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여배우들이 나설만한 작품이 없다고 하는 측도 있지만, 영화의 메인으로 나설 만한 여배우가 없다는 측의 의견도 있다. 한쪽의 의견만 맞다고 할 수 없지만, 여배우들이 살아야지 여주인공 영화도 부흥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은, 충분조건은 아니더라도 필요조건은 된다.
과거 70년대~200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트로이카’로 불리던 여배우들이 있었다. 70년대는 장미희-유지인-정윤희, 80~90년대 최진실-김혜수-심혜진, 2000년대 심은하-전도연-김희선 등이 시대를 이끌었다. 현재도 톱 여배우들이 있지만, 트로이카로 불리는 사람은 없다. 여배우는 많지만 원톱을 맡을 만한 배우는 부족하다는 뜻이다.
때문에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하게 되더라도 제작사들은 주인공을 찾기 위해 고심한다. 한 제작사는 “한국 배우 ‘빅6’ ‘빅10’ 등을 꼽는다고 할 때 송강호ㆍ황정민 등이 있다. 여기에 여배우들은 없다. 어쨌든 영화를 끌고 갈 수 있는 여배우를 찾아야 하는데 너무 한정적이다. 손예진, 하지원 등 다들 비슷한 사람이 생각날 것이다. 이외에는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갈 배우들이 많지 않다. 즉 다른 사람들은 티켓파워가 크지 않다. 그렇다고 모든 영화에 그들만 쓸 수 없지 않나”라며 안타까워 했다.
여배우은 이 사실을 어떻게 생각할까. 배우 심은경은 최연소 흥행퀸이라 불리는 사람이자 20대 대표 여배우로서, 최근 대부분의 영화에서 남자 배우들의 활약이 큰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남자 배우들의 활약이 돋보인 것은 사실이다. 그 부분이 아쉽다기보다 나는 꼭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매력적인 캐릭터라면 도전을 하려고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며 말을 아끼기도 했다.
올해 데뷔 15주년을 맞은 임수정은 “여배우가 활약할 수 있는 캐릭터와 영화가 한국영화 시장에서 비율이 낮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제작이 아예 안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비관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앞으로도 이 사실은 크게 전환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는 없다. 그 안에서 노력하고 도전할 것이 있으면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시간 이탈자’를 선택한 이유는 상업영화에서 멜로 제작 비율이 낮아지고 있는 상황이라 멜로와 스릴러가 합쳐진 것이 좋은 시도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참고로 임수정은 저예산 옴니버스 영화이자 정유미-정은채-한예리 등 여배우들 위주로 꾸려지는 ‘더 테이블’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선배 여배우의 생각은 어떨까. 배우 윤여정은 일흔에 가까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여배우다. 그는 올해만 해도 ‘계춘할망’ ‘죽여주는 여자’ 두 편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다. 윤여정은 “우리나라 영화는 다양성이 없다. 한 영화가 잘 되면 모든 영화가 그 쪽으로 쏠린다. 남자-여자 주인공 따지지 않고 조그만 영화라도 좋으니까 다양성 있게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본만 해도 다양성 있는 이야기가 있는데…”라며 아쉬움을 전했다.
윤여정의 말처럼 우리나라에서 현재 가장 많이 만들어지는 영화는 여러 남배우가 뭉치는 작품이다. ‘밀정’의 송강호-공유, ‘아수라’의 정우성-황정민-곽도원-주지훈-정만식, 최근 캐스팅을 완료한 ‘남한산성’의 고수-이병헌-김윤석 등 남자배우들이 뭉치면 크랭크인 전부터 기대감은 높아진다. 하지만 여배우들의 경우엔 뭉치더라도 기대치가 낮다. 최근 여자들만 뭉친 영화 ‘국가대표2’는 여름방학을 겨냥해 출격했지만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다. 여름 대작으로 불리던 작품 중 유일하게 중소배급사에서 배급된 작품이기도 했지만, 처음부터 기대치가 낮았던 것이 더 큰 원인이다. 오연서는 영화에 참여하게 된 이유로 “여자 영화라는 점이 좋았던 것 같다. 여자들의 드라마가 있는 영화가 앞으로도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한 바 있다.
여배우들 주연 영화를 하기 위해서는 또 하나 감당해야 할 부분이 있다. 여자들이 주연인 영화는 예산이 높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톱스타를 쓰기 어렵다. 때로는 이 짐을 여배우들이 고스란히 받아들기도 한다. 제작비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배우들이 배려를 해서 몸값을 낮추는 방식으로 영화 제작을 돕기도 한다. 덕분에 순제작비가 낮아지는 경우도 있다.
할리우드 여배우들의 경우 역시 비슷한 상황에 처하기도 하는데, 이들은 직접적인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할리우드 여배우 중 고수입을 자랑하는 배우 제니퍼 로렌스조차 지난해 영화 ‘아메리칸 허슬’에 출연했을 당시 함께 출연했던 남배우들은 영화 수입의 9%를, 자신을 포함한 여배우 에이미 아담스는 7%를 받고 있음을 밝히며 불편한 심경을 밝혔고, 이에 대해 할리우드 배우 퍼트리샤 아켓은 “로렌스는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동료 남성 배우들보다 적은 출연료를 받았다. 이는 할리우드 업계 관행을 드러낸 단적인 예다”고 이야기 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관계자는 “해외에서도 여배우들의 작품이 많지 않은 편이고 개런티도 낮은 편이다. 엠마 스톤 같이 잘 나가는 배우조차도 페미니스트 활동을 할 정도다. 영화제할 때나 아카데미 시상식 할 때 화제가 되긴 하지만, 그때뿐이다”라며 아쉬움을 전했다.
여배우들이 성장할 수 없는 시스템은 여배우의 부재를 만들고, 여배우의 부족은 여성 주인공 영화 시장을 축소시키는 악순환을 만든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leejh@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