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호하고 신속했다. 정부가 남북 관계, 한진해운 사태를 대응할 때 그랬다. `칼날`은 망설임이 없었다. 개성공단이 문을 닫았다. 한진해운 처리 과정이 그랬다. 원칙은 없었다. 그때 그때 임기응변, 땜질 처방만 있었을 뿐이다.
원칙은 중요하다. 원칙이 없을 때 예측은 불가능해진다. 기업이 가장 두려워하는 불확실성은 그래서 시작된다.
과거와 현재 대응이 매번 달랐다. 야당이 집권당일 때, 여당이 집권당일 때 현상은 비슷했지만 처방은 달랐다. 두 정권 모두 명분을 내세웠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대의명분을 해석하는 사람만 바뀌었을 뿐 현상은 그대로였다. 기업도 그대로였다.
원칙 없는 정부는 이해하지 못할 결정을 내린다. 개성공단 폐쇄도 한진해운 처리 절차를 만드는 것도 손바닥 뒤집기만큼 쉬웠다. 제대로 된 `출구 계획`도 없었다. 중소기업과 국민만 바보였다. 원칙이 없으니 예측이 불가했고, 대응할 시간조차 없었다.
한진해운 때문에 해외로 향하던 물건이 배 안에 묶였다. 수출 기업은 애써 확보한 해외 판로를 잃었다. 앞으로 전개될 거래 업체의 피해 소송도 걱정이다. 해외 거래처와의 신뢰가 깨졌다. 포워딩 업체도 납기 지연이라는 날벼락을 맞았다. 이들이 피해 보상을 받을 길은 불확실하다.
개성공단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개성공단 기업인들은 하루 전까지도 폐쇄를 예상하지 못했다. 공단이 닫히면서 경영은 마비됐다. 정부 지원금은 확인된 직접 피해 금액에도 못 미친다. 정부는 개성공단 폐쇄로 촉발된 입주 기업과 협력업체 간 갈등에 `업계 자율로 합의하라`고 한다.
개성공단은 대북 관계라는 변수가 있었고, 한진해운은 경영 악화라는 뇌관이 존재했다. 문제는 그 이후다. 정부는 개성공단 입주 기업에 대체 생산기지를 제시해야만 했다. 한진해운의 회생 결정에 앞서 선박에 실린 수출품은 무사히 당도하도록 조치해야 했다.
원칙이 없으면 `비선 실세`가 되살아난다. 중소기업 정책의 원칙, 이제라도 세워야 한다.
이영호기자 youngtig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