써야한다. 만일 특별한 단어를 쓴다고 하더라도 음정이 낮을 때 써야한다. 높은 음일 때 쓰면 가수가 힘을 줘서 부르는데 어색하게 들릴 때가 있는 것 같다. 노래를 잘 하는 가수라면 고음이라도 순간적으로 힘을 빼서 부드럽게 할 수 있겠지만, 모든 가수가 그렇지 않다. 가장 좋은 건 한마디로 무리수인 단어들은 벌스에 넣고 후렴의 경우에는 편하게 부를 수 있는 게 좋은 것 같다.”
Q. 신인 작사가 혹은 작사가 지망생들이 기성 작사가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까?
“모든 회사가 유명인보다는 좋은 가사, 좋은 곡을 쓸거라는 믿음이 있다. 올해 클래프에서 슈퍼주니어의 려욱 씨의 ‘어린왕자’를 작사, 작곡한 분이 있다. 원래 타이틀이 아니었는데 타이틀이 됐고 ‘어린왕자’라는 곡을 처음 쓴 거다. 이런 걸 보면 곡이 좋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Q. 작업한 CD 진열장을 보니 악동뮤지션의 CD에 이찬혁 가수가 적은 ‘기브러브(Give love)’의 의도치 않은 타이틀화 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악동뮤지션이 1집을 낼 때 찬혁이가 원했던 곡은 ‘얼음들’이라는 우울한 곡이었다. 이 노래는 찬혁이가 YG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가기 전부터 ‘형 이건 타이틀 할 거예요’ 했던 곡이다. 하지만 YG엔터테인먼트에서 타이틀로 선정한 건 ‘200%’다. 그리고 대중이 좋아한 타이틀곡은 ‘기브러브’였다. 그래서 이 세 곡이 타이틀이 됐다. 사실 ‘기브러브’가 인기가 많았기 때문에 타이틀로 하지 않을만한 근거는 없었다. 하지만 찬혁이는 ‘인공잔디’를 타이틀로 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이렇게 적었나?(웃음).”
Q. 악동뮤지션과 친분이 깊어 보인다.
“개인적으로 찬혁이가 천재 중에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 ‘라면인건가’ 노래를 듣고 기절하는 줄 알았다. 얼마 전에도 조촐하게 망년회 하면서 너의 인생 곡은 ‘라면인건가’가 아니냐고 말한 적이 있다. 라임 쓰는 것부터 대단하다. 수현이도 노래를 너무 잘 부른다. 수현이는 이제 오빠가 군대에 가면 자기 시대가 올 거라 말한다.(웃음) 수현이는 노래를 너무 잘 부르고 음정이 너무 정확해서 놀라운 친구다. 이 아이들은 가수인 걸 떠나서 너무 착해서 연예인 같지도 않다. 또 찬혁이는 몽골에서 살았기 때문에 군대를 안가도 되는데 검정고시로 고등학교까지 졸업을 해서 군대를 가려고 하더라. 해병대에 가려고 보고 있던데 대단한 것 같다. 그리고 찬혁이의 경우는 내가 형처럼 생각한다. 잘 되면 형이다.(웃음) YG에 대단한 작곡가분들이 많은데 나와 작업을 해줘서 고맙다.”
Q.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던데 고마운 사람들이 있나?
“데뷔를 하고 잘 되고 싶으면 주위 사람들한테 잘해야 하는 것 같다. 내 생각에 나는 과대평가됐다고 생각한다.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내가 늘 세 손가락 안에 꼽는 고마운 분들이 있다. 신승익 작곡가님, 이승민 대표님, 김민기 대표님이다. 가능성 하나 보고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이다.”
Q. 작사가는 데뷔할 수 있는 방법이 공식적으로 없는 것 같다.
“작사가만큼 데뷔 루트가 애매한 게 없다. 데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클래프같은 곳을 통해 작사 데모를 주고 기회가 왔을 때 데뷔를 하든지 작곡가랑 친해지는 거다. 하지만 친하다고 다 데뷔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거나 실력에 대한 믿음을 줘야한다. 특히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꺼내고 깨알 같은 무언가까지 끄집어내서 활용해도 살아남기 힘든 곳이 이 세계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기회를 만들고 나가야 하는 것 같다.”
Q. 앞으로의 목표를 말해줄 수 있나?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작곡가로서 바쁘게 활동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쁠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 그렇게 됐다. 지금 주위에서 성공했다는 말을 들을 때가 있는데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스스로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뭐 나 정도면’ 하면서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정도까지 갔으면 좋겠다.(웃음)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하면 겸손하다고 말을 하는데 나는 고평가된 작곡가라고 생각한다. 3~4년 후에 들어야할 평가를 지금 미리 듣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인터뷰 전에 사진 촬영을 하면서 사진 기자 분께서 어떤 곡을 썼냐고 물어보셨는데 그럴 때 딱 말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곡을 쓰고 싶다. 주변에서 아무리 성공했다는 말을 해도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게 내 목표다.”
Q. 뮤지션을 꿈꾸는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실력은 아무것도 아니다. 재능보다는 적성이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활용해라.”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백융희 기자 historich@enteron.com / 디자인 : 정소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