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영화 ‘범죄의 여왕’은 대한민국 대표 아줌마가 아들의 고시원 수도요금이 120만원이 나오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면서 벌어지는 미스터리 스릴러 극이다. 주인공 미경(박지영 분)은 새빨간 구두와 새파란 바지를 입고 다니면서 모든 일에 오지랖을 부리는 촉 좋은 아줌마다. 그리고 고시생인 하나뿐인 아들을 위해서는 못하는 게 없는 우리네 엄마다.
많은 작품들이 젊은 배우들을 앞세우는 것과 달리 ‘범죄의 여왕’은 많은 젊은 배우들이 조연을 맡았고, 유일한 중년인 박지영이 단독으로 주인공을 맡았다. 연출을 맡은 이요섭 감독을 비롯해 대부분의 스태프들마저 모두 젊은 현장에서 중년 여성에게 주목한 것은 왜였을까.
“자본이 적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유가 있었다. 남성이면 익숙한 느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울릴 것 같지 않는 공간에 아줌마인 미경을 떨어트려놓고 보니 더 재미있었다.”
“미경을 얄밉지 않고 사랑스럽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처음에는 평범한 엄마를 생각했었는데, 엄마의 여러 가지 모습이 보였으면 했다. 거기서 생각해 낸 것이 아들이 볼 때는 몰랐던 엄마의 여성성이었다. 아들이 소리치면 기가 죽는 엄마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매력적인 거다. 의상이 화려한 것은 인물이 원색적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살고 있는 공간이 무채색이라 미경이 활기차게 들어오면 좋을 것 같았다.”
‘범죄의 여왕’은 사회 비리를 고발하면서 따뜻한 웃음도 잊지 않는다. 미경과 개태(조복래 분)가 범인의 집에 몰래 숨어들어간 뒤 다시 빠져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신이 있다. 미경과 개태가 빠져나갈 때 갑자기 센서등이 작동되는 등 스릴감과 유머가 적절하게 버무려져 관객에게 큰 웃음을 선사한다.
“더 웃긴 컷이 있었는데 많이 덜어냈다. 예를 들면 미경과 개태가 범인의 집에서 빠져나갈 때 말없이 수화로 마구 표현하는 신도 있었다. 이것도 웃기고 괜찮은 신이었는데 전체적인 톤을 맞추기 위해 뺐다. 기본적으로 글을 쓸 때 유머러스한 느낌이 없으면 신이 안 나고 힘들다.”
이 영화에서는 다양한 개성을 가진 인물들이 출연하는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멋지지 않은 것과 멋진 것이 결합된 인물이다. 개태는 거칠게 생겼지만 사실 감수성 여린 인물이다. 고시 공부보다 사람들 관찰하는 것에 더 관심 있는 고시 ‘덕후’덕구(백수장 분) 역시 생긴 것과 다르게 반전을 선사하기도 한다.
“이면이 없는 캐릭터는 매력이 없다. 사람도 모두 이면이 있고, 그것을 알게 됐을 때 관계가 발전한다. 어떤 사람이 화를 잘 낸다는 사실만 알 때와 그 사람이 정의로운 일에만 화를 내는 것을 알 때는 다르다. 행동에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사람도 깊게 알 수 있다. 캐릭터를 만들 때 소명감인 것 같다.”
‘범죄의 여왕’뿐만 아니라 이요섭 감독이 포함된 광화문시네마 식구들이 한 작품에는 화려한 인물이 없다. ‘족구왕’의 만섭(안재홍 분)이나 ‘돌연변이’의 구(이광수 분)까지 오래 보아야 더 예쁜 인물들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다. 다만 감독들 모두 자기 나이에 맞는 고민들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나온 이야기가 아닐까란 생각을 한다. ‘족구왕’같은 경우만 해도 복학을 해서 돌아온 형이 주인공인데, 이 사람에게 꿈을 넣어주고 싶었다.”
배우 안재홍ㆍ황승언ㆍ황미영은 꾸준히 광화문시네마의 작품에 출연 중인 배우로, ‘범죄의 여왕’에도 특별 출연했다. 앞선 작품에 출연했던 것이 계기가 돼 이젠 광화문시네마 마스코트라 불릴 만하다.
“강제 사항은 없다. 이 영화를 보면서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광화문시네마 일원으로서 고맙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다. 힘들 때 도와주는 배우들이다. 보조출연 자리를 메워주러 왔다.”
‘범죄의 여왕’은 이요섭 감독의 첫 장편영화이기도 하고, '1999, 면회’와 ‘족구왕’에 이은 광화문시네마의 세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앞선 작품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았고, 최근 광화문시네마의 권오광 감독은 ‘돌연변이’를, 김태곤 감독은 ‘굿바이 싱글’을 외부에서 찍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광화문시네마의 다음 작품은 어떤 모습으로 만날 수 있을까.
“‘굿바이 싱글’과 ‘돌연변이’도 밖에서 알아서 찍었다. 지금까지는 감독들이 영화만 오롯이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일단 밥을 먹고 살 수 있게 살 궁리를 해야 한다.(웃음) 그 상태까지 만들어 놓으면 여유가 생길 것 같다.”
“나는 장르물을 좋아하고 장르 안에서 변형시키는 것을 좋아한다. 지금은 스릴러와 오컬트를 섞은 이야기를 쓰기도 하고, 전혀 다른 형태의 장르의 액션물을 쓰기도 하면서 이것저것 건드리고 있다. 사실 ‘범죄의 여왕’이 개봉하기 전에 한 편 더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시나리오를 썼는데, ‘범죄의 여왕’이란 페이지가 완전히 넘어가지 않아 다른 것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다만 광화문시네마의 다음 작품은 정해졌다. 전고운 감독의 현대판 거지 이야기 '소공녀'다. 담뱃값도 오르고 집세도 오르는 현실에서 한 여자가 집 대신 담배를 선택하는 이야기다. 가사도우미 일을 하는데 이 사람은 만족감을 느끼고 살아간다. 행복의 조건을 개인적으로 찾는 이 시대의 소중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leejh@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