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2016년 추석 극장가는 영화 ‘밀정’의 압승으로 승부가 났다. 앞서 하반기 최고 성수기인 추석 연휴를 겨냥해 여러 영화들이 개봉했다. 이번 추석 연휴는 14일부터 18일까지, 연휴 전날인 13일을 포함하면 장장 6일 동안 펼쳐졌다.
명절엔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시대극이 제격이란 이론은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다. 추석 극장가는 시대극과 애니메이션으로 양분됐다. 하지만 시대극ㆍ애니메이션이라고 해서 무조건 흥행을 거둔 것은 아니다. 장르는 같았지만, ‘밀정’ 외 다른 작품들은 100만 명도 모으지 못했다.
먼저 추석 일주일 전인 7일에 개봉한 ‘밀정’ ‘고산자, 대동여지도’ ‘거울나라의 앨리스’는 개봉 첫 날부터 각각 28만 7천 명, 2만 9천 명, 1만 8천 명으로 약 10배 이상의 차이를 내더니 현재(20일 기준)는 616만 명, 87만 명, 45만 명으로 비교할 필요도 없을 만큼 엄청난 격차로 벌어졌다.
특히 추석 연휴 6일 동안 ‘밀정’은 360만 명을 모으면서 14일에 개봉한 신작들에게도 1위 자리를 넘기지 않고 탄탄하게 입지를 굳혔다.
14일에 개봉한 ‘벤허’와 ‘매그니피센트7’은 개봉 첫 날 ‘매그니피센트7’이 약 2천 명 차이로 근소하게 앞섰지만, 다음 날부터는 ‘벤허’가 ‘밀정’의 뒤를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재밌는 점은 점점 더 관객수 차이가 더 벌어진 것이다. 둘째 날 약 3만 명 차이가 나던 둘 사이는 17일에 8만 명 이상 차이를 냈다. 결국 ‘벤허’와 ‘매그니피센트7’는 추석 동안 각각 89만 명과 67만 명을 모았다.
성수기인 만큼 기대작과 블록버스터들이 연달아 개봉했지만, 사실 ‘밀정’ 외에는 기대만큼의 성적을 낸 작품은 없다. 이는 스크린 수 차이에서 오는 접근성 문제일 수도 있지만, 그것 외에도 ‘밀정’을 상대할 만한 작품이 없다는 것이 더 큰 이유였다.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전체관람가에 절경을 거대 스크린에 담아냈다는 이야기로 추석 관람을 부추겼으나 힘빠진 연출로 혹평을 받았다. ‘거울나라의 앨리스’는 전편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달리 시간 여행이란 소재를 추가해 더 화려해진 영상미를 뽐냈음에도 불구하고 현란할 뿐 뇌리에 꽂히는 장면을 만들어내지 못해 210만 명을 모았던 전작보다 훨씬 못한 결과를 내놓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 한다.
그렇다면 다른 추석들은 어땠을까. 지난해인 2015년 추석은 9월 26일부터 29일까지, 금요일인 전날까지 휴일로 본다면 총 5일의 연휴가 있었다. 당시엔 역시 송강호가 주연을 맡았던 시대극 ‘사도’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메이즈 러너: 스코치 트라이얼’가 추석 전 주인 16일 개봉해 맞붙고 있었다.
추석 주인 24일에는 권상우-성동일 콤비가 주연을 맡은 ‘탐정: 더 비기닝’, 설경구-여진구 콤비의 ‘서부전선’, 앤 해서웨이-로버트 드 니로가 출연한 ‘인턴’이 후발 주자로 나섰었다.
이 당시에도 2016년처럼 송강호가 승리했다. ‘사도’는 연휴 동안 230만 명 이상을 모으며 꾸준히 1위 자리를 지켰다. 다만 이번 해와 달리 여러 작품들이 선전했다. ‘메이즈 러너: 스코치 트라이얼’은 내한한 배우들의 인기를 업고 100만 명 이상을 모았으며, ‘탐정: 더 비기닝’은 코미디 탐정물로서 예상 외로 큰 반응을 얻으며 역시 100만 명 이상을 모았다. ‘인턴’의 경우엔 스크린수가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인생영화’라는 호평을 받으며 80만 명 이상을 모았다. 다만 ‘서부전선’ 홀로 고군분투했다. 기대작으로 꼽히던 ‘서부전선’은 연휴 기간 겨우 50만 명을 모아 상위권에 오르지 못했다.
2014년 추석은 9월 6일부터 10일까지 총 6일이었다. ‘타짜-신의 손’ ‘루시’ ‘두근두근 내 인생’의 3파전이었다. 이어 한 달 전에 개봉했던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 그 뒤를 잇고 있었다. 세 영화는 순서대로 1~3위를 차지하더니 마지막 날에는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 ‘타짜-신의 손’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짜-신의 손’은 200만 명, ‘두근두근 내 인생’은 120만 명, ‘루시’는 150만 명을 연휴 기간 모아 한 영화에 크게 치우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최근 추석 모습을 보면 여름 대작의 여파로 순위권 안에 드는 재밌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베테랑’ ‘해적: 바다로 간 산적’ 등이다. 2016년에는 ‘터널’이 마지막 여름 영화인만큼 흔적은 보였으나 본격적으로 추석이 시작되자 자취를 감췄다.
2016년 추석 영화의 가장 안타까운 점은 획일화된 장르와 한 작품에게 쏠린 관심이다. 2015년에는 시대극 ‘사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메이즈러너: 스코치 트라이얼’, 코미디 탐정물 ‘탐정: 더 비기닝’, 드라마적인 요소가 다분한 ‘인턴’이 있었고, 2015년에는 도박 느와르 ‘타짜-신의 손’, SF 액션 ‘루시’, 따뜻한 감동 코드가 있는 ‘두근두근 내 인생’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이번엔 박스오피스 1~4위까지 시대극과 할리우드 리메이크작이 차지했고, 5~10위는 애니메이션이 차지했다. ‘추석에 개봉할 영화’라는 장르가 만들어진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leejh@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