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온뉴스 백융희 기자] 배우 이형철은 지난 16일 종영한 SBS 주말드라마 ‘끝에서 두 번째 사랑’에서 고상희(정수영 분)의 남편 박천수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시청률 면에서는 다소 아쉬운 성적을 보였지만 작품의 표면적인 성패와 상관없이 그는 배우, 스태프들과 함께 호흡하며 몰입했던 만큼 섭섭한 마음이 더 크다.
“이번 작품은 끝나서 유독 더 섭섭한 기분이 들어요. 좋은 작품이었기 때문에 더 많은 분들이 접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촬영장 분위기도 좋았고 스태프나 배우끼리 분위기도 좋아서 조금 더 촬영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 할 정도였어요. 마무리를 잘 했고 좋은 작품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아직 실감이 잘 안 나는 것 같아요.”
한 작품을 막 끝낸 배우들은 대부분 작품이 끝난 순간의 기분을 ‘후련함’ 보다는 ‘허전함’에 가깝다고 이야기 한다. 이형철 역시 데뷔한지 21년차가 됐지만, 그 공허함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는 노련미 있게 종영의 여운을 달래기 위한 돌파구를 마련해놓는다.
“허전하죠. 몇 개월 동안 이 작품에 집중을 해서 촬영을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무것도 없는 거잖아요. 마치 어디에다가 뭘 두고 온 느낌 혹은 어딜 가야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작품이 끝나면 운동이나 여행을 많이 다녀요. 이번에는 혼자 제주도를 다녀온 뒤 따뜻한 곳으로 여행을 가려고 생각 중이에요.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문제기도 하지만, 혼자 잘 다녀서 주변에서는 그게 더 걱정이라고 해요.(웃음)”
이형철은 이번 드라마에서 무미건조한 삶에 공허함을 느끼는 수학교사 박천수 역을 맡았다. 이 인물은 갱년기를 겪고 있는 중년 남성이다. 갱년기를 연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 아쉽게도 그는 아직 갱년기란 감정을 느껴본 적은 없다고 한다. 평범한 루트의 삶을 살고 있는 또래 남성들과 전혀 다른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래 친구들이 겪고 있는 가장의 무게와 반복되는 삶 속에서 오는 우울함을 느껴본 적 없다고 말했다. 특히 ‘속박감’을 배우로서 가장 경계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결혼’이란 단어를 자주 언급하지만, 그는 어떤 규제 속에서 그를 얽매이는 것이 없기 때문에 어쩌면 배우로서 긴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갱년기를 겪는 주변 친구들의 상황이 이해는 가는데 철이 안 들어서 그런지 저는 그런 기분을 느껴본 적이 없어요. 누군가를 책임져야할 스트레스가 없잖아요.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가고 싶으면 가는 생활을 해요. 이런 점이 배우로서는 참 좋은 점인 것 같아요. 배우는 철이 안 들어야 좋은 것 같아요. 철이 든 다는 것은 모든 사고나 개념들을 고체화 시킨다는 의미 인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서 안 되는 게 더 많아지잖아요. 철이 들지 않았다는 건 ‘왜 안 돼? 나 이거 해보고 싶어’ 하면 그냥 하는 거예요. 배우는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야 늘 발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형철은 어린 시절을 미국에서 보낸 뒤 20대 때 한국으로 건너와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20대 후반부터 미니시리즈 배우로서 승부를 보기 위해 7년이란 시간을 미니시리즈에만 몰두했다. 시간이 흐른 뒤 어느 정도 인지도는 쌓았다. 연기력도 비주얼도 어느 하나 흠 잡을 곳 없었지만 소위 말해 ‘한 방’을 잡기에는 운이 따르지 않았다. 이후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신인 배우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좌절하기도 잠시 더욱 다양한 작품으로 연기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었다. 그가 욕심을 내려놓는 순간 더욱 많은 작품에 출연하게 되며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맞이했다.
“자연적인 현상인 것 같아요. 사회 구조라는 게 결국 20-30대 들이 계속 밑에서 올라오고 우리가 그다음 40대로 올라가고 아무래도 뒤쪽으로 밀리 수밖에 없잖아요. 나도 그 시대를 겪었고 기회가 많았는데 여기까지밖에 못 살린 거니까 나머지를 생각해야겠구나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미니시리즈만 하다가 일일 드라마도 하고 다양한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 했어요. 그러다보니까 ‘다행이다 이런 것도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걸 보여줄 수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인 거죠.”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백융희 기자 historich@enter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