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인디로] 래퍼 원썬, 그가 '인투딥'을 지켜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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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온뉴스 윤효진 기자] 홍대 클럽들이 줄지어 있는 거리 한 켠에는 ‘인투딥’이라는 클럽이 있다. 지하 계단을 내려가면 쿵쾅 거리는 힙합 음악들이 들리고, 한 켠에 마련된 바에는 래퍼 원썬이 있었다. ‘인투딥’은 3년 전 후배들이 설 무대를 위해 마련한 공간이다.

“2013년도에 ‘인투딥’을 인수해 현재까지 이끌어가고 있어요. 내가 하고 싶은 걸 잘해서 잘 돼야겠다. 잘 할 수 있는 걸로 도모해보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유명하진 않지만 제가 봤을 때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후배들을 모아 공연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원썬은 2010년 공연을 하기 위해 클럽 사장들을 직접 만나고 다녔다. 그중 이들에게 자리를 빌려준 곳이 문을 닫게 되자 원썬이 클럽을 인수하게 됐다. 공연을 겸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으로 셋팅하고 매주 샤이닝 그라운드의 공연을 이어갔다. 3년째 ‘인투딥’을 운영해 나가고 있지만 경제적인 여건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썬은 후배들이 설 수 있는 무대를 지켜내기 위해 ‘인투딥’을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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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달리 음원을 내는 건 굉장히 쉽고 자본도 많이 들어가지 않아요. 하지만 음원을 내도 불러주는 곳도 없고, 한국 음원 시스템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뚫을 수 없어졌어요. 저는 그런 인디 뮤지션들이 꾸려가는 무대를 만들어주는 것을 목표로 삼았죠. 이 공간을 인수하게 되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죠. 힙합 장르를 트는 홍대 클럽이 2000년대 초부터 생성됐죠. 대형 클럽부터 중소 클럽 등 너나할 거 없이 다 힙합만 틀었어요. 하지만 몇 년 지속됐지만, EDM을 틀기 시작하고 고가의 클럽들이 생기기 시작했죠. 홍대에서도 어설프게 그런 문화를 따라가다 힙합을 소위 말아먹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죠.”

원썬은 힙합을 듣는 리스너들과 놀기 위해 힙합클럽을 찾는 관객들의 교집합을 찾으려 했다. 그 사이 국내 힙합의 덩치는 점점 커져갔다. 힙합이 음원차트 1위를 석권하고, 힙합을 다루는 예능 프로그램 또한 늘어나고 있다.

그 가운데 원썬은 ‘샤이닝 그라운드’ 공연을 4시즌까지 이어오며 홍대 힙합 문화를 이어가고 있다. 1년을 한 시즌으로 잡고, 매주 공연을 개최했다. 지난 시즌부터 격주(둘째, 넷째 주) 개최하며 후배 래퍼들이 설 수 있는 무대를 만들었다.

“제가 했던 공연은 사람이 많았던 적이 거의 없었어요. 유명한 뮤지션들의 공연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만, 실력이 충분해도 유명하지 않은 뮤지션들로 관심을 끌기는 어려웠죠. 지난 시즌부터 격주로 하고 있죠. 저는 정면으로 서지 않고 주로 백업 DJ 역할만 하고 있어요. 이제 부각될 친구들이 여럿 있어요. 입장료를 받으며 클럽 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돈을 제외하고 모두 뮤지션들에게 주고 있어요.”

샤이닝 그라운드를 거쳐 간 아티스트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아티스트도 많다. 국내에서는 산이, 가리온, 에픽하이, 디기리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뮤지션부터 언더라운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수의 래퍼들도 이 무대에 올랐다.

“언더에서 열심히 하고 있지만 주목받을 정도의 실력이 안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관객들은 언더에서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볼 여유가 없어요. 하지만 나중에는 이 과정을 중요시 여기게 되죠. 당장은 이 아이들의 과정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계기라던가 놀 수 있는 판을 만들어 주는 게 제 목적이었고요. 장사 측면에서 힘들어도 제가 이 공간을 이어가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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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썬은 최근 Mnet ‘쇼미더머니5’에 1세대 래퍼라는 타이틀로 출연했다. 보기 좋게 광탈했지만, 그의 랩은 방송 이후 크게 화제를 모으며 온란인 상에서 회자 됐다. 또한 단순했던 그의 메신저 아이디가 공개되면서, 수많은 누리꾼들에게 응원 메시지를 받았다.

“‘쇼미더머니5’는 사실 원래 나가기로 했던 지인이 출연을 취소하며 저를 추천해서 나가게 됐어요. ‘인투딥’을 운영하면서 짬짬히 곡을 많이 써놨었어요. 완성한 곡이 있는데 이거 어떻게 발매할까 고민하고 있던 때였죠. 주변에서 ‘형이 좀 나가면 안되냐’, ‘안 나가는 게 하는 것 보다 낫지 않냐’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저는 이제 공연을 하고, 기획도 하고 낮부터 밤까지 일하고 연습하고 있던 상황이었었죠. 동생들과 친구들의 제안에 떠밀려서 나간 게 컸어요.”

“방송을 보진 않았는데,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저를 소재로 재미있게 지내고 있더라고요. ‘음악의 신’에서 섭외 요청이 와서 찾아보니 제가 이슈가 됐더라고요. 솔직히 ‘쇼미더머니5’는 제 딴에 얼굴 비추기 용으로 나가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해서 나간 건데, 나름 성공적으로 컴백했다고 생각해요.”

그는 하루에도 수 백통 씩 오는 누리꾼들의 메시지에 일일이 답을 해주고 있었다. 아이디를 바꿀까 고민했지만, 누군가 자신의 아이디를 도용할 수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이 상태를 유지하기로 결심했다.

“말을 걸어주기 때문에 저도 답을 해주기 시작했어요. 저도 사람이기에 일하고 나면 지쳐있기 마련인데, 다양한 연령층으로부터 오는 메시지에 힘도 많이 받아요. 표현하기 힘든 에너지가 있어요. 모르는 사람에게 말 걸기가 쉽지 않잖아요. 얼마나 고마운 일인데요.”

때마침 이날 ‘인투딥’에는 원썬을 만나기 위해 직접 찾아온 손님이 있었다. 한 달 전부터 이 곳에 오기 시작했다는 그는 원썬과 자연스레 어울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후배 래퍼들을 위해 만들어진 이 공간은 어느새 원썬과 팬들의 소통의 장이 되고 있었다.

“이곳은 어렵게 음악하는 애들이 와요. 빛을 못 본 친구들이요. 잘 된 친구들은 그들끼리 놀러가죠. 이제 막 시작해 열정을 불사르고 있는 친구들. 산전수전 겪어야 되는 친구들이요. 상황이 모두 다르지만, 현실적인 조언부터, 연애 상담까지 다 해주고 있죠.”

‘인투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현재 한국의 힙합의 위치와 미래’에 대해 질문하자 원썬은 냉철한 어조로 인터뷰를 이어갔다. 1세대 래퍼로서, 현재 힙합의 문제점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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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이제 힙합이 뭔지 막 알게 됐어요. 힙합이라는 단어가 생소하지 않게 된 지 얼마 안됐어요. ‘쇼미더머니’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들이 힙합을 쉽게 접하게 됐죠. 하지만 ‘쇼미더머니’는 힙합을 중시하는 프로그램이 아니에요. 음원을 생각하고, 프로그램을 통해 생산하기 위해 능력 있는 프로듀서들을 영입하죠. 지원했던 사람들을 통해 이윤을 창출할 수 있어요. 래퍼와 아티스트의 개념은 다른데, ‘쇼미더머니’는 철저하게 래퍼를 뽑는 기준으로 진행하고 있죠. 그러기 때문에 지원한 래퍼들이 비트를 해석하는 능력이나, 어떤 게 진짜 잘하는 랩이고 올바른 랩인지 몰라요. 이들의 음원이 순위권에 들게 되면, 답답한 거죠. 멋있게 떠들어 대는 것뿐인데 말예요.”

“힙합은 전 세계적인 문화예요. 특히 한국 힙합은 케이팝(K-POP)을 필두로 전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고 있어요. 케이힙합과 알앤비를 중심으로 진출하고 있는데, 제대로 안하면 정말 쪽팔린 거예요. 저는 한국 힙합은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쇼미더머니’ 같은 방송이 없었다면 지금보다 작았겠지만, 진짜들만 남아 음악을 하고 있었을 거라 생각해요. 지금 상황을 어느 정도 겪고 나면, 자기가 해야 되는 것이 음악이고 생활임을 알게 되는 래퍼들만 남아있을 거라 생각해요.”

원썬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그는 ‘인투딥’을 지금까지 끌어온 것처럼 이 공간을 지켜가고 싶다고 말했다.

“꾸준하게 제 소리를 내고 싶어요. 그것을 이루기 위해 이것저것 하며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어떻게 되겠다라는 것 보다 꾸준히 저의 음악을 통해 소리를 만들어 내고 싶어요.”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윤효진 기자 yunhj@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