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모뉴엘 사건, 무역금융 편취 방지 협업의 전환점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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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열 관세청 차장

“높이뛰기 역사는 포스베리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회자된다. 우리가 변화와 혁신을 이야기 하면서 자주 인용하는 일화가 `포스베리 플롭`이다.

이야기는 1968년 제19회 멕시코 올림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 오리건주립대에 다니던 딕 포스베리가 높이뛰기 출발선 앞에 섰다. 그때 관중은 깜짝 놀랐다. 그는 다른 선수와 달리 정면에서 바를 뛰어넘지 않고 복부를 위쪽으로 향한 후 목과 등으로 넘었다.

그는 이 대회에서 2.24m의 신기록으로 우승했다. 이후 높이뛰기에서 배면으로 뛰는 방법을 `포스베리 플롭`이라고 부르게 됐다. 지금은 거의 모든 선수가 포스베리 플롭 방식으로 뛴다.

관세청은 매년 약 5조원 규모의 불법 외환 거래를 적발한다. 해외 재산 도피나 범죄 수익 자금 세탁 등 중대 외환 사범을 대상으로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높이뛰기 분야에서 포스베리 이전과 이후로 나누는 것처럼 관세청의 불법 외환 거래 단속은 모뉴엘 사건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모뉴엘은 2004년 창업해 소형 가전 분야에서 성장을 지속했다. 2009년 매출 1000억원을 돌파했으며, 2014년 매출 1조원 클럽에 가입했다.

하지만 관세청에서 조사한 결과 1조원대 허위 매출 조작과 3조2000억원대 무역금융 편취(사기대출) 혐의가 드러났다. 당시 모뉴엘 대표는 저가의 홈시어터 PC 케이스 수출 가격을 120배로 부풀려 수출하고, 조작된 수출채권과 선적서류 등 무역 서류를 금융 기관에 매각하는 수법으로 자금을 빼돌렸다. 빼돌린 자금은 수입 대금 명목으로 홍콩의 페이퍼컴퍼니로 송금한 후 로비 자금, 미국 내 주택 구입 등에 사용했다.

모뉴엘 사건 이후 정부는 수출가격 허위 신고를 통한 무역금융 사기 대출을 방지하기 위해 원인 분석에 착수했다. 종전까지 금융 기관은 수출자가 제출한 무역금융 서류만으로 대출 심사를 하다 보니 실제 수출 여부 및 가격 적정성까지 확인할 수 없어 무역금융 사기 대출을 사전에 방지하기 어려웠다.

관세청 역시 인터넷을 통한 수출 신고 자동 수리 등으로 모든 수출품에 대한 검사가 불가능한 현실에서 실물 확인 없이 수출자의 수출 신고 정보만으로는 무역금융 사기 대출 적발에 한계가 있었다.

이후 관세청은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시중은행 등 금융 기관들과 머리를 맞대고 무역금융 사기 적출 방안 효율화를 협의하고 `무역금융 사기대출 예방·적발 체계`를 구축했다.

관세청은 금융 기관이 제공하는 대출 심사 정보와 의심 업체 정보를 활용, 수출 통관 자료와 외환 거래 자료를 연계 분석해 허위 수출 및 사기 대출 업체를 판별했다. 금융 기관은 대출 신청 건 관련 특정 수출 품목의 수출 가격 범위 정보를 활용, 수출 가격 고가 조작 여부를 사전에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기업이 수출입 지원을 위한 정부 보조금 부당 수령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관련 부처와 정보 교류 및 단속 활동을 확대·강화했다.

이러한 정보 공유·협업 결과 관세청은 지난해 총 12건(3586억원)의 무역금융 편취를 적발하는 성과를 거뒀다. 금융 기관은 관세청 통관 정보를 기초로 연간 400억원 상당의 무역금융 편취를 사전 차단했다.

사상 최대의 무역금융 사기로 기록되고 있는 모뉴엘 사건은 무역금융을 `눈먼 돈`으로 보는 일부 무역업체의 비정상 관행을 정상화하기 위해 관세청과 금융 기관이 협업하게 된 전환점이 됐다.

김종열 관세청 차장 jyk23666@custom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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