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온뉴스 이소희 기자] 김하늘은 지난 3월 결혼 후 첫 작품으로 KBS2 드라마 ‘공항 가는 길’을 택했다. 눈에 띄는 점은 몇 개월 사이 미묘하게 달라진 김하늘의 분위기였다.
김하늘은 어딘가 모르게 편안해 보였다. 결혼 후 환경이 달라졌다며 “부모님과 있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 있을 때 느끼는 편안함의 색깔은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시청자들은 그의 변화를 이미 알아챈 듯하다. 브라운관 속 김하늘은 한결 여유로워졌고 깊어진 감정을 내뿜었다. 극중 어린 딸과 함께 호흡을 맞추는가 하면 여성으로서, 엄마로서 메시지를 던지는 여자 주인공 최수아를 연기하며 김하늘은 자신도 모르게 어디론가 나아가고 있었다.
◇ 김하늘이 만들어낸 다양한 최수아
“홀가분해요. 3개월 동안 열심히 했고, 보여드리려고 했던 것들을 잘 보여드린 것 같아요. 1회 빼고 본방송을 못 봤는데, 시청자 분들이 제가 생각하는 이 드라마의 의미보다 훨씬 정리도 잘 해주셨더라고요.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피곤한 일주일 속 느끼는 3~40분 여유 같은 드라마에요.”
드라마 속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린 대사 중 하나다. 서도우(이상윤 분)를 처음 보고 강한 유대감을 느낀 최수아는 “별일이에요. 그저 남들 다 하는 먹고 사는 일인데 뭐가 이렇게 힘든지. 외국 가서 잠시 3, 40분 사부작 걷는데, 어디선가 불어오는 미풍에 ‘인생 뭐 별거 있나, 이렇게 좋으면 되는 거지’하고 다시 힘나는... 그 3, 40분 같아요, 도우 씨 만나면”.
‘사부작’ ‘미풍’ 등 단어에서 알 수 있듯 ‘공항 가는 길’은 차분하면서도 어둡지 않고, 조용하면서도 복잡미묘한 감정이 얽히고설킨 드라마다. 휘몰아치는 감정을 대놓고 보여주는 장면보다 섬세한 감정과 대사로 어느새 마음이 물들게 만드는 수채화 같은 작품이다.
최수아도 그랬다. 감정을 숨기다가도 어느 순간 모두 다 내보이며, 느리지만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걸어갔다. 김하늘 특유의 또박또박한 발음과 감성적인 표현은 한데 어우러졌고, 뭉근히 풍겨오는 오묘한 분위기는 김하늘만이 표현할 수 있다고 느껴졌다.
“멜로의 주인공은 잘못하면 지루할 수 있다는 생각에 수아와 부딪히는 인물에 따라 캐릭터 설정을 다르게 했어요. 딸 효은과 있을 때는 친구 같이 대하면서 유일하게 애교를 부리고 오히려 딸이 엄마 같아요. 남편 진석과 있을 때는 답답한 구석도 있지만, 직장에서 일할 때는 누구보다 적극적이고 진취적이에요.”
덕분에 다양한 색깔의 최수아가 탄생했다. 비주얼적으로도 새로운 구석이 있었다. 최수아는 극중 직업이 스튜어디스였기에, 김하늘은 새빨간 제복을 입은 모습을 자주 드러냈다. 엄마 최수아와 직장인 최수아의 경계를 드러내는 지점이었다.
“사실 생각한 이미지의 옷이 아니어서 좀 당황스러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예뻐요. 정도 들어서, 극중 스튜어디스를 그만두고 엔딩이 되서야 제복을 다시 입는데 반갑고 좋더라고요. 그 옷을 입으면 캐릭터를 입는 느낌이 들었어요.”
◇ 만남, 이별 또 다시 만남...공항의 의미
스튜어디스 제복은 ‘공항’이라는 곳이 작품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공간인 만큼 상당한 역할을 했다. 공항은 최수아와 서도우를 연결해준 장소이자 만남과 헤어짐이 공존하는 장소다.
“드라마 제목을 진짜 잘 지었다고 생각해요. 공항이라는 공간 자체가 만나고 헤어짐의 장소잖아요. 거기로 가는 길 자체가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그게 다 섞인 공간 같아요.”
드라마의 엔딩이 펼쳐진 장면도 공항이었다. 각각의 가정이 있던 수아와 도우는 양쪽 모두 정리한 채 재회하며 해피엔딩을 맞이했다. 서로 가까워질 수 없는 관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던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순간의 데자뷰처럼, 이들의 새로운 관계도 그렇게 시작됐다.
“원래는 수아와 도우가 잘 연결되지 않는 방향이 결말이었는데 흐름이 바뀐 것 같아요. 사실 진석과 수아 관계 역시 생각했던 것보다 사이가 더 벌어졌거든요. 수아가 진석이랑 다시 합칠 수 있는 게 흐름이 아니었어요. 저는 두 사람이 잘 연결되지 않는 방향이 맞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시청자들은 둘이 연결되기를 많이 바라셨더라고요.”
결말이 마음에 든다고 했었는데, 두 주인공이 잘 안되길 바랐던 것은 어떤 의미인 건지 물었다. 김하늘은 “엔딩이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건 한 발짝 물러나서 봤을 때다. 오래 남는 드라마가 되길 바랐다. 그런데 막상 수아의 입장에서는 관계를 설득할 필요는 없었다. 수아가 가고자 하는 길과 맞는 방향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만약 제가 수아라면 남편과 관계에 있어 그렇게 될 때까지 상황을 안 끌고 갔을 것 같아요. 뒤늦게 찾아온 인연이 분명히 있다곤 하지만, 결말이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는 것도 그러면 상처 받는 사람들이 생길 테니까요.”
◇ ‘김하늘’이라는 계절은 깊어져 간다
김하늘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밸런스’라고 했다. 자신의 행복과 주변의 행복이 거의 일치하는 것이다. 자신의 가치관을 단호하게 설명하는 김하늘의 생각은 또렷해보였다.
“어떻게 살아야할지 분명한 편이에요. 내가 행복함으로 인해 남이 다치지 않는 선을 찾아야 주변도 행복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상처 받지 않고 행복할 수 있는) 그 안에서 최선을 찾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사랑도 그래요. 나를 사랑해야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죠. 내 삶에 있어서도 뭐가 소중하고 어떤 게 행복한지 잘 알고 있어야 주변 사람도 잘 챙길 수 있는 것 같아요.”
언젠가는 엄마가 될 김하늘의 모습도 비슷했다. 김하늘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엄마는 아닌 부분은 정확히 잡아주고 풀어줄 수 있는 부분은 풀어주는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좋은 가족관계를 꼽았다. 수아가 극중 좋은 엄마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남편과 관계가 좋지 않은 것만으로도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
김하늘이 결혼을 한 뒤 연기한 최수아였기에, 그 상황들은 더 깊숙이 와 닿았다. 게다가 ‘공항 가는 길’에서는 엄마와 한 개인으로서 수아의 이야기도 못지않게 비춰졌다. 극중 수아는 엄마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내려 노력했지만 때로는 버거움과 회의감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수아는 능력을 인정받는 스튜어디스였다.
“주변 친구들이 워킹맘이어서 (현실을) 자세히 알고 있었어요. 여자로서 희생해야할 부분이 참 많다고 느꼈어요. 저는 남편한테 세뇌시키고 있어요. 가령 아이 목욕은 남편이 시켜야만 한다, 이렇게. (웃음) 주변에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이야기들 해요. 아이가 3명인 친구는 남편이 항상 목욕을 시키면 자기는 머리를 말리고 물기를 닦아준대요. 바람직하고 보기 좋은 것 같아요.”
2016년은 김하늘에게 조금은 특별한 해다. 결혼이라는 인생의 터닝포인트도 맞이했고, 캐릭터와 혼연일체가 된 연기와 감정선을 보여주며 배우로서도 인생작을 만들어냈다. 김하늘은 “배우들은 한 인생을 몰입해서 연기하고 살다 나오니 분명 배우는 게 있는데, 그게 성숙함으로 연결되는 게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빠르게 가면 목표에 빨리 도착할 수 있지만 보지 못하는 게 많을 수 있잖아요. 저는 과정을 더 중요시 여기는데 수아도 그래요. 감정에 솔직한 친구지만 주변을 돌아볼 줄 알고 천천히 가거든요. 그러면서도 보면 본인이 가고자 하는 길을 가고 있어요.”
최수아처럼 김하늘은 여러 변화를 겪으며 한 단계 더 걸어 나갔다. 노랗게 물드는 낙엽을 돌아보고 어느새 스치는 스산한 겨울공기를 느끼며, 김하늘이라는 배우는 그렇게 깊어지고 있었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소희 기자 lshsh324@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