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영화 ‘스플릿’은 밑바닥 볼러 철종(유지태 분)과 자폐 성향이 있지만 볼링만큼은 천재적인 영훈(이다윗 분)이 도박 볼링판을 전전하다가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주는 이야기다.
스포츠 영화이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지치고, 코미디와 감동 모두 선사해야 한다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이다윗에게 가장 고민이 됐던 것은 자폐증이 있는 인물을 표현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다윗이 연기한 영훈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사는 자폐증 아이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람과 다른 감정상태를 가지고 있다.
“처음엔 못하겠다고 하려고 했는데, 스스로에게 도망치는 것 같고 부끄러웠다. 그래서 도전했다. 이 작품을 하기로 한 순간부터 촬영 마지막 날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고민을 했다. 무엇이 가장 어려웠냐는 질문에 무엇은 쉽고 무엇은 괜찮다고 대답할 수가 없다. 이 캐릭터 자체가 다 고민이 됐다. 손 하나 움직이는 것도 신경 쓰였다. 감독님을 엄청 찾아가서 이야기를 많이 했고, 자폐 성향 있는 분들의 심리를 치료하시는 분도 찾아가서 공부했다.”
처음 영훈의 캐릭터를 만들 때, 이다윗은 정상인은 아니지만 또 너무 자폐는 아닌 지점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볼링을 친 후 손목을 돌리는 틱을 만들어냈고, 상대방을 제대로 쳐다보지 않고, 정확하게 의사소통을 하지는 못하지만, 대용량 밀키스에 모든 것(?)을 허용한다든가 순수하면서도 날것의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중 가장 신경 쓴 것은 엉덩이와 무릎의 반동을 이용한 볼링 포즈다.
“여러 가지 동작 중 골라서 한 것이었다. 처음엔 말도 안 되는 동작들이 많았다. 공을 들고 점프를 하면서 다다다다 달려 나가는 등 절대로 볼링을 칠 수 없는 포즈도 있었다.(웃음) 그 중에 안정적이고 기본적인 자세를 찾았다. 내가 한 자세는 한 외국 꼬맹이가 볼링을 치러 와서 공을 막 던지는 모습에서 가지고 왔다.”
“나는 왼손잡이인데, 영훈이는 오른손으로 볼링을 친다. 영훈이가 오른손잡이인 게 아니라 영훈이는 어릴 적부터 철종을 따라했기 때문에 오른 손으로 치는 것이다. 나도 오른손으로 하는 게 처음이었고, 힘이 잘 안 들어가서 힘들었다.”
‘스플릿’은 철종과 영훈의 성장드라마로도 볼 수 있다. 볼링에서 쓰러지지 않은 핀들이 간격을 두고 남아 있는 상태를 뜻하는 말인 ‘스플릿’이란 제목처럼 잘못된 상황에 놓였던 철종과 영훈은 함께 남아있는 핀을 처리해 나가면서 성장해나간다.
“‘스플릿’이란 제목이 감성적이라고 생각했다. 감독님도 ‘‘스플릿’이 철종과 영훈 같지 않냐‘고 하셨다. 철종의 인생에서 스페어(남아 있는 핀) 같은 존재가 있는데, 해결하기 힘든 그것을 처리한다는 것에서 제목이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철종과 영훈처럼 볼링에서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스플릿’ 같은 상황이 있다. 볼링에도 어느 정도 ‘운’이 따르기 마련인 것처럼 현실에서도 운이 따라주지 않고 자꾸만 좋지 않은 상황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다윗은 이런 상황이 닥칠 때는 어떻게 극복할까.
“어느 순간부턴가 문제가 생기면 거기에 안 빠지려고 하는 습관이 생겼다. 예전에는 거기에 빠져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머리가 엄청 빠진 적도 있다. 어느 순간부터 ‘살면서 또 언제 이런 문제에 봉착하겠나’란 생각을 하게 됐다. 게다가 생각해보면 그때의 일들이 모두 해결이 됐었다. 내가 좋아하는 말은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다’는 것이다. 고민은 하되 거기에 빠져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을 것이다. 어떻게든 풀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극중 볼러들이 볼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정신력이라고 하는 것처럼 이다윗은 그의 인생, 그리고 연기관에 있어서도 강한 정신력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이다윗은 연기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으로 ‘남들과 다른 정신’을 꼽았다.
“유지태 선배는 ‘소통’이라고 했고, 명계남 선생님은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한다’고 했다. 배우들마다 관점이 다른 것 같은데, 연기를 하려면 평범한 사람들과의 뇌구조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높고 낮음이 아니라 다른 종류다. 어떤 상황에 놓였을 때 3인칭으로 그 상황을 벗어나서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아는 형이 장례식장을 갔는데 절을 하면서 순간 머릿속에 ‘카메라를 여기서 빼면 되겠다’라고 자기도 모르게 생각 했다더라. 연기를 하면 참 잔인한 게,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이 일어나면 그 기억을 꺼내 연기를 하게 된다. 반대로 실제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도 그 상황을 가정해야 한다. 나에게 미안한 일이고 마음을 다치게 되지만, 연기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나를 위험에 넣어야 한다. 좋은 작품과 연기는 평범하게 살면 절대 나올 수가 없는 것 같다.”
이다윗은 지난 2001년 데뷔해 아역으로 많은 활약을 한데 이어 영화 ‘시’ ‘더 테러 라이브’ ‘고지전’ ‘신촌좀비만화’ 등 굵직굵직한 작품으로 필모그래피를 채우고 있다. 15년 차 배우로서 영화계에서 큰 몫을 하고 있는 그는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을까.
“우리 영화계에서 송강호 선배를 뺀다면 돌아갈까? 그것처럼 나도 내가 없다면 영화계가 안 돌아갔으면 좋겠다. 영화라는 장르에 없어서는 안 되는 배우가 되고 싶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leejh@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