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View┃영화] 연기하는 감독, 연출력 성장의 원동력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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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채널 CGV 캡쳐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멀티 플레이가 각광을 받는 시대, 영화감독도 예외는 아니다. 연기자들의 연기를 카메라에 담던 감독들이 얼굴을 드러내고 프레임 속으로 들어왔다.

많은 감독들이 연기에 도전한다. 카메오는 물론, 주연을 맡는 일도 있다. 과거엔 연예계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에서 본인 역할로 출연하는 경우가 대다수였지만, 심오한 연기도 곧잘 해내는 베테랑도 있다.

카메오로 자주 출연하는 감독으로는 이준익 감독이 대표적이다. 앞서 이준익 감독은 영화 ‘부당거래’(2010)를 시작으로 ‘농반진반’(2010), ‘슈퍼스타’(2012), ‘뒷담화: 감독이 미쳤어요’(2012), ‘타짜-신의 손’(2014), ‘대배우’(2015) 등 나름 굵직한 작품에서 본인 역할로 출연하거나 잠깐 지나가는 행인으로 출연했다. 하반기 방송되는 드라마 ‘앙투라지’에도 카메오로 출연한다.

이 정도면 카메오 치고 꽤 많은 작품에 출연한 편이다. 같은 직종의 감독들이 이준익 감독을 찾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카메오는 연기력보다는 인지도나 호감도가 더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이준익 감독은 훌륭한 카메오 연기자라는 것이다. 이준익 감독은 그를 발견한 관객에게 놀라움과 반가움을 한꺼번에 안길 수 있는 인물이다.

이준익 감독은 류승완 감독과 각자의 작품에 교환해서 출연하기도 했다.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에는 이준익 감독이, 이준익 감독의 ‘평양성’에는 류승완 감독이 특별 출연했다. 류승완 감독은 “다른 감독님 영화에 출연하는 이유는 노개런티라서 그렇다. ‘부당거래’ 때 이준익 감독님이 출연해줬는데, ‘평양성’ 할 때 와달라고 하더라. 감독님이 출연료라고 봉투를 줘서 봤더니 내가 ‘부당거래’ 때 드렸던 상품권이었다”라고 밝혀 웃음을 자아낸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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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강 블루스' 스틸

아예 주연을 맡는 경우도 있다. 에로 영화감독으로 더 유명한 봉만대 감독은 최근 이무영 감독의 영화 ‘한강블루스’에서 주연을 맡았다. 그동안 자신의 영화인 ‘아티스트 봉만대’ 등에서 주연을 맡은 적은 있었지만, 남의 작품에서 주연을 맡은 것은 처음이다. 그가 ‘한강블루스’에서 맡은 역할은 한강 주변에서 노숙하는 허풍가이지만 남모를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결코 가볍지 않은 캐릭터이기에 연기력이 필수였다.

그는 “정극연기로 거듭나야 했던 어려움이 있었다. 가벼운 연기니까 즐겁게 봐달라. 연기 폄하 발언을 해주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지만, 이는 모두 엄살일 뿐. 그는 능청스러움부터 뜨거운 감정 연기까지 쏟아내며 생활 연기를 했는데, 주연답게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여느 배우들보다 더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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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춘몽' 포스터

감독이 영화에 출연해서 얻는 장점 중 하나는 영화의 스토리나 연출적인 방식 외에 또 다른 재미를 주기도 하는 것인데, 최근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은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도 선정된 장률 감독의 영화 ‘춘몽’이다. ‘춘몽’에서는 감독 겸 배우로 활동 중인 인물이 셋이나 등장한다. 그것도 세 명 모두 남자 주인공이다. 양익준-박정범-윤종빈은 실명으로 연기하는데다가 그 인물도 본인들이 연출했던 영화 속 캐릭터 특성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이 작품은 단순히 하나의 영화가 아니라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더 많이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장률 감독은 “‘연출 하나 하는 것도 어려운데 어떻게 연기까지 잘할까’란 단순한 생각으로 몇 년 전부터 농담 삼아 같이 해보자고 했다. 이번에 연출하면서 그들이 잘하는 법을 알아냈다. 역시 연기는 타고나야 한다”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들을 극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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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로마 위드 러브' 스틸

외국의 경우엔 우디 앨런 감독이 있다. 약 50년 간 매년 작품을 만들어온 그는 방대한 작품 수만큼 많은 작품에서 연기를 했다. 특히 그의 작품에는 말장난을 좋아하는 할아버지가 등장하는데, 그는 자신이 직접 쓴 대본에서 태어난 캐릭터처럼 연기한다. 즉 자신의 캐릭터를 작품 속에 녹여냈다는 말로 볼 수도 있다. 자신의 작품인 ‘로마 위드 러브’ ‘스쿠프’ 등 외에도 다른 감독의 작품인 ‘지골로 인 뉴욕’ ‘픽킹 업 더 피시스’ 등에서 연기를 선보였다.

이들보다 인지도 면에서는 부족하지만 꾸준히 배우와 감독을 오가는 사람도 있다. 최근 ‘터널’과 ‘차이나타운’으로 대중에게 얼굴을 널리 알린 조현철은 2004년 애니메이션 ‘남자다운 수다’의 프로듀서로 영화계에 입문한 영화인이다. 2009년 ‘잠복기’ 주연을 맡으며 연기를 시작했고, 이후 ‘척추측만’ ‘서울연애’ 등에서는 각본ㆍ연출ㆍ편집뿐만 아니라 주연까지 맡으며 꾸준히 영화인으로서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연기 자체에 대한 욕심이 있거나 친분 때문에 연기를 하는 감독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감독들은 연기를 함으로써 연기자들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그것을 작품을 연출할 때 반영할 수 있게 된다.

류승완 감독은 “연기를 해보는 것은 연출하는 데 도움이 된다. 배우들이 카메라 앞에서 외롭고 공포를 느낀다는 것을 연기하며 알게 됐다"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특히 자신의 작품에서 연기를 하는 경우에는 자신의 연출 스타일을 연기자의 입장에서 느껴볼 수 있기 때문에 연출자로서 스스로 발전할 기회가 된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leejh@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