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온뉴스 최민영 기자] 지난 2014년 KFA TV(대한축구협회 TV) 축구 해설위원으로 데뷔한 김민구는 올해로 3년차 스포츠 해설위원이 됐다. 3년 동안 많은 경기를 생중계 하다 보니 아찔한 실수를 했던 경우도 많았다.
그는 자신의 대표적인 실수로 작년 메이저리그 경기 중계 도중 일어났던 대형 방수포 사건을 꼽았다. 당시 우천으로 인해 경기가 중단됐고,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구단에서 대형 방수포를 그라운드에 깔던 도중 직원 한 명이 방수포 안으로 말려 들어가는 아찔한 사건이었다.
“방수포를 덮는 직원 한 명이 바람 때문에 방수포 안으로 말려 들어가서 처음에는 굉장히 놀랐어요. 선수들과 관계자들이 뛰어 들어와 구출 작업에 나섰고, 그 직원은 1분도 채 안돼서 방수포에서 빠져 나왔었죠. 그 직원이 안전하다는 걸 알고 난 후 개인적으로 안심해서 농담을 시작했어요. ‘해적단 선원 한 명이 바다에 빠져서 크라켄(북극 바다에 살고 있다는 전설의 괴물)에게 먹힐 위기에 놓였다. 캡틴 맥커친이 도와줘야한다’ 이런 장난스러운 멘트를 했어요. 현지에서도 웃고 떠드는 분위기여서 문제가 생길 거라고 전혀 생각 못했었는데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을 보면서 어떻게 장난 섞인 말을 할 수 있느냐’라는 비판 댓글들이 정말 많이 달렸어요. 제 입장에서는 직원이 안전한 걸 확인하고 농담을 한 거지만 경솔한 발언이라 생각하고 다음 경기 중계에서 바로 사과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김민구는 자기 자신에게 굉장히 엄격하다. 인간이기 때문에 해설을 하면서 실수를 할 수도 있지만 부족함을 자책하며, 스스로를 강하게 채찍질한다.
“한 번은 규칙을 틀리게 설명한 적 있어요. 가끔 프로선수들도 헷갈려할 만큼 야구 룰이 복잡하기는 하지만 막상 실수를 하고 나니 너무 부끄러웠어요. 그날 집에 돌아가서 메이저리그 규칙 책자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었어요. 정말 속상했고, 계속 실수만 하는데 사과마저 안하면 제가 정말 몹쓸 놈인 것 같아 실수에 대한 사과는 제대로 꼭 했어요. 경력이 오래된 분들은 거의 실수를 하지 않는데 저는 초보라서 실수를 안 하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한순간에 바뀔 수는 없고, 열심히 해서 계속 경력을 쌓아가는 수밖에 없죠. 분명히 500경기 다르고 1000경기 다를 거예요. 다른 해설위원 분들의 내공을 쉽게 따라갈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실수를 한 게 있다면 사과라도 제대로 하자는 게 제 원칙입니다.”
그동안 해설했던 수많은 경기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 김민구는 지난해 10월 열린 2015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꼽았다. 그가 이 경기를 고른 이유는 당시 경기가 명승부여서가 아니라 불의의 무릎 부상으로 수술을 받고 시즌을 접었던 강정호가 휠체어를 타고 홈구장인 PNC파크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강정호의 등장에 관중들은 기립 박수와 뜨거운 함성으로 그를 환영해주며, 한국 팬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당시 이를 중계 화면으로 지켜보고 있었던 김민구는 강정호의 모습을 보고 눈시울을 붉혔었다고 고백했다.
“이방인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강정호 선수에게 특히 감정 이입이 더 많이 됐던 것 같아요. 강정호 선수가 휠체어를 타고 그라운드에 등장한 모습을 봤는데 근육량이 빠진 게 확 보이니까 괜히 울컥하더라고요. 그때 해설을 해야 하는데 정말 많이 울어서 회사 사람들에게 놀림도 많이 받았었죠. 그 정도로 강정호 선수에게 감정 이입을 많이 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김민구는 강정호가 부상을 당했던 경기도 해설을 맡았었다. 수비 도중 상대팀 주자 크리스 코글란의 깊은 슬라이딩에 강정호가 쓰러지자 김민구는 격앙된 마음에 그 경기를 이성보다 감정을 앞세운 중계를 하고 말았다.
“강정호 선수가 부상을 당해 교체된 뒤 너무 속상해서 남은 경기는 한쪽으로 엄청나게 치우친 중계를 했던 것 같아요. 그날 퇴근하면서 제 행동을 후회했어요. 분노를 느끼는 건 팬들의 몫이고, 해설은 냉정하게 그저 사실만을 전달해야 하는데 해설위원이라는 사람이 동네에서 같이 경기 보는 아저씨처럼 해설을 하니까 너무 죄송했어요. 괜히 회사와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걱정도 됐었죠. 그때 확실히 제가 프로가 아니라는 걸 느꼈어요.”
올해는 스포티비 해외축구 해설위원으로 활약 중인 김민구. 그는 축구 해설도 수준급으로 선보이며, 많은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김민구는 이와 같은 팬들의 사랑을 고마워하면서도 확실하게 말해두고 싶은 게 있다고 밝혔다.
“저를 좋아해주는 소수의 팬 분들께서 너무나도 기라성 같은 해설위원들과 저를 비교해주시는데 그분들이 축구 경기가 진행되는 90분 동안 전문가로서 90분 중계를 한다면 저는 90분 동안 전문가인 척 하는 겁니다. 그분들의 내공은 엄청난데 저는 아직 그런 역량이 되지 않기 때문에 자료만 모아놓고 전문가처럼 해설하는 거죠. 다른 해설위원님들이 라리가(스페인 프로축구 1부 리그) 선수라면 저는 4부 리그나 5부 리그 선수에요. 그 정도로 해설 실력의 간극이 큽니다. 그분들은 굉장히 오랫동안 많은 노력을 해왔기 때문에 지금의 위치까지 갈 수 있었던 거고요. 제게 해주시는 칭찬은 채찍질이라 생각하고 고맙게 받아들이겠습니다. 열심히 하니까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앞으로 더 노력하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김민구가 생각하는 스포츠의 매력은 뭘까.
“사실 스포츠는 없어도 세상 살아가는 데 아무 문제없어요. 그럼에도 스포츠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는 게 스포츠의 매력입니다. 사람들을 웃고 울리고 만사를 제쳐놓은 채 TV 앞으로 불러들일 뿐만 아니라 돈까지 쓰게 하는 걸 보면 스포츠가 가진 힘은 엄청난 것 같아요.”
김민구는 처음 방송 시작했을 당시 정했던 목표 가운데 3분의 1을 이뤘다. 야구와 축구 두 종목 해설, 유럽 국가대표 축구팀 경기 중계, 미국과 영국의 최정상 스포츠 리그 중계 등은 벌써 이뤘다. 그의 남은 꿈은 아마추어 축구 코치가 돼서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선수들을 지도하는 것이다.
“제 장기적인 꿈이 있다면 유소년 축구 코치를 하는 거예요. 제가 믿는 철학과 소신이 있는데 그게 실제로도 맞을지 꼭 확인해보고 싶어요. 지금 영국 축구협회 레벨1 코치 자격증이 있는데 이번 시즌 끝나고 나서 꼭 레벨2를 따러 갈 겁니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최민영 기자 meanzerochoi@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