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리뷰┃‘죽여주는 여자’] ‘죽음’의 터부를 깨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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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죽여주는 여자' 포스터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소극적인 안락사를 허용하는 존엄사법 시행이 1년 반 남았다. 치료를 위한 것이 아닌 생명 연장만을 위한 도구인 인공호흡기를 떼는 행위에 이제 살인죄를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에서는 소극적인 안락사를 넘어서서 적극적인 안락사, 즉 자살을 도와주는 할머니가 등장한다.

성매매를 생업으로 삼고 있는 할머니 소영(윤여정 분)은 과거 자신에게 잘해줬던 할아버지가 중풍에 걸려 몸도 움직이지 못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다. 할아버지는 기저귀를 차고 생활해야 하고 있었고, 손자들은 할아버지에게 냄새가 난다며 가까이 가는 것도 싫어한다. 할아버지는 소영에게 죽는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는 자신을 한탄하며 “나 좀 도와줘. 사는 게 아냐”라고 도움의 손길을 청한다. 죽고 싶어 하는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소영은 죄책감과 연민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정말 그를 ‘죽여주게’ 된다.

이 일을 계기로 소영은 ‘죽여주는 여자’로 소문이 나면서 또 한 번 죽음의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이번엔 치매에 걸려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하는 할아버지다. 이어 사랑하는 가족이 모두 죽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할아버지마저 소영에게 죽여 달라고 부탁한다.

법으로 따지면 소영이 한 일은 살인 행위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이 할머니에게 감히 돌을 던질 수는 없다. 소영은 다른 사람을 죽였지만 인간으로서 살아가는데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사람의 마지막 소원인 ‘존엄하게 죽고 싶다’는 바람을 들어준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사람을 ‘죽여주는’ 이유는 무엇을 바라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그들을 위로하고 싶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때, 어떤 사람들은 그들을 향해 사연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냐고 비난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동안 잘 ‘사는 것’을 고민하고 살아왔다면, 이젠 어떻게 죽어야지 잘 죽는 건지 생각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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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죽여주는 여자' 스틸

소영이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이런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이미 충분히 설명이 된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앞서 소영은 곤란한 상황에 처한 코피노 아이를 집에 데려오기는 모습을 보인다.

필리핀 엄마를 둔 소년 민호는 유부남이었던 한 한국 남자가 필리핀에 가서 아이를 낳기만 하고 버린 경우다. 70년대, 그리고 현재에도 일어나는 이 일은 해방 직후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났던 일이다. 안타깝게도 소영 역시 이런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해방 당시 흑인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흑인과 혼혈인 젊은 남자를 보면 혹시나 자신의 아들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너무나도 힘들었던 70년 인생을 살아왔던 소영에게 그래도 위로가 되어주는 것은 ‘소외된 이웃’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그는 코피노 민호 외에도 다리 한 쪽이 없는 청년(윤계상 분), 트랜스젠더 티나(안이나 분)와 살아간다. 이들은 소영이 필리핀 아이를 데려왔을 때도,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고 아이를 돌봐준다.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상대방의 아픔을 묻지 않기 때문이다.

성매매신 등 파격적인 신에 과감하게 몸을 던진 윤여정, 다리가 없고 트랜스젠더를 사랑하지만, 언제나 밝은 인물을 연기한 윤계상, 실제 트랜스젠더인 안이나까지 현실적으로 작품을 그려내 관객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오는 6일 개봉.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leejh@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