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한국에서 좀비물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희귀한 존재다. 1981년 영화 ‘괴시’를 시작으로 2006년 ‘어느 날 갑자기 네 번째 이야기 - 죽음의 숲’, 2010년 ‘이웃집 좀비’, 2012년 ‘인류멸망보고서’, 2014년 ‘신촌좀비만화’, 2016년 ‘곡성’까지 꾸준히 이어졌으나 그 수준은 할리우드와 비교했을 때 결코 높지 않았다.
좀비물을 좋아하는 한 작가는 그동안의 한국 좀비물에 대해 “국내에서는 시작 단계였다. 그동안 책이나 소설도 별로 없었고, 영상 쪽으로도 정확한 좀비물이라고 말하기엔 허접한 작품이 많았다. 좀비 분장도 얼굴만 하고 목과 손은 하지 않는 등 B급으로도 말하기 어려운 작품이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할리우드에서 좀비물이 흥행할 가능성이 높았다면, 한국에서 좀비를 바라보는 시선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좀비물은 흥행에 성공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고, 실제로 그동안 흥행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 막연함은 믿음으로 고착됐다.
하지만 흥행 여부와 달리 관심은 높았다. ‘부산행’의 프리퀄인 ‘서울역’에 목소리 출연한 배우 이준은 최근 “세상에 존재하는 좀비 영화를 모두 봤을 정도로 팬이다”고 말할 정도다. 그리고 얼마 전 천만 관객을 돌파한 ‘부산행’은 제대로 된 좀비의 모습을 그려내 좀비의 본고장(?)인 해외에서까지 호평을 받고 있다.
최초의 한국 좀비는 무려 1981년에 등장했다. 영화 ‘괴시’에서의 좀비는 총을 맞아도 죽지 않고 불로 태워야 죽는다. 당시 홍콩영화 강시의 영향인지 팔을 들고 천천히 주인공을 향해 다가온다. 당시 좀비도 언니와 남편이 좀비로 변하는 등 우리 이웃의 이야기였다. 분장과 같은 경우엔 얼굴에 상처가 많지 않고 코피를 흘리는 수준이다.
2010년에 개봉한 ‘이웃집 좀비’는 여섯 편으로 나눠진 옴니버스 좀비 영화다. 첫 번째 이야기인 ‘틈사이’에서는 좀비가 생겨난 이유를 밝히는 부분으로, 실험실에서 변종 바이러스 발생하는 장면이 담겼다. 두 번째 ‘도망가자’편에서는 1차 감염된 좀비 남자친구와 정상인 여자친구의 사랑 이야기와 탈출 이야기가 그려졌다. 이들의 모습은 사람을 물어뜯고 먹는 것 말고는 사람과 비슷하다. 감정도 있기 때문에 이들을 통해 감독은 따뜻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세 번째 이야기는 ‘뼈를 깎는 사랑’으로, 좀비가 된 가족을 지키기 위해 경찰을 잡아서 가족에게 식사를 제공한다. ‘백신의 시대’에는 백신을 욕심내는 경찰의 모습이 그려지고, ‘그 이후…미안해요’에서는 치료제가 발견된 이후, 과거 좀비였던 사람이 취업난을 겪고, 좀비와 인간 중 누가 더 무서운 존재인지 이야기를 한다.
2014년에 개봉한 ‘신촌좀비만화’에서는 3개의 옴니버스 영화 중 두 번째 영화인 한지승 감독의 ‘너를 봤어’가 ‘좀비’ 파트를 맡았다. 이 영화에서는 백신을 통해 좀비였던 사람들이 치료를 받고 좀비와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일을 하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공장의 작업반장 여울(박기웅 분)은 좀비를 노예처럼 생각하고, 좀비들은 끔찍했던 기억을 잊기 위해 기억을 지우는 약을 먹는다. 하지만 사실, 여울 역시 좀비였던 과거를 가지고 있었고, 모든 기억을 되찾은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좀비가 된다.
‘좀비 덕후’로 알려진 정명섭 작가는 좀비물이 한국에서 낯선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부산행’이 천만 관객을 돌파했고, 이어 다른 좀비물에도 관심을 갖게 된 상황에 대해 “‘부산행’뿐만 아니라 ‘월드워Z’에서도 대중에게 좀비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는다. 재난 영화로 포장을 했다. 천만 관객 중 좀비를 처음 보는 사람도 절반 이상 될 거라고 생각한다. 처음 보는데도 불구하고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좀비가 나타나는 과정보다 나타나면서 발생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납득됐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명섭 작가는 “‘부산행’의 열차 안은 대한민국을 상징한다. 그 안에서 세월호를 보는 사람도 있고, 부와 자본이나 금수저-흙수저 등 다양한 갈등으로도 투영이 가능하다. 좀비라는 하나의 장치로 갈등이나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기 때문에 많은 관심을 얻게 된 것 같다”고 이야기 했다.
‘좀비사전’을 펴낸 김봉석 문화평론가는 “많은 외국 작품을 통해 대중화가 된 것 같다. 미국드라마인 ‘워킹데드’ 등으로 좀비물 자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됐고, ‘월드워Z’ 등을 통해서는 기존의 좀비가 가지고 있던 지저분한 이미지가 해소가 됐다. ‘부산행’ 역시 블록버스터기 때문에 지나치게 잔인한 장면이 없고, 한국적인 가족주의적인 내용이 담겨 있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좀비물이 확산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김봉석 평론가는 현재 우리나라의 좀비물의 상황에 대해 “좀비물로만 보면 양적으로 너무 적기 때문에 잘한 점ㆍ못한 점을 평가할 수 없을 것 같다. 칭찬할 점이 있다면 ‘부산행’이 대중적으로 좀비를 확산할 수 있게 한 점을 꼽을 수 있겠다”고 말했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leejh@enteronnews.com